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만원 줘도 간병인 구하기 힘들어…’웃돈’ 요구 다반사
건보 적용이 최선이지만, ‘연 10조원’ 넘는 재정부담 걸림돌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어머니께서 노환으로 입원했는데 간병비가 엄청나네요. 하루 15만원 수당을 줘도 좋은 간병인을 구하기 힘듭니다. 월 450만원을 주고도 눈치를 봐야 하니 환자 가족은 정말 ‘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급속한 고령화로 노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간병비 부담에 시달리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적지 않다.
서울 목동에 사는 50대 A씨는 최근 팔순 노모의 노환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간병 지옥’의 현실을 체험했다고 토로한다.
가족의 병구완을 위해 간병인을 쓰려다 간병비 지출을 버티지 못하는 환자가 늘면서 ‘간병 파산’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홀로 돌보기 힘들어 4개월가량 간병인을 고용한 B씨는 간병 파산으로 내몰리는 이들의 심정을 알게 됐다고 한다. 4개월 동안 지출한 돈만 2천만원 가까이 됐고, 1년이 넘는 간병 생활로 예금, 부동산마저 처분해야 했다고 한다.
C씨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부친이 입원한 후 간병 파산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24시간 간병인에게 지급하는 돈은 하루 14만원. 주급으로 계산하면 4주에 420만원에 달한다. C씨는 “병원비보다 간병비가 더 부담인데, 직장 그만두고 직접 간병하는 게 나을지 심각하게 고민이 된다”고 토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 간병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 대책이 나오더라도 재정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은 19일 “간병 부담은 ‘간병 지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라며 “국민 간병 부담을 하루빨리 덜어드릴 수 있도록 복지부가 관계부처와 함께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말했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환자의 간병비는 ‘간호간병통합병동’을 제외하고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특히 중증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들이 주로 머무르는 요양병원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공 기관이 아니어서 환자와 보호자가 간병비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이때 간병비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환자와 보호자들은 한숨을 쉰다.
식대를 별도로 청구하는 건 기본이고, 환자의 덩치가 크다며 웃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하루 평균 일당은 13∼15만원으로, 한 달이면 400만원을 훌쩍 넘어 일반인들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에만 매달리는 보호자도 있다. 한 달에 400만원이 넘는 돈을 간병비로 쓰느니 직접 병구완을 하겠다는 것이다.
간병비를 아끼려고 가족들이 번갈아 가면서 간병과 일을 병행하다가 도리어 병을 얻었다는 보호자도 적지 않다.
이에 간병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간병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천 명 중 65.2%가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간병비 부담’을 꼽았다. 응답자 75.5%는 ‘간병비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요양병원 간병비가 급여화할 경우, 연간 본인 부담금은 현행 1천800만∼2천300만원에서 380만∼830만원까지 낮아질 수 있다.
문제는 막대한 재정 부담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간병비 규모는 2014년 6조8천억원에서 2018년 8조원으로 늘어났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간병 수요 증가를 생각하면 간병비 지출은 연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간병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이 막대한 비용을 건보 재정이 감당해야 한다.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간병비 급여화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면서도, 지속 가능한 제도를 위해서는 요양병원의 역할과 기능 정립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요양병원 간병비가 급여화하면 ‘불필요한 경증 환자의 입원’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임민경 건강보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의료보다 요양 기능을 수행하는 요양병원이 많은 상황에서 간병비를 급여화할 경우 요양 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의료 필요도가 높은 환자 등 간병비 급여의 ‘우선 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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