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러시아를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상황에서도 ‘버티기’에 나섰던 현대차인데요. 결국 현대차도 러시아와 결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손실이 커졌기 때문이죠.
미련이 남았을까요. 현대차는 러시아 시장 재진출 가능성도 열어뒀는데요. 현대차는 만약 2년 내 상황이 호전될 경우 다시 공장을 매입할 수 있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러시아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어 현대차가 다시 진출한다면 중국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됩니다.
‘잠시만 안녕’
현대차는 지난 19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생산 공장(HMMR)의 지분 매각 안건을 승인했다고 공시했습니다. 현대차는 현지 딜러사인 아빌론 그룹 계열사 ‘아트파이낸스(Art-Finance)’에 공장을 매각할 예정입니다. 현재 구체적인 매각 조건을 협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트파이낸스는 지난 5월 폭스바겐의 러시아 공장을 사들인 업체기도 합니다.
그동안 현대차의 러시아 공장 매각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이 때문에 매각은 예상된 수순이라 쳐도, 매각 가격은 조금 의아한데요. 현대차는 단 1만 루블에 매각을 결정했습니다. 20일 기준 1루블은 한화로 환산하면 14만3600원 정도죠. 현지 공장의 지분 가치가 2873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굉장히 낮게 책정된 가격입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1만 루블은 상징적인 가격이라고 합니다. 매각 후 2년 내 공장을 다시 살 수 있는 ‘바이백 옵션’을 내걸었기 때문인데요. 이를 고려한 가격 책정이라는 얘기죠. 알고 보면 러시아 공장 매각 과정에서 이런 가격을 산정한 경우는 현대차뿐만이 아닙니다. 닛산과 르노는 지난해 각각 1유로, 1루블에 현지 공장을 매각했습니다.
만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 내 끝날 경우 현대차는 공장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기존 판매된 차량에 대한 유지·관리 서비스도 계속 제공하기로 했죠. 재진출 가능성을 열어둔 셈입니다. 하지만 해당 시점까지 전쟁이 계속된다면 러시아 공장은 1만 루블에 팔리게 됩니다.
다만 현대차가 러시아 시장에 다시 진출하더라도 여러 난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근 러시아에선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빠진 자리를 중국 업체들이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차가 러시아 시장에 다시 진출한다면 ‘도전자’ 입장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현대차는 러시아 시장 상황을 지속적으로 지켜본 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향후 국제정세나 추이를 지켜보고 재진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2년 후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고, 그때 어떤 업체가 러시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왜 접었을까
현대차는 러시아에 진심이었습니다. 2007년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러시아 시장에 진출한 이후 꾸준히 투자를 지속해왔습니다. 2011년엔 러시아에 공장을 건설하고 현지 생산을 시작했죠. 이후 지난 202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을 인수하며 생산량을 늘렸습니다.
상트페테르 공장은 연 20만대 수준을 생산해 러시아를 비롯한 인근 유럽 국가로 자동차를 수출했습니다.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을 기반으로 유럽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습니다. 러시아 시장 반응도 호의적이었죠. 지난 2021년엔 현대차·기아 합산 점유율이 러시아 시장 1위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잘나가던 현대차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바로 지난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것이죠. 현대차 러시아 공장은 지난해 3월 생산이 중단됐습니다. 전쟁 이후 100%를 웃돌던 현대차 러시아 공장의 가동률은 22.1%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생산실적도 2021년 23만4150대에서 4만4163대로 급감했습니다.
지난 10월엔 현지 업체의 위탁 생산까지 중단됐습니다. 그래도 현대차는 러시아 시장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현대차는 지난해 벤츠·포드·토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할 때에도 ‘버티기’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부품 수급이 쉽지 않고, 가동하지 않는 공장을 유지하기 위한 고정비 지출이 지속되자 부담이 커졌습니다. 올해만 해당 공장의 당기순손실은 2300억원을 넘어섰죠. 업계에선 러시아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현대차 손실은 1조1300억원 수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현대차도 기약없는 기다림을 계속할 순 없었습니다. 또 공장 중단이 계속될 경우 러시아 정부 측에 몰수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들이 얽혀 결국 바이백 옵션을 걸고 현지 업체에 팔기로 결정한 것이죠.
과연 러시아 공장은 현대차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모두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바라는 가운데 현대차의 간절함이 빛을 볼지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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