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청탁을 받고 소속 직원에게 빠른 비자 심사를 지시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전 주몽골 한국대사가 1심에서 벌금 6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정재남 전 대사는 지난 2018년 5월 몽골 주재 대사로 부임했습니다. 이후 그해 11월, 한 몽골 전통복장 제조업체의 부사장인 A씨로부터 한 몽골인의 비자 발급 청탁을 받았는데요. 이후 대사관의 비자 담당 영사였던 B씨에게 신속한 심사를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몽골인의 입국목적이 불분명하고 불법 취업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비자 발급이 불허됐습니다. 이에 정 전 대사는 B씨를 불러 심사 결과를 미리 보고하지 않았다고 질책하며 비자 신청서를 신속하게 재심사하라고 지시하는데요.
이 일로 정 전 대사는 법정에 서게 됩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정 전 대사는 재판 과정에서 “신속한 비자발급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을 뿐 발급을 지시한 적은 없고 부득이하게 외교 목적으로 편의 제공을 하려 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는데요.
재판부는 정 전 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재외공관은 사정에 따라 자체적으로 사증을 발급하고 있는데 이 신청 순서를 무시한 외부 발급 요청은 부정 청탁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아울러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으로 국가 출입국 관리 의무를 교란하고 불법체류자를 양산할 수 있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정 전 대사는 대사관 업무의 최종적인 권한이 있음에도 부정청탁을 받아 죄질이 좋지 않고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형법 제123조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했을 때 직권남용죄가 성립됩니다. 이때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형법
일부개정 2023. 8. 8. [법률 제19582호, 시행 2023. 8. 8.] 법무부
제123조(직권남용)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이렇듯 직권남용죄는 범행의 주체가 공무원으로 특정되는 신분범죄입니다. 공무원이 아니라면 본죄의 주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죠.
그렇다면 형법 제 123조에서 규정하는 ‘직권 남용’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대법원의 1991년 판례에 따르면, 직권 남용이란 공무원이 그의 일반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것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 즉 형식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실질적으로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대법원 1991. 12. 27. 선고 90도2800 판결
[직권남용,직무유기] [공1992.3.1.(915),806]
직권남용죄의 “직권남용”이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것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 즉 형식적, 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중략) “의무”란 법률상 의무를 가리키고, 단순한 심리적 의무감 또는 도덕적 의무는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따라서 형식적으로도 당해 공무원에게 주어진 권한이 아니라면 직권남용죄가 아니라 별개의 범죄가 성립하는데요. 예를 들어, A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기초생활수급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외부에서 청탁을 받고 외국인등록사실증명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외국인 등록증을 빨리 발급해라”라고 협박성 업무지시를 했다면, 해당 공무원은 외국인 등록에 관한 권한을 갖고있지 않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아닌 뇌물죄나 협박죄 등이 성립됩니다.
또한 직권남용죄는 자신의 직권을 이용해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에도 성립되는데요. 정당한 권리행사 방해란 상대방에게 법령상 계약으로 인정되는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막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경찰공무원이 피의자로부터 허위자백을 받아내는 경우, 피의자의 인권보장을 위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해 직권남용죄가 성립됩니다.
대법원 2006. 2. 9. 선고 2003도4599 판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2006.3.15.(246),456]
[1] 형법 제123조가 규정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서 권리행사를 방해한다 함은 법령상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의 정당한 행사를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에 해당하려면 구체화된 권리의 현실적인 행사가 방해된 경우라야 할 것이고, 또한 공무원의 직권남용행위가 있었다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권리행사의 방해라는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하였다면 본죄의 기수를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본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권리행사의 방해와 그로 인한 결과적 손실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공무원의 직권남용행위가 있었다 할지라도 현실적인 결과가 발생하지 않으면 인정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2009년에는 경찰공무원이 특수절도죄로 체포된 피의자에게 범행을 부인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폭행 후 70건의 절도범죄를 인정하라고 요구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당시 해당 경찰공무원들은 특수절도죄 혐의로 기소된 C씨를 체포해 승합차 안에서 C씨의 입에 수건을 밀어 넣고 허벅지와 어깨 등을 폭행했습니다. 이후 실적 늘리기를 목표로 고문으로 겁에 질린 C씨에게 약 70건의 범죄 목록을 보여주며 “70건을 만들어 놨으니까 가지고 가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C씨는 해당 범죄 목록 중 27건은 범행하지 않았으나 또다시 고문당할 것을 염려하여 마지 못해 범죄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실적을 늘리려는 이유로 공모해 범죄수사권이 있음을 기회로 직권을 남용해 허위 자백을 시킨 건데요. 결국 이에 피고인들은 각각 징역 1년 4개월 및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렇다면 공무원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 법적인 선고 외에 어떤 징계를 받게 될까요? 현행 공무원 징계령에 따라 공무원이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혐의가 인정될 경우에는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징계를 받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의 직급과 소속에 따라, 중앙징계위원회나 보통징계위원회가 구성되어 해당 공무원의 징계를 결정하는데요. 징계위원회에서는 국가공무원법 제33조의 결격사유에 해당되는 범죄를 저지른 경우 해임, 파면 등의 해고나 강등, 정직 등의 중징계, 감봉, 견책 등의 경징계 여부를 판단합니다.
국가공무원법
[시행 2023. 10. 12.] [법률 제19341호, 2023. 4. 11., 일부개정]
제33조(결격사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중략
5.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에 그 선고유예 기간 중에 있는 자
6. 법원의 판결 또는 다른 법률에 따라 자격이 상실되거나 정지된 자
6의2. 공무원으로 재직기간 중 직무와 관련하여 「형법」 제355조 및 제356조에 규정된 죄를 범한 자로서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6의3.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사람으로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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