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엄앵란 주연…영상자료원 발굴한 16편 순차적으로 공개 예정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구태의연한 한국 영화의 문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법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였죠.”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기로 불리는 1960년대 새로운 스타일의 신예 감독으로 주목받은 정진우(87) 감독은 26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초기작 ‘배신'(1964)에 관해 이렇게 회고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영상자료원이 새로 발굴한 1960∼1970년대 극영화 16편이 공개됐다. 이 가운데 디지털 복원을 마친 ‘배신’을 포함한 5편은 일부 영상도 상영됐다.
정 감독은 1963년 ‘외아들’로 데뷔했다. 당시 20대 중반이던 그는 기존 한국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실험을 시도하는 젊은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인 ‘배신’은 이런 경향을 뚜렷이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이 영화는 건설사 비리를 무마하는 해결사 노릇을 하는 폭력 조직의 성훈(신성일 분)이 보스(장동휘)의 애인 지원(엄앵란)과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당시 멜로 드라마는 대체로 풍속과 세태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에 충실했지만, ‘배신’은 현실 묘사에 연연하기보다는 운명적 사랑을 탐미적이고 감성적인 스타일로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는 당대 최고의 스타 신성일과 엄앵란이 실제 커플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작품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정 감독은 언어보다는 영상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다며 “(신성일과 엄앵란이 연기한 남녀 주인공의 이별도) 제재소에서 커다란 원목이 반으로 덜컥 갈라지는 걸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서울 아카데미극장에서 처음 상영했는데,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매진이었다”며 “(‘배신’을 시작으로) ‘밀회'(1965), ‘초우'(1966), ‘하숙생'(1966), ‘8240 K.L.O'(1966) 등 히트작을 내면서 그 힘으로 버텨온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정 감독의 주요 작품으로는 이 밖에도 ‘심봤다'(1979),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자녀목'(1984) 등이 있다.
영상자료원이 이번에 발굴한 극영화에는 ‘배신’ 외에도 안현철 감독의 ‘어머니의 힘'(1960), 이병일 감독의 ‘서울로 가는 길'(1962), 김기 감독의 ‘목메어 불러봐도'(1968), 김수용 감독의 ‘석녀'(1969) 등이 포함됐다.
임권택 감독의 ‘비나리는 선창가'(1970)도 이번에 발굴됐다. 임 감독의 흥행작 ‘장군의 아들'(1990)로 이어지는 액션 영화 문법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영화들은 영상자료원이 KBS가 보관 중이던 16㎜ 극영화 필름 88편을 이관받아 정밀 실사를 통해 발굴했다. 영상자료원은 이들 작품의 디지털 복원을 거쳐 순차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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