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김민준 삼양사 화학연구소 이온수지테크센터장이 지난 18일 대전 삼양사 화학연구소 이온수지물성분석실에서 이온교환수지 성능 검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양사 제공] |
[헤럴드경제(대전)=김은희 기자]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뿜어내면서 물속의 각종 미세 불순물을 제거하는 겁니다. 설탕 정제에 쓰이고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사용해요. 특히 초순수(Ultrapure water)는 반도체 웨이퍼나 디스플레이 패널을 씻어내는 데 필수죠. 공정 중에 쓰이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웬만한 산업에선 다 사용한다고 보면 됩니다.”
지난 18일 찾은 대전 유성구 화암동 삼양사 화학연구소에서는 군산과 울산 공장에서 만든 이온교환수지 제품의 성능을 평가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었다. 입자 크기와 분포가 균일한지, 이온교환 용량은 적정한지 열대여섯 가지 항목을 평가·분석해 제품력을 검증하고 있다.
이온교환수지는 말 그대로 이온을 교환할 수 있는 플라스틱이다. 고분자 모체에 이온교환기를 결합한 형태다. 이온교환수지는 주로 물을 정화하는 수처리나 특정 물질을 분리·정제하는 용도로 쓰이는데 우리 몸과 비교하면 신장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지름 0.3~1.0㎜ 내외의 작은 알갱이 플라스틱이지만 식품부터 의약, 발전소, 반도체, 촉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삼양사의 이온교환수지 제품 [삼양사 제공] |
대전 삼양사 화학연구소 실험실에서 현미경으로 본 이온교환수지의 모습. 입자 크기가 균일한 균일계수지로 일반 수지에 비해 반응속도가 빠르고 일정해 효율적인 이온교환이 가능하다. [김은희 기자] |
이날 물성분석실에서는 이온교환수지를 이용해 물속 이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긴 원통형 시험관에 갈색빛 양이온교환수지를 넣고 적정 속도로 물을 흘려보내니 처리수가 흘러나왔다. 물론 맨눈으로는 원수도 처리수도 투명해 차이를 알기 어렵지만 성능 평가 설비를 통해선 높은 비저항의 순수한 물로 바뀌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김민준 삼양사 화학연구소 이온수지테크센터장은 “이온교환수지 입자를 균일하게 만드는 게 핵심인데 전 세계에서 균일계수지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삼양사를 포함해 4~5곳뿐”이라며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다양한 산업군의 고객사에 필요한 맞춤형 제품을 개발·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양사는 국내 유일의 이온교환수지 제조사다. 일본과 미국, 독일이 주도해 온 이온교환수지 시장에 뛰어든 건 1976년. 당시 삼양사의 제당공장에서는 두 단계에 걸쳐 이온교환수지를 사용했는데 수입이 원활하지 않았다. 마침 화학 사업에도 진출했을 때라 이온교환수지를 직접 만들어 쓰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일본 미쓰비시케미컬과의 기술제휴로 출발한 이온교환수지 사업은 현재 제품 200여종을 전 세계 50개국, 400개 기업에 판매하는 핵심 사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최근에는 성장성이 큰 스페셜티 부문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근래만 보더라도 스페셜티 부문의 매출 비중이 2021년 30%에서 2023년 40%로 늘었다. 같은 기간 연평균 20% 이상의 높은 매출 증가율을 기록한 것도 스페셜티 제품의 높은 수익성 덕분이다. 범용 제품 가격이 L당 3000원 정도라면 프리미엄 제품은 1만5000원꼴로 다섯 배가량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전 삼양사 화학연구소 이온수지물성분석실에서 이온교환수지를 이용해 물속 이물질을 제거하는 있는 모습. 긴 원통형 시험관에 담긴 갈색빛 양이온교환수지로 물을 흘려보내면 왼쪽의 얇은 관으로 처리수가 나온다. [김은희 기자] |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초순수용 이온교환수지가 대표적인 스페셜티 제품이다. 초순수는 일반수에서 전해질과 무기질, 미립자, 박테리아 등 불순물을 제거해 이온 함유량이 0%에 가까운 극도로 순수한 물이다.
나노미터 단위의 세밀한 공정을 거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아주 작은 불순물이라도 불량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생산 공정 중에 나오는 부산물을 물로 씻어주는데 이때 전도성을 띤 물은 고장을 일으킬 수 있어 불순물이 없는 초순수만을 사용한다.
김 센터장은 “특히 반도체 기업이나 발전소는 엄격한 품질 사양을 요구하는 데다 한 번 시스템을 구축하면 장기간 유지·운영하려는 경향이 강해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중국, 대만, 파키스탄에서 먼저 운영 실적을 쌓으며 검증받고 국내 기업으로 들어오게 됐다”고 전했다.
삼양사는 2012년 국내 디스플레이 생산기업에 이온교환수지를 전량 공급하기 시작했고 지난해부터는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과 이온교환수지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납품을 시작했다. 국내외 다수 반도체 업체와도 공급 계약을 진행하고 있어 공급 규모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발전소용 수지도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제품 인증을 획득하고 공급 계약을 수주한 상황이다.
대전 삼양사 화학연구소 이온수지 초순수실에 있는 초순수 제조 설비의 모습. 왼쪽 탱크에는 삼양사가 만든 이온교환수지가 들어 있다. 여러 수처리 공정을 거쳐 반도체 세정용 초순수가 완성된다. [김은희 기자] |
대전 삼양사 화학연구소 이온수지 초순수실에 있는 이환교환수지 설계 프로그램 실험장치의 모습. [김은희 기자] |
연구소는 ‘미니 공장’의 역할까지 한다. 초순수 제조를 위한 장비 일체가 있어 이온교환수지가 제 역할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고 이온교환수지 설계 프로그램 실험장치로는 특정 조건에서 필요한 교환 작용을 하는 수지를 개발할 수 있다.
김 센터장은 “원료를 얼만큼씩 조합하느냐, 어떤 교환기를 도입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제품이 된다”면서 “시제품 생산에 보통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고객사 테스트에도 최소 1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지만 첫 거래가 어렵지 거래를 트고 나면 장기 계약을 맺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했다.
김민준 삼양사 화학연구소 이온수지테크센터장이 지난 18일 대전 삼양사 화학연구소에서이온교환수지가 적용된 수소차 연료필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양사 제공] |
삼양사는 수소차, 이차전지 등 미래 산업을 위한 소재 개발도 진행 중이다. 2021년 수소차 연료필터에 필수적인 이온교환수지를 상용화해 국내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고 있고 전기차 폐배터리를 재활용할 때 리튬 회수에 필요한 이온교환수지도 개발하고 있다.
삼양사는 2016년 군산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균일계 이온교환수지 전용 공장을 완성했다. 향후 스페셜티 전용 공장을 추가로 만들어 유기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오는 2025년까지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게 삼양사의 단기적인 목표다. 현재 40% 수준인 국내 점유율을 2025년 50% 이상으로 확대하고 반도체, 원자력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도 넓힐 방침이다.
김윤 삼양그룹 회장이 지난 2일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삼양 제공] |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삼양그룹은 올해를 ‘뉴(New) 삼양’으로 변화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스페셜티 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환은 김윤 삼양 회장이 제시한 회사의 핵심 방향성이다. 이온교환수지 사업에서의 스페셜티 부문 확대도 같은 차원이다.
김 회장은 “삼양이 추구하는 새로운 100년 성장전략의 핵심은 스페셜티와 글로벌”이라며 “스페셜티 소재와 솔루션으로 인류의 삶을 바꾸고 풍요롭게 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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