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복 인터뷰…”저예산 아닌 정서가 ‘K-콘텐츠’ 특징 돼야”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한국의 크리처 장르를 축구에 비유하자면 흙바닥에서 경기하다가 인조잔디 경기장이 생긴 정도로 상황이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천연잔디 경기장을 갖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고, 많은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최초로 장편 크리처 드라마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위트홈’ 시리즈를 연출한 이응복 감독은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한국 크리처 장르의 현주소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오고 우리 드라마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며 “종전까진 제작하지 못하던 드라마를 만들 수 있게 된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크리처’의 특징이 뭔지 묻자, 이 감독은 “솔직히 말하자면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할리우드에서 괴물 하나를 제작할 돈으로 한국에선 백개, 천개를 만든다”고 답했다.
이 감독은 또 “‘한국형’이라는 말이 저예산임을 강조하는 면이 있다”며 “저예산이 아닌 작품의 ‘뉘앙스’와 정서가 돼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스위트홈’ 시즌2는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헌신적으로 노력한 분들을 향한 헌사가 담겼고, 그런 면에서 한국적 정신이 있는 크리처물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한국적인 정서를 세상이 망해도 자기 역할을 다하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데서 찾았다. 그가 예시로 든 등장인물은 배우 진영이 연기한 박찬영이다.
인간이 속속 괴물로 변해 사람을 해치고, 생존 본능이 발동한 인간들도 괴물처럼 변해 서로를 다치게 하는 드라마에서 박찬영은 강한 이타심을 발휘하고 본분을 잊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박찬영은 괴물이 들끓고 세상이 멸망 직전까지 가자 자진해서 군에 입대한다. 괴물을 잡기 위한 지뢰를 밟은 사람을 구하려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지고, 이은유(고민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부대를 이탈한다.
이 감독은 “박찬영은 혼자 살겠다고 탈주하는 게 아니고 은유를 지키기 위해 동행하고, 이후 다시 부대로 돌아간다”며 “그런 게 한국적인 정신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짚었다. 또 “그런 정서를 작품에 틈틈이 녹여뒀는데 시청자들이 발견해주시면 감사한 기분이 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0년 12월 공개된 ‘스위트홈’ 시즌1은 ‘오징어 게임’에 앞서 한국 드라마를 세계에 알린 작품으로 많은 시청자의 기억에 남아 있다. 미국 내 넷플릭스 시청 시간 3위를 기록하며 한국 드라마 최초로 10위 이내에 들었고, 8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로부터 3년 만에 공개된 시즌2는 초반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시즌2는 지난 3일과 4일 전세계 넷플릭스 시리즈물 중 6위를 기록했다.
이 감독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장르의 드라마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들었는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은 점, 연령대와 무관하게 관심을 가져 주시는 점에 놀랍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다만 시즌2를 향한 평가가 모두 호평 일색인 것은 아니다. 이전 시즌이 워낙 호평받은 탓에 시즌2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고, 시즌1에 등장하지 않던 인물들을 대거 시즌2에 등장시키면서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편상욱(이진욱 분)이 괴물로 변한 다른 인물에게 몸을 지배당하는 설정 때문에 그의 진짜 정체를 둘러싸고 해석이 엇갈리는 등 시청자들이 혼란을 겪는 양상이다.
이 감독은 “당초 시즌2를 9부작으로 만들 계획이었는데 결과적으로 8부작이 됐고 9회의 내용은 시즌3에 포함됐다”며 “시즌3이 공개되면 모든 의문이 풀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위트홈’은 시즌2는 물론 시즌3의 촬영도 모두 마쳤으며 후반 작업을 거쳐 내년 중에 시즌3이 공개될 예정이다.
과거 ‘태양의 후예'(2016)와 ‘도깨비'(2016), ‘미스터 션샤인'(2018) 등 주로 멜로물을 연출해 호평받았던 이 감독은 크리처 장르의 ‘스위트홈’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이 감독은 “제가 ‘드림하이’를 연출할 때 사실 소녀시대도 몰랐는데 회사에서 시켜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연출했다”며 “첫 단추를 그렇게 끼우고 보니 모르는 장르에도 관심이 생겼고, ‘스위트홈’도 겁 없이 달려들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차기작으로 로맨스 드라마의 연출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아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다”며 말을 아꼈다.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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