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 성장률 내년까지 부진…가격경쟁 치열
보급형 모델 내놓는 기아, 연착륙 가능성 높아
현대차 아이오닉 7, 작년 기아 EV7 전철 밟을 수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본격화된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가 올해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전동화 전환 전략에도 먹구름이 꼈다. 현대차‧기아는 올해부터 공격적인 전기차 출시를 예정해놓고 있어 시장 상황 악화가 치명적 악재가 될 수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하반기 준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 7을 출시할 예정이다.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 위탁 생산하는 경형 SUV 캐스퍼의 전동화 모델도 하반기 출시한다.
기아는 3월 말 소형 전기 SUV EV3를, 9월 말에는 준중형 전기 세단 EV4를 각각 출시한다. 내년 상반기엔 중국에 판매 중인 준중형 전기 SUV EV5의 국내 버전도 내놓는다.
이미 이들 전기차의 생산‧판매를 위한 설비 구축작업도 마무리 단계다. 기아의 경우 EV3와 EV4 생산을 위해 오토랜드 광명 2공장을 현대차그룹 최초의 전기차 전용공장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지난해 말 마무리했다.
이곳의 생산능력은 연간 15만대 규모로, EV3와 EV4 두 차종만으로 국내 시장에서 소화하긴 힘든 물량이다. 내수 뿐 아니라 수출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역시 아이오닉 7 생산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아산공장 가동을 멈추고 전기차 생산설비를 갖추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공사는 내달 13일 마무리된다. 아이오닉 7 역시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겨냥한 모델이다.
GGM 역시 하반기 캐스퍼 전기차 양산을 목표로 설비 전환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생산 목표 4만8500대 중 전기차로만 1만7000대를 책정해 놨다.
문제는 최근 시들해져버린 전기차의 인기다. 현대차그룹 싱크탱크인 HMG경영연구원은 전세계 순수전기차 시장 성장률이 2021년 117.1%, 2022년 65.2%에서 지난해 26.0%로 크게 둔화된 데 이어 올해는 23.9%로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에는 다소 회복되겠지만 성장률은 25.3%로 전기차 고도성장기인 2021~2022년 수준을 회복하긴 힘들 것으로 봤다.
전기차 시장이 얼리어답터 수요가 어느 정도 충족되고 대중화로 넘어가는 단계로 접어들면서 가격이나 충전의 번거로움 등 소비자들이 느끼는 단점이 부각돼 당분간 고성장을 재현하긴 힘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나마 올해 중저가 보급형 모델을 내놓는 기아는 연착륙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기아는 지난해 10월 ‘기아 EV데이’에서 전기차 신모델들을 공개하며 EV3, EV4, EV5 등 보급형 3종의 가격이 3만5000~5만 달러(약 4700만~6700만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출시하는 EV3와 EV4의 경우 보조금을 적용하면 3000만원대에 구매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적용하지 않은 내연기관 파생 전기차 니로 EV나 코나 EV와 비슷한 가격대가 예상된다.
최근 글로벌 전기차 업계 리딩업체인 테슬라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서는 상황과 들어맞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차 아이오닉 7은 상황이 다르다. 큰 차체에 고용량 배터리를 탑재하고 프리미엄 수요층을 겨냥하는 준대형 전기 SUV 차급의 특성상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같은 차급인 기아 EV9(7337만~8397만원)보다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힘든 구조다.
지난해 6월 출시된 EV9은 11월까지 월평균 1000대에도 못 미치는 부진을 거듭하다 12월 자사 및 계열사 임직원은 물론, 협력사 임직원에다 친인척까지 최대 2000만원을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2688대의 재고를 밀어내가며 연말까지 7개월간 8000대 판매에 턱걸이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와 함께 고가 전기차의 인기가 급락한 지난해 하반기에 출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지난해 10월 기아 EV데이 당시 “EV9을 처음 론칭했을 때 젊은 수입차 소비자층을 가져오는 게 목표였지만, 국내에서 기대했던 만큼 (판매량이)나오고 있진 않다”면서 사실상 EV9의 출시 타이밍이 좋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이런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올 하반기 출시되는 아이오닉 7 역시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설비 개조까지 진행 중인 상황이라 출시 타이밍을 늦추는 식의 전략 변경도 고려하기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고가 전기차를 팔기 힘든 쪽으로 시장 상황이 흘러가고 있어 아이오닉 7이 EV9과 달리 큰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플래그십 모델은 하위 차급 선호도까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다양한 라인업을 갖춰놓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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