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22일, KBS 노동조합이 기자·PD 중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집단휴가를 통한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KBS는 이병순 사장 반대투쟁을 벌여온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이하 사원행동)’ 공동대표인 양승동 PD(파면), 사원행동 대변인인 김현석 기자(파면), 성재호 기자(해임) 등에게 같은달 16일 중징계를 결정했다. 이날 징계는 16년 만의 언론인 대량 해고 사태로 불린 YTN 사건에 이어 이명박 정부 들어 두 번째 언론인 해직 사태였다.
이에 KBS노조는 같은달 21일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부당징계 철회 투쟁’을 결정하고 22~23일 기자와 PD 전 조합원이 휴가를 내고 제작거부 투쟁이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또 사측에서 양승동 PD 등에 대한 중징계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28일부터 정시에 출퇴근하는 ‘연장근무 거부투쟁’을 무기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집단휴가를 쓰고 집회에 나선 22일 KBS 본사 민주광장에는 전국에서 약 500여 명의 PD들이 모였는데 KBS PD들의 제작거부는 1992년 당시 김철수 전 노조위원장(PD)의 유죄 확정판결 직후 회사의 직권면직 처분에 항거해 1박2일 동안 제작거부에 들어간 이후 17년 만이었다.
이날 민주광장에서 당시 ‘1박2일’을 맡던 나영석 PD는 “지금 파면 해임당한 분에 대해서도 사실 잘 모르는 분이지만 그럼에도 입사해서 처음으로 이런 자리까지 나오게 만든 것은 결국 상식을 모르는 경영진의 잘못된 선택이 나 같이 분노하지 않는 사람도 분노하게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구성원들이 투쟁을 이어간 가운데 1월29일 진행된 재심에서 사측은 양승동 PD와 김현석 기자를 파면에서 정직 4개월, 성재호 기자를 해임에서 정직 1개월로 징계수위를 각각 낮췄다. 이밖에도 정직 3개월을 받은 이상협 아나운서와 이준화 전주총국 PD에겐 각각 감봉 4개월을, 감봉 6개월 처분을 받은 이도영 KBS 경영협회장과 복진선 기자에겐 감봉 2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유일하게 사원행동에 속하지 않고 징계를 받았던 박승규 전 노조위원장은 감봉 3개월에서 경고로 징계 수위를 크게 낮췄다.
1999년 1월22일, 중앙일보는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하겠다며 관련 신청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이후 중앙일보가 삼성그룹에서 거짓으로 계열분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1년 1월22일, 소설가 박완서가 80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나목>으로 등단한 이후 <친절한 복희씨>,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을 썼다. 정부는 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1990년 1월22일, 민주정의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합당을 통한 신당창당에 최종 합의했다. ‘3당합당’ ‘3당야합’으로 불리는 세 정당의 합당으로 다음달인 2월 통합신당인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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