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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태평양의 新 그레이트 게임과 우리의 전략 [여한구 글로벌 호라이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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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행 선박을 그린 모습. [출처: https://timegeo.ru/velikie-lyudi/vasko-da-gama/]

인도 태평양의 체스판

나폴레옹은 그 나라의 지리를 아는 것이 외교정책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지도에서 한반도를 보면, 유라시아의 서쪽 끝인 유럽에서 중앙아시아, 시베리아를 거쳐 동쪽 끝자락에 닿아,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연결되는 대륙과 해양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 안보 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는 1997년에 펴낸 그의 명저 “거대한 체스판(Great Chessboard)”에서 이미 한반도가 우크라이나 등과 함께 지정학적으로 중요하자 취약한 5대 중심축(geopolitical pivots)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유라시아의 서쪽에서는 두개의 전쟁이 동시 진행 중이고, 동쪽에서는 미중간 패권경쟁이 격화하며 요동치는 인도 태평양의 체스판을 바라보면 이 지역이 왜 우리의 국가이익에 중요한 지 이해가 된다.

인도 태평양은 15세기 후반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이 유라시아의 중앙을 장악하면서 실크로드를 통한 육로가 막히자, 유럽이 대항해 시대를 열면서 인류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끝단의 희망봉을 거쳐 인도양으로 처음 항해한 이래, 수백년간 향료, 차, 포르셀린 등 동서양의 교역을 가능하게 한 핵심적인 해상루트가 되어 왔다. 수출로 경제개발을 시작하고,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입 비중이 80%를 넘는 통상국가로 국부를 창출해 온 우리나라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도양, 태평양, 특히 말라카 해협-남중국해 루트를 통해서 반도체, 자동차 등 우리의 핵심품을 수출하고, 96.8퍼센트의 원유, 40.3퍼센트의 천연가스를 수입한다. 이처럼 인도양, 태평양 두 바다를 통한 유라시아의 연결성(connectivity)과 항행의 자유는 우리나라의 안위와 번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또 하나는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 가져온 지각변동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여년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지렛대로 삼아 함께 성장해 왔으나, 2016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 2021년 중국발 요소수 사태를 겪으며, 우리보다 인구가 20배, 경제규모가 10배가 넘는 거대 이웃에 과다하게 의존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안보적으로도 매우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까운 이웃이 나의 죽고 사는 문제(북한 핵개발)에 대한 정당한 방어에 대해 먹고 사는 문제(경제)를 가지고 보복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신뢰의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최근에도 중국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90% 이상을 의존하는 전기차 배터리의 필수 광물인 흑연에 대해 수출통제를 시작했고, 불과 2년전에 국가적으로 대란이 났던 요소수에 대한 대중 의존성도 그동안 크게 나아진 것이 없어 여전히 취약하다.

21세기 글로벌 경제를 견인하면서, 미중 패권경쟁 등 치열한 “新 그레이트 게임”이 펼쳐질 인도 태평양의 체스판에서 어떻게 기회를 살리며, 리스크를 관리할 것인가가 우리의 핵심적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두 개의 바다를 잇는 일본의 구상

미국, EU를 비롯해 주요 국가들의 화두가 된 “인도 태평양 전략”은 처음 일본에 의해 구상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간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7년 아베 전 수상은 인도 의회에서 행한 “인도양, 태평양 두 바다의 융합” 이라는 주제의 연설을 통해 인도와 일본이 힘을 합해 자유와 번영의 인도 태평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도 태평양 전략”을 최초로 주창했다. 즉 중국의 부상과 미국 영향력의 상대적 쇠퇴 등 변화하는 지정학에 대응, 인도를 끌어들여 미국과 함께 일본이 새로운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형성하고자 한 것이다. 일본이 인도를 적극 구애한 데는 대중국 카드로서 인도의 가치도 있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배경도 있다.

필자의 일본 지인들은 한결같이 일본 패전 후 도쿄 전범재판 시 유일한 인도인 판사였던 라드하비노드 팔(Radhabinod Pal)이 유일한 소수 의견을 내며 일본측 입장에 공감했던 것을 일본의 인도에 대한 특별한 우호감의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아베 전 수상은 인도 의회에서 스피치를 마친 후 캘커타로 가서 작고한 팔 판사의 아들을 만나 일본인들의 감사 인사를 전하고, 그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 팔 판사가 함께 찍었던 사진을 선물로 받는다.

일본의 인도 태평양 구상은 2016년 아베 2기에 들어와 본격 추진됐고 트럼프가 당선되자 일주일여 후 아베 전 수상이 뉴욕의 트럼프 타워로 찾아가 적극적으로 설득을 하면서, 마침내 미국은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며 일본의 “인도 태평양 전략”을 국가안보전략으로 공식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EU는 물론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캐나다 등 주요 국가들이 인도 태평양 전략을 발표하면서, 인도 태평양은 하나의 거대한 지정학적 사조를 반영하는 주류로 자리잡았다.

