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잿더미로 변한 공장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소방 구조대원 2명이 순직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용재·박지영 기자]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육가공 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 뛰어든 소방관 2명이 주검이 된 채 발견됐다. 지난해 12월 제주도 감귤 창고 화재에서 5년차 소방관이 순직한 지 두 달만의 일로, 소방 내부에서는 반복되는 소방관 순직을 막기 위해서는 ‘구조대원 구조대’ 의무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방관과 구조대원 양성교육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2일 소방청과 경북도소방본부에 따르면 31일 오후 7시 47분쯤 경북 문경시 신기제2일반산업단지의 육가공 제조업체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진압 과정에서 문경소방서 119구급구조센터 김수광(27) 소방교와 박수훈(35) 소방사가 순직했다.
이들은 8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뒤 “건물 안에 공장 관계자 등 구조 대상이 있을 수 있다”는 말만 듣고 내부로 진입했다가 불길의 확산되면서 오후 8시 24분쯤 고립됐다. 이 사실을 확인한 뒤 소방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두 소방관 구조에 힘을 쏟았으나 역부족이었다. 구조 작업을 벌인지 4시간가량 지나 0시 21분 김 소방교를, 8시간가량 뒤 박 소방사를 발견했다.
1일 오전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 당국이 진화 중 고립된 소방관 구조에 나서고 있다. [연합] |
소방관 순직 사례는 매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은 24명이고, 부상자는 4658명이다. 현장에서 화마에 뛰어들고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 중 매년 5명가량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900명 이상이 다치고 있는 셈이다.
소방관 순직 사고가 발생할 때 매뉴얼 강화 등 재발방지 대책을 정부에서 내놓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게 소방 내부의 설명이다. 이에 소방 내부에서는 ‘고질적 인력 부족 문제’를 언급하며 인명구조팀을 구조하는 ‘구조대원 구조대(Rapid Intervention Crew·RIC)’에 관한 규정을 ‘지휘관 재량’에만 맡기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방구조대원을 위해 미국에서 재난현장 표준작전 절차수립에 관한규정(SOP)을 도입했으나, RIC 규정을 ‘지휘관 재량에 맡긴다’라고 바꿔 가져와 문제라는 것이다.
이병남 아주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가 쓴 ‘화재 현장 소방관 구출을 위한 긴급대응팀 운영실태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미국 SOP·산업안전보건청 등 규정을 보면 유사시 구조대를 구조할 최소 2명의 RIC 대원이 있어야 한다는 ‘강행규정’이 존재한다. 다만 한국 SOP 규정집을 보면 구조대원이 위기 상황에 처할 경우 ‘지휘관 재량’에 맡긴다는 규정만 존재한다.
이창석 소방노조 사무총장은 “동료를 구할 수 있는 인명 구조팀에 대한 규정이 SOP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문제”라며 “구조대원을 구조하는 팀에 대한 규정을 넣으려고 추진하고 있지만, 워낙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현장 지휘관 역량으로만 지휘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채진 목원대학교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결국 미국처럼 RIC를 운용하기에는 인원이 빠듯하다”라며 “인력 구조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구조대원을 백업해 주는 RIC 요원을 상상하기 힘들다. 제도가 보완되고 인원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7시 47분께 경북 문경시 신기동 한 육가공 제조업체에서 발생한 화재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구조대원들이 인근 공장을 통해 화재 현장 진입로를 찾고 있다. 4인1조인 이들 가운데 두 대원은 끝내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연합] |
현장 지휘관의 ‘지휘 경험 부족’을 언급하는 관계자도 있었다. 한 소방노조 관계자는 “소방 내부에 내근직 우대 분위기가 존재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현장 경험이 없는 지휘관이 무리하게 소방관을 진입시켜 순직 사고가 많이 발생하기도 한다”라며 “인명이 없다고 현장에서 판단되면 무리하게 진입을 시키면 안되는데, 경험 부족으로 무리하게 진입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 사무총장 역시 “내근만 하다가 시험 쳐서 현장 지휘부를 다는 경우도 많다”라며 “그러다 보면, 현장 경험 없는 지휘관과 현장경험 많은 센터장의 대립이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소 현장 지휘관 위치로 승진하려면, 최소 50% 정도의 근무 이력이 현장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걸 소방노조는 요구하고 있다”라며 “현장에서 판단은 1분, 1초가 중요하기 때문에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이 지휘관으로 올라가면 안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1일 경북 문경소방서에 공장 화재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하다 순직한 소방 구조대원 2명을 기리는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연합] |
전문가들은 ‘소방관 양성교육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구조 훈련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기관이 없다”라며 “보통 특채를 해서 특수부대 출신을 뽑는데, 체력은 강하지만 소방 구조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전국에 소방학교가 8개 있는데, 실물화재에 대한 연습은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실물 화재 훈련장을 조금 더 다양화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며 “미국 텍사스 소방학교의 경우 실제 상황을 연출해서 훈련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방청은 인명 구조가 필요 없었던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순직한 데 대해 현장 지휘·대응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합동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현장 지휘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여부 등을 포함해 반복되는 순직을 막을 방안 등을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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