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이임식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비대위원장 수락 이유에 대해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애매해도 후회없이 휘둘러야 한다”고 했다. [연합] |
한동훈 전 법무장관이 더 ‘핫’해졌다. 내년 총선을 책임질 여당의 지휘자로 선택되면서 더욱 시선을 받는 인물이 됐다.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에서의 절박한 위기감 앞에서 한 전 법무장관(이하 한 지명자로 통칭)을 비대위원장으로 긴급 차출했고, 한 지명자 역시 이를 수락함으로써 ‘한동훈 비대위호(號)’ 출범은 코 앞에 두게 됐다. 여당이 정치경험이 없는 한 지명자를 총선 무대 정중앙에 ‘콜’한 것은 그의 잠재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거대 야당(더불어민주당) 앞에서 뚜렷한 승기를 잡지 못한채 무기력증에 허덕이고, 오랫동안 지지율 정체를 겪고 있는 벼랑끝 현실을 벗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한동훈 등판’이 무조건 필요했다는 것이다. 직설적인 화법과 세련된 이미지에 힘입어 한 지명자는 단숨에 스타장관에 오른 이고, 일부 여론조사에서의 차기 대통령 선호도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바짝 추격할 정도의 ‘잠룡’으로 부상한 인물이다. 여권으로선 ‘숨은 보배’였다. 이에 인기절정의 젊고 참신한 한 한 지명자를 총선 수면위로 끌어올리고 그를 앞세워 총선 지형도를 확 바꾸겠다는 게 여권의 노림수다.
내년 총선에 대한 위기감은 당 뿐 아니라 한 지명자도 온몸으로 감지하고 있는 듯 하다. 한 지명자는 법무장관 이임식에서 “9회말 2아웃 2스크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고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애매해도 후회없이 휘둘러야 한다”고 했다. 그 역시 내년 총선을 9회말 2아웃 2스크라이크까지 내몰린 위험상황으로 봤고, 이에 역전 한방을 노리는 역할을 자임했다는 의미다.
여당발(發) ‘한동훈 비대위’에 대한 시선은 기대 반 폄하 반이다. 여당은 당연히 긍정론을 띄우고 있고, 야당은 부정론을 공세 포인트로 삼고 있다.
여당 내에서 ‘여의도 문법’ 탈피를 외친 한 지명자의 정치스타일은 좀 다를 것이고, 이에 올드한 이미지의 보수진영에 혁신 깃발을 휘날릴 수 있다고 보는 이가 많다. 한 지명자는 “여의도 사투리가 아닌 5000만의 문법을 쓰겠다”고 했었다. 기존 정치와의 차별화를 의식적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에 진부한 여의도식 정치에서 벗어나 국민 눈높이에 맞춘 당 개혁에 메스를 과감하게 들이대고, 보수진영의 새로운 결집을 주도할 적임자가 바로 한 지명자라는 얘기가 많았다. 한 지명자에 대한 “젊음과 새로움으로 수십년 군림해 온 운동권 정치를 물리치고 탈진영 정치, 탈팬덤 정치 시대를 열 잠재력을 가진 사람”(윤재옥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이란 평가는 이런 시각을 반영한다.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중도층, 여성과 청년층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앞서 “지금 우리 당 상황이 배 12척이 남은 상황과 같다. 선거에서 진 다음에는 (한동훈을) 아껴서 무엇하나. 아무 소용도 없는 것 아니냐”(국민의힘 원로모임)는 얘기가 나온 것도 한 지명자에 총선 지휘봉을 맡겨야 당의 미래가 있다는 인식에 바탕 둔 것이다.
