지난달 28일 치러진 제34회 공인중개사 국가 자격시험 응시 결과가 충격을 줬습니다. 자리 곳곳이 빈 채 치러졌기 때문인데요. 서울의 한 시험장은 총원 25명 중 16명만이 자리를 채울 정도로 결시율이 높았습니다.
29일 한국산업인력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접수자 수는 28만7174명으로 전년(38만7710명)보다 약 10만명 가량 줄어든 수치였는데요. 이는 1·2차 통합 접수 인원 8만 5539명도 포함된 수치인데요. 실제 순 접수자는 20만1635만명으로 집계됐습니다.
결시율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2021년 제32회 시험의 1차 시험의 결시율은 25%였는데요. 지난해 처러진 제33회 1차 시험의 결시율은 약 27%로 높아졌습니다. 올해 시험 결시율은 아직 집계 전이지만 30%를 넘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은 한때 국민 자격증, 성인 수능 등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지난 2021년 응시자 수는 약 40만8000명에 달했는데요. 역대급 부동산 활황이 그 이유였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저금리와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 등의 요인이 합쳐지며 부동산 시장은 호황을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공인중개사 자격증의 인기도 급상승했습니다.
그러나 부동산시장 분위기가 급반전하면서 공인중개사 시험의 인기도 빠르게 식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로 주택 가격 하락이 시작되고 거래량까지 급락한 것이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의 인기가 시들해진 요인으로 꼽히는데요. 이를 반영하듯 올해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접수자 수는 2016년(27만3251명) 수준으로 회귀했습니다.
◇거래 뚝…혼란스런 부동산 시장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자만 줄어든 게 아닙니다. 문을 닫는 공인중개사무소는 눈에 띄게 늘어습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폐업한 공인중개사는 1001곳으로 집계됐는데요. 이달까지 누적 폐업 사무실은 1만586곳, 휴업은 1028곳입니다. 같은 기간 개업한 사무실은 9611곳에 불과한데요. 폐·휴업 사무실이 새로 문을 연 사무실보다 2003곳 많은 셈입니다. 폐업 사무소 수가가 개업 사무소 수를 웃돈 건 이번이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라고 합니다.
중개사무소들이 잇달아 문을 닫는 건 부동산 거래가 발이 묶인 탓이 큽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3354건에 집계됐습니다. 2020년 월 최대 거래량인 1만5621건과 비교히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데요.
한 업계 관계자는 “공인중개사의 개·폐업률은 향후 부동산 거래량을 전망하는 지표로 볼 수 있다”며 한동안 부동산 거래량 회복이 어렵다고 내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폐업을 선택한다는 건 현장에서는 앞으로 거래량이 늘고 시장이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라며 “금리가 갑자기 하락으로 돌아서거나 주택 시장에 대규모 호재가 나타나지 않는 한 올해 안에 폐업률이 줄어들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부동산 거래 감소의 요인으로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효과 감소와 고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 증가 등이 꼽힙니다. 자금 조달에 부담을 느낀 수요자들이 매수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거래가 줄면서 주택 매물 역시 쌓이고 있습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 수는 약 7만6785건(26일 기준)인데요. 지난 7월 말 6만8494건에 비해 12.1% 늘어난 수치입니다. 시중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7%대 수준으로 오르고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판매가 중단되면서 매수 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금리 때문에 올 연말까지 부동산 시장이 상승보다는 현재 수준이 유지되거나 하락할 가능성이 더 높다”며 “경제지표가 올 하반기 저점으로 예상되고 때문에 내년 연초 이후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내년 상반기에는 금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년 상반기에 금리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되더라도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내년 입주 물량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인데요.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약 1만 5627가구로 추정됩니다. 올해보다 40% 가량 감소한 규모입니다.
◇공인중개사법 개정…규제 강화도 부담
공인중개사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도 부담입니다. 정부는 최근 공인중개사법 개정에 나섰는데요. 이번 법 개정의 배경에는 잇달은 전세사기 사건이 있습니다. 상당수 전세사기 사건에 공인중개사를 사칭한 중개보조원이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중개보조원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어도 소정의 의무교육만 수료하면 업무가 가능합니다. 별다른 자격 제한 요건이 없는 만큼 중개보조원이 수행할 수 있는 업무는 제한적인데요. 매물 안내나 단순 사무 보조 등이 법이 허용하는 보조원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규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무자격자가 공인중개사를 사칭해 계약서를 직접 작성하는가 하면 일부 공인중개사는 상대적으로 임금이 싼 무자격자들을 내세워 고객을 유인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불법 거래가 반복됨에 따라 공인중개사법이 개정됐는데요. 개정 공인중개사법에 따라 앞으로 중개보조원은 현장 안내 등 중개 업무를 보조할 때 고객에게 반드시 자신이 중개보조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이를 어길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는데요.
이같은 법 개정에 대해 공인중개사업계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일부 비양심적인 공인중개사의 사례를 확대 해석해 공인중개사 전체를 범법자 취급한다는 불만들인데요.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 사기 등 불법 거래에 연루된 공인중개사나 중개보조원은 극소수일 뿐”이라며 “공인중개사법 개정이 오히려 공인중개업에 대한 신뢰를 더욱 망가뜨리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공인중개사법
제18조의4(중개보조원의 고지의무) 중개보조원은 현장안내 등 중개업무를 보조하는 경우 중개의뢰인에게 본인이 중개보조원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야 한다.
[본조신설 2023.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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