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기대되는 신인 배우들의 등장은 늘 반갑다. 올해 한국 영화계는 ‘위기론’까지 불거질 정도로 몸살을 앓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신선함으로 무장한 채, 한국 영화계를 반짝이는 빛으로 채워줬다. 괄목할만한 성과임이 틀림없다.
자꾸만 시선이 가는, 한국 영화의 미래가 되어줄 배우 TOP3를 선정해봤다. 선정 기준은 1월부터 12월까지 개봉했던 한국 영화에 출연한 배우 중에 선택했다. 편집자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선정했으니 재미로 보길 바란다. <편집자주>
결의에 찬 눈빛으로 응시하다
TOP1 ‘화란’ 연규 역 홍사빈 (2023. 10.11 개봉)
1997년생 배우 홍사빈은 경계를 가를 수 없는 모호함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어수룩한 소년 같기도, 헤어 나올 수 없는 폭력을 끊어내려는 지독한 남자 같은 인상을 풍기기 때문이다.
영화 ‘화란'(감독 김창훈)에서 연규 역을 맡은 홍사빈의 첫 등장은 강렬하다. 고민을 하는 듯, 발을 구르다가 이내 결심하고는 돌덩이를 들고 자신의 이복동생 하얀(김형서)를 괴롭힌 상대에게 달려가기 때문이다. 웅덩이에 비친 홍사빈의 얼굴에는 지치고 피곤함이 절어있다. 이곳에는 자신의 미래가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지옥과도 같은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규가 택한 것은 돈을 모으는 것. 모두가 비슷하게 산다는 네덜란드에 가는 것이 연규의 꿈 아닌 꿈이다.
어느날, 대부업 중간 보스인 치건(송중기)를 만나게 된 연규는 꿈을 실현시킬 방법을 찾는다. 치건의 밑에서 일하면서 돈을 번다. 하지만 연규가 해야 하는 것은 오토바이를 훔치거나 심지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이다. 새아버지가 자신을 때리던 폭력의 소굴인 집을 벗어나니, 이제는 본인이 폭력을 손에 쥐고 흔들어야만 한다. 무미건조하던 홍사빈의 표정은 이제, 단계적으로 변해간다. 처음 오토바이를 훔치던 순간의 짜릿함은 트렁크 차 안에서 튀어나와 어떤 이에게 약을 강제로 먹이면서 죄책감으로, 칼로 누군가를 찔러 죽여야 하는 처절함으로 변해간다.
특히, 치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송곳을 들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은 순진한 어린양이 늑대로 변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홍사빈은 첫눈에 어떤 배우라는 판단을 내릴 수 없기에 더 매력적이다. 새하얀 도화지 위에 자신만의 색깔을 얹듯, 그는 앞으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까? 아마 “멋지고 낭만 있게 연기하겠습니다”라는 제44회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수상소감처럼 그렇게 우리 앞에 서지 않을까 싶다.
이 세상 모든 소희들을 대신해 전한 목소리
TOP2 ‘다음 소희’ 소희 역 김시은 (2023. 02.28)
2017년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 사건을 소재한 영화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에서 배우 김시은은 이 세상 모든 소희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김시은은 꿈 많고 활기차던 소녀의 모습에서 어른들의 이기심에 의해 차츰차츰 시들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표현해냈다.
서툰 몸짓이라도 거울을 보며 자유롭게 춤을 추던 고등학생 소희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면서 경직되기 시작한다. 양옆으로 막힌 칸막이와 계속해서 울려대는 전화, 폭언을 일삼는 고객들, 성과로 압박하는 윗사람들까지. 싱글거리며 웃던 소희의 얼굴에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고단함이 새겨진다. 소희의 호소는 누구에게도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 주연이지만, 김시은은 신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착실하게 소희의 감정선을 묘사해나간다. 현장실습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기까지의 고민과 어디에도 자신의 편이 없다는 고립감은 김시은의 얼굴에서 점층적으로 쌓여간다. 가느다랗게 햇살이 가닿은 슈퍼마켓 안에서 빠져나와 호숫가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장면은 아직까지도 가슴이 아려온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다.
1999년생인 김시은은 하나씩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신인이다. 영화 ‘너와 나'(감독 조현철)에서도 하은 역을 맡아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공허함을 표현해내기도 했다. 차기작으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를 선택했다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김시은은 앞으로 장르, 캐릭터를 확장하며 한국 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배우가 될 것만 같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권모술수는 잊어라!
TOP3 ‘만분의 일초’ 김재우 역 주종혁 (2023. 11.15 개봉)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권모술수로 인지도가 높은 배우 주종혁은 사실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것은 2022년이지만, 그간 단편과 독립영화 작업을 하면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중견 신인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영화 ‘만분의 일초'(감독 김성환)의 주종혁을 언급해야만 했던 이유는 충분하다.
‘만분의 일초’에서 김재우(주종혁) 검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을 위해서 연습하는 공적인 목적과 어린 시절 자신의 형을 죽인 황태수(문진승)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사적인 목표를 지니고 있다. 자신의 가족을 풍비박산 낸 황태수가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위해 같이 합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써 참아내야만 하는 김재우는 자꾸만 몸이 경직되고 감정은 무너져내린다.
주종혁은 얼굴을 가리는 호면 사이로 삐져나오는 매서운 눈빛, 목검을 꽉 쥔 손목의 힘만으로도 관객들에게 감정을 전달한다. 주종혁은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황태수를 계속 지켜보면서 속으로 분노를 삼켜야만 하는 오밀조밀한 감정선을 캐릭터 안에 담아낸다. 말이 아닌 몸짓으로 표현해야 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테지만, 주종혁은 자신이 맡은 임무를 묵묵하게 잘 수행해낸다.
주종혁은 변검 하듯 빠르게 얼굴을 바꾸는 배우다. 전작에서의 강렬한 인상을 지워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들을 찾아가기에.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영화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에서도 주종혁의 다른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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