야당은 ‘한동훈 비대위’에 대해 깎아내리기에 분주하다. 검사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없는 한 지명자의 비대위원장 지명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일이라, 여당에 대한 심판론만 부추길 뿐이라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 검찰 출신의 한동훈 장관이 비대위원장이 되는 게 국민의 상식에 전혀 맞지 않는 결정”(김영진 의원),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다. 국정은 뒷전이고, 오직 선거에만 ‘올인’하고 있음을 스스로 입증한 것”(윤건영 의원·페이스북), “검찰 쿠데타의 모든 조각을 완성했다”(임종석 전 실장) 등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다만 한 지명자가 쉽게 보수층 결집을 이끌지 못하도록 견제의 끈을 풀어선 안되고, 특히 검사출신 비대위원장 체제의 여당이 상대적으로 ‘피고인 신분’의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리스크를 부각시키는 구도로 진행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냉철한 판단과 강력한 실행으로 여당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정성호 의원·페이스북)는 전제 아래 “당이 그런 프레임에 끼지 않도록 역할을 잘해야 한다”(전해철 의원)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한동훈 비대위’가 여권의 기대만큼 성과가 있을지, 야권의 관측대로 무성과로 그칠지 내년 총선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여당으로선 어쨌든 ‘한동훈 히든카드’라는 생사를 건 승부수를 던진 것은 확실하다. 한 지명자가 그동안 거대 야당인 민주당과의 각을 세우며 단숨에 스타로 오른 여권내 ‘최고 대어’임은 분명하지만, 정치력 검증은 안됐다는 점에서 여당으로선 대모험을 건 것은 분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요한 혁신위가 국힘의 첫번째 총선 묘수였다면, 한동훈 비대위는 여당의 두번째 묘수라고 봅니다. 세번째 묘수가 나와야 한다면, 그건 여당의 폭망을 의미합니다.” 바둑을 좋아하는 여당의 한 당직자는 한동훈 비대위 출범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디까지나 한동훈 비대위 선에서 총선 승리 전략을 마감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둑으로 따지면, 여당은 인요한(혁신위)에 이어 한동훈(비대위)이라는 ‘묘수’를 꺼내든 셈이다. 바둑에서의 묘수(妙手)는 ‘생각해 내기 힘든 좋은 수’를 뜻한다. 위기 상황에서의 묘수 한방은 코너를 빠져나오게 해주며, 오히려 승부를 반전시키는 힘을 지닌다. 그래서 역대급 묘수를 ‘신의 한수’라고 하지 않는가? 대표적인 것이 인간과 기계의 세기의 대결이었던 이세돌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국에서 나왔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거둔 유일한 승리는 4국이었는데, 패배직전에서 묘수 78수를 둠으로써 알파고의 항복을 받아냈다. 당시 언론들은 그래서 이세돌의 4국 78수에 대해 ‘신의 한수’라고 칭했다.
사실 여당이 첫번째 시도한 ‘인요한 묘수’는 한때 실패로 귀결됐으나, 결과적으론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인요한 혁신위는 ‘중진들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라는 혁신안을 놓고 김기현 전 대표와 대립하면서 요란한 충돌음을 냈지만, 어쨌든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와 함께 김 전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이끌어냈다. ‘한동훈=비대위원장’은 인요한 혁신위의 ‘공격적인 착점’없이는 나올수 없었던 카드였다는 점에서 제2 묘수 시도라고 볼 수 있으며, 이에 한동훈 비대위의 성패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재밌는 바둑 격언이 하나 있다. ‘바둑 한판에 묘수 3번이면 진다’는 것이다. 바둑을 모르는 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 바둑에서 세번이나 묘수를 뒀는데 왜 질까? 답은 ‘애당초 잘 뒀으면 묘수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묘수는 어디까지나 위험상황에서 최대한 머리를 짜내 내놓는 기발한 수다. 바둑판이 잘 짜여있고 형세가 유리하면 묘수는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묘수 3번을 둬야 할 정도면 판이 얼마나 불리한 것이었는지를 말해준다. 묘수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 그게 바둑에선 최상인 것이다. 여당에 세번째 묘수가 필요한 상황이 된다면 그것은 한동훈 비대위의 실패를 뜻하는 것이자, 상상하기 싫은 총선패배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세번째 묘수까지는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게 그 당직자의 말이었다.