일본의 16여년에 걸친 인도 태평양 전략의 태동과 진화 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는,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거대한 대외전략을 십여년이 넘는 긴 안목과 호흡으로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사고와 거버넌스 체제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뀔 때 전 정부의 대외 전략을 갈아엎는 우리의 현실과 대비된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이 상대국들과 민간업계의 긍정적 평가를 바탕으로 모멘텀을 쌓아가던 시점에 단절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양당간 대립이 심한 미국 정치환경 하에서도 트럼프-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은 확대 발전해 왔다. 둘째는, 최근 브루킹스의 일본 전문가 미레야 솔리스가 낸 일본의 “조용한 리더십” 이라는 책에서 강조했 듯, 일본의 업그레이드된 글로벌 리더십이다. 일본은 수십여년 조용히 드러나게 내세우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거대한 체스판을 새로이 짜서 촘촘하게 연결된 외교 네트워크를 통해 관철해 국제적 영향력을 크게 확장했다. 자국 중심적인 외교적 구호는 국제사회의 거부감이나 경계심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모두가 공감하는 글로벌 아젠다로 프레임을 크게 짜면서 그 속에서 우리가 글로벌 리더쉽을 발휘해 기여하는 세련된 글로벌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도 태평양의 체스판과 新그레이트게임

인도 태평양은 21세기의 “新 그레이트 게임”이 펼쳐질 체스판이다. 19-20세기의 “그레이트 게임”이 인도를 지키려는 영국과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려는 러시아 사이에 중앙아시아의 주도권을 두고 벌였던 치열한 패권경쟁이라면, 1세기가 지난 지금, 미국과 중국이 인도 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新 그레이트 게임”의 주된 무대는 아세안과 인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1월초 싱가포르에서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와 싱가포르 국립대 공동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만난 아세안 국가의 관리는 최근의 현상을 “China Plus One”에서 더 나아간 “Asia Minus One”으로 묘사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 더해 동남아 한 국가로 다변화하려는 기존의 추세에서 더 나아가,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Asia-1)로 다변화하면서, 투자와 무역이 증가하고 과거에는 주어지지 않았던 기회가 오고 있다는 반전의 낙관론이었다. 역설적이지만 과거 블랙홀처럼 모든 경제개발의 기회가 중국으로 빨려들어가던 것이,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과거 중국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많은 개도국들에게 경제개발의 기회가 돌아가며 오히려 “운동장이 평평해지는” 상황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국가가 이런 기회를 포착하는 것은 아니다. 기회는 스마트하게 발빠르게 움직이는 국가들의 몫이다. 싱가포르는 중국에서 빠져나오는 하이테크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각종 비자 규정을 신축적으로 개정하는 한편, 비좁은 국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헤드쿼터는 싱가포르에, 제조공장은 1시간 이내 거리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산업단지에 두도록 하는 “싱가포르 플러스: 쌍둥이 모델 (SG+: Twinning Model)”을 적극 추진하며 역내의 하이테크 허브로 도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우리 경제와 통상 구조의 “다변화”와 “디리스킹”을 위해 인도 태평양 전략의 프레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중국을 배제하지 않고 중국과도 안정적인 윈윈의 경제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중국이 기침하면 한국이 감기 걸리는 구조적 취약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특히 아세안과 인도 등과의 경제협력 강화가 중요하다. 경쟁국에 뒤쳐지지 않게 인도 태평양 전략의 신남방 지역과의 경제협력 부문 세부 액션 플랜이 조속히 나와서,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아세안, 인도와의 경제협력 확대에 주력해야 한다. 이미 2014년부터 한국기업들의 대아세안 및 인도 투자가 대중 투자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무역 규모도 2022년도에 아세안과 인도를 합친 수출입 비중이 16.6%로 미국(13.5%)보다 큰 중국(21.9%)에 이은 우리의 제2의 교역 상대로 부상했다. 가까운 곳에 이 정도 규모의 새로이 뜨고 있는 거대 경제권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다.

아세안은 평균 연령대가 30대로 매우 젋고 중산층과 함께 디지털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역동적 시장이다. 한류의 인기로 코리아 프리미엄이 크며, 우리에게 긴요한 주요 광물들의 자원부국들이다. 인도도 제조업 육성 산업정책을 적극 펼치며 폭스콘 등 중국에서 떨어져나오는 공급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이들은 반도체, IT, 전기차, 배터리, 철강, 핵심광물, 국방, 바이오, 스타트업, 디지털 전자상거래, K-컨텐츠, 신재생에너지, 탄소크레딧 등 많은 유망 분야의 전략적 파트너들이다. 이를 통해 우리 공급망 및 통상무역 구조의 취약성을 보정(rebalancing)하며, 경제 통상 분야의 견실한 구조를 레버리지로 인도 태평양 내 우리의 지정학적 전략적 공간을 더욱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CP-2023-0083@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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