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이 정부가 추진하는 ‘필수 의료 혁신 전략’을 작심 비판했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소아청소년과) 오픈런’ 등 필수 의료 공백으로 인한 현상에 대해 정부가 잘못된 진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응급실 뺑뺑이, ‘1339 응급콜’ 없어져서 생긴 일”
우 원장은 4일 발간된 의협의 계간 ‘의료정책포럼’에 ‘필수 의료 위기와 의대 정원’을 주제로 한 시론을 올렸다. 그는 의료계에서 대표적인 ‘의대 정원 확대’ 반대파로, 의사 수가 아니라 제도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우 원장은 먼저 “‘응급실 뺑뺑이’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응급환자 분류·후송을 담당하는 ‘1339 응급콜’이 법 개정에 따라 119로 통폐합되면서 생긴 일”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법 개정 이후 전문성이 없는 소방대원이 응급환자를 대형병원으로만 보내니 경증 환자가 응급실 내원 환자의 90% 가까이 차지하게 됐고, 이 때문에 중증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뺑뺑이’가 생긴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가 언급한 ‘1339 응급콜’을 통한 응급의료 상담 서비스는 지난 2013년 6월 국민 편의 차원에서 인지도가 높은 119로 통합된 바 있다.
“젊은 엄마들, 소아과 오픈 때만 런”
우 원장은 “‘소아과 오픈런’도 저출산으로 소아 인구가 줄면서 의원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젊은 엄마들이 조금이라도 진료가 마음에 안 들면 맘카페 등에 악의적 소문을 퍼뜨려 문을 닫는 경우도 많아졌고, 직장인 엄마들이 늘면서 아침 시간에 환자가 집중되는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젊은 엄마들이 가끔 일찍 진료를 마치고 아이들을 영유아원에 보낸 후 친구들과 브런치 타임을 즐기기 위해 소아과 오픈 시간에 몰려드는 경우도 있다”며 “‘소아과 오픈 때만 런’이지 ‘낮에는 스톱'”이라고 덧붙였다.
“의사 수 안 적어…정원 늘리면 건보 재정 파탄”
우 원장은 “‘초고령사회 대비를 위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정부 주장에도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진료 횟수(14.7회), 인구 1000명당 병상 수(12.7병상) 등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며 “심지어 노인 인구가 30% 가까이 되는 일본보다 많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OECD 보건 통계 2023’을 근거로 “2021년 기준 한국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적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OECD 국가 평균 임상 의사 수는 3.7명이다.
우 원장은 의사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근거로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들었다. 그는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며 “2007년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1명이 늘어나면 1인당 의료비는 2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건보 재정은 매우 위태롭다”며 “건보 재정 파탄이 예고된 상황에서 대학병원 수도권 분원을 무한정 증설하고, 그 병상을 운영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를 무한정 늘리면 건보 재정은 국민연금보다 훨씬 앞서 파탄을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사 소득 OECD 1위 주장엔 “가진 자 증오”
한국의 의사 소득이 OECD 1위라는 통계에 대해서는 ‘가짜뉴스’라고 규정했다. ‘OECD 보건 통계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문의 가운데 병·의원에 소속돼 월급을 받는 의사의 연간 임금소득은 2020년 기준 19만 2749달러(약 2억 4600만원)로, 관련 통계를 제출한 OECD 회원국 28개국 중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우 원장은 “우리나라는 전문의의 경우 구매력(PPP)을 적용하면 봉직의 기준 OECD 31개국 중 2위, 개원의 기준 11개국 중 3위지만, 환율(USD)을 적용하면 봉직의 8위, 개원의 6위로 중위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사 소득 논란의 밑바탕에는 ‘가진 자에 대한 증오’를 동력으로 하는 계급 투쟁적 이념이 담겨 있다”며 “이런 식으로 의사 죽이기에 나서면 어떻게 되는지는 문화혁명 이후 중국 의료 붕괴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의대 수요조사 탄력받은 정부…의협 총파업 예고
정부의 ‘의대 정원 수요조사’에서 현 정원의 2배 이상 늘리기를 희망한다고 답한 대학들을 향해서도 가차 없이 비판했다. 지난달 21일 보건복지부가 전국 40개 의대를 상대로 실시한 수요조사 결과 전국 의과대학은 2025년 정원을 2151명~2847명으로, 2030년 최대 3953명까지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우 원장은 “값싼 전공의를 늘려서 부리고 싶은 의과대학 병원이나, 다시 오기 힘든 기회니 이번에 정원을 2배 정도 늘려서 신청하자고 공공연히 말하는 대학 총장들에게 의사 수요 추계 설문조사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대 증원이 향후 보건의료 전반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먼저 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이라며 “서두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필수 의료 현장의 인력 부족과 여론 등을 명분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의협은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번 주 용산 대통령실 앞 철야 시위를 시작한다. 또, 오는 17일 ‘진료 거부 총파업’ 여부를 두고 11일부터 투표에 나설 예정이다.
김성욱 기자 abc1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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