한동훈 법무장관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위해 본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 |
이왕 ‘묘수’ 단어를 꺼낸 김에 한 지명자의 그동안 행보를 바둑과 연결해보자. 그의 스탠스를 반상(盤上)을 통해 유추해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입각 후 스타장관으로 부상하기까지 한 지명자의 스타일을 바둑으로 빗대면 공격형으로 일관해왔다. 청문회나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 의원과 다툴때 특히 공격형 바둑이 눈에 띄었다. ‘조제비’라 불린 조훈현 9단, ‘센돌’이란 별명을 가진 이세돌9단의 기풍이다. 상대방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난전을 즐기는 스타일들이다. 명석한 두뇌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까. 현재의 형세 유불리 보다는 반상을 어지럽게 만든뒤 감각적인 수로 반전을 꾀하는 스타일이다. 이는 화려한 기풍이다. 한 지명자가 직설적인 화법과 현란한 언어로 지지층의 환호를 받은 이유일 것이다.
한 지명자는 두터운 수비 보다는 공세를 즐겨하는 스타일이다. 남들이 튼튼한 한칸 띔(바둑에는 ‘한칸 띔에 악수 없다’는 말이 있다)을 선택할때도 눈목자나 두칸 띔 착점을 많이 했다. 여의도 사투리를 벗어나겠다고 하는 등 기존 착점 대신 신수(新手)에 대한 애착도 강했다. 튀는 행동으로 집중적인 비판에 올랐을땐 유독 대의명분을 강조하면서 바둑의 위기십결(圍棋十訣·바둑에서의 열가지 비법)에 나오는 사소취대((捨小取大·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함)식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바둑에서 공격에만 치우치다보면 수비가 약할 수 밖에 없다. 큰 그림(바둑판 전체)을 보는데 소홀할 수 있다. 공세에 취하면 자충수(自充手·스스로 자기 돌을 메워 위험을 자초하는 것)에 빠질 확률도 높다. 경위야 어떻든 ‘민주당 멍청이’ 발언 등의 초강경 멘트에서 보듯 공세 위주로 일관하는 한 지명자에 일각의 의아한 시선이 뒤따른 것은 사실이다. 한 지명자에 대해 낮은 점수를 주는 이들이 “장관일때와 당 대표때는 다른 법”이라며 “당 대표가 되면 본격적인 역공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때는 한 지명자의 대응능력 부족과 정치경험 미흡 한계가 분명히 노출될 것”으로 자신하는 배경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어쨌든 민주당으로서도 예상은 했다고 하더라도, ‘한동훈 비대위’가 본격 출범하는 만큼 총선 시나리오의 재설정이 다급하게 됐다는 게 중론이다. 여권의 인적쇄신 바람은 야당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야당에선 재차 이재명 대표 2선 퇴진론이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앞서 민주당 내에서는 혁신계 모임 ‘원칙과 상식’ 등 비주류를 중심으로 이재명 대표의 사퇴를 전제로 한 ‘통합 비대위’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었다. 야당의 한 당직자는 “이 대표 퇴진까지는 아니어도, 국힘이 큰 변화를 택한만큼 민주당 역시 총선을 향한 당내 개혁을 소홀히 하면 여당에 괜히 반사이익을 줄수 있다는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한 지명자는 당과 대통령실의 관계 정립에 대해선 “대통령이든, 여당이든 헌법과 법률의 범위 내에서 국민을 위해 협력하는 기관”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의 상식과 국민의 생각이라는 나침반을 갖고 앞장서려 한다”고도 했다. 앞서 한 지명자는 “누구를 맹종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 바 있다. 향후 정치 행보를 철저히 국민의 편에서, 국민의 시각으로만 행하겠다는 뜻이다.
암튼 보수 지지층 재결집과 중도층 확장이라는 특명을 안고 ‘한동훈 비대위’는 출범한다. ‘50세 여당 대표’라는 타이틀은 그에겐 영광이겠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본격적으로 불붙을 ‘집중 견제’다. 그러니 한 지명자의 앞날은 가시덤불이지, 장밋빛이 아니다. 한 지명자는 가시덤불을 넘고 묘수를 터뜨릴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서 맴돈채 결국 자충수를 둘 것인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참으로 정치권 총선 풍경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김영상 논설실장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