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 대상 법 적용 가능한가? ‘실효성 논란’… 결국 국내 빅테크만 옥죄 경쟁력 저하될 것
美 상공회의소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 반대… “외국기업 임의로 겨냥, 무역 합의 위반”
“실증적인 검토 없이 적용 되는 사전규제” 비판 봇물… 공정위 4대 금지행위 애매모호 ‘쿠팡’ ‘배민’은 일단 빠져
빅테크,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자율규제 방침에서 다시금 엄격한 사전규제안으로 선회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와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2년 10월 카카오 서비스 먹통 사태 이후였다. 이전부터 안 좋았던 카카오에 대한 여론은 더욱 나빠졌고, 정부 역시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전부터 강조한 플랫폼 기업에 대한 자율 규제 원칙을 고수하기 힘들어졌다.
이후에도 카카오 경영진과 관련된 문제들이 불거지며 급기야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이 “카카오의 택시 횡포는 매우 부도덕하다”는 직접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의 달라진 입장은 이후 공정위의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이하 플랫폼법)’ 추진 소식으로 이어졌다.
EU의 디지털시장법 벤치마킹,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네이버·카카오 동네 북?
플랫폼법은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소수 핵심 플랫폼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하고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자사 플랫폼 이용자에게 경쟁 플랫폼 이용을 막는 행위), 최혜대우 등에 대한 규제를 골자로 한다.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규제 대상이 되는 ‘지배적 사업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인데, 이 부분이 모호하다. 규제 대상 국내 기업으로 거론되는 것은 우선 네이버와 카카오 정도다. 글로벌 기업 중에는 지속적으로 앱마켓 관련 논란이 일었던 애플과 구글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런데 또 쿠팡이나 배달의민족(이하 배민)과 같은 기업은 제외가 됐다.
공정위 플랫폼법 추진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외에서는 마치 봇물 터지듯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선 학계와 업계에서 지적하는 부분은 ‘이 법이 과연 해외 플랫폼을 규제할 수 있을 것이냐’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애플, 구글과 같은 글로벌 빅테크를 대상으로 수 차례 규제 시도가 있었지만, 대개는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며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이번 플랫폼법이 상당 부분 EU(유럽연합)의 DMA(Digital Markets Act, 디지털시장법)을 벤치마킹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중심의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대항할 자국 플랫폼 기업이 부재한 상황에서 EU가 택한 강력한 규제 방식을 자국 플랫폼 기업이 존재하는 한국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美 정·재계 대놓고 반대 입장 밝혀… 미국 기업 규제? ‘중국 기업 이익 될 것’
공정위의 플랫폼법 추진 사실이 알려지자 당장 미국 재계를 대변하는 상공회의소가 ‘법안에 큰 결함이 있다”며 공개적 비판과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찰스 프리먼 아시아 담당 부회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플랫폼 규제를 서둘러 통과시키려는 한국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다. 표면적인 입장은 소비자의 실익을 저해하는 경쟁을 짓밟고 건강한 규제 모델의 기본이 되는 좋은 규제 관행을 무시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내는 다분히 자국 기업인 애플, 구글, 메타, 아마존에 대한 규제를 막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국의 플랫폼법 제정이 중국 기업의 이익을 준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윌리엄 라인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최근 한국 플랫폼법 추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기고를 하기도 했다. 미국 기업들을 규제한다면 중국 기업의 이익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특히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국무장관을 맡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측의 이러한 우려는 사실 국내에서도 제기되는 문제기도 하다. 틱톡을 비롯해 최근 온라인 유통 서비스 업계에서는 알리, 테무와 같은 중국계 기업들이 한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며 단숨에 국내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동시다발 토론회 이어져…’국내 플랫폼 경쟁력 약화’ ‘소상공인·스타트업계에도 악영향’ 한 목소리
공정위의 플랫폼법 추진 움직임이 빨라지자 국내 관련 업계 전문가, 학계 등에서도 강력한 우려가 앞다퉈 나오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제2 소회의실에서는 ‘소비자 권익 관점에서 본 플랫폼 경쟁 촉진법안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플랫폼법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소비자의 실익을 저해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공정위가 정한 4대 금지행위로 인해 카카오 선물하기, 네이버 지도 앱에서 음식점이나 카페를 예약하는 서비스가 중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 서비스가 기본적으로 다양한 부가 서비스와 연계되는 환경에서 멀티호밍 제한과 최혜대우를 금지할 시 기업들의 신규 서비스 개발 의지가 꺾이고, 이로 인해 소비자 실익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소상공인들에게 미칠 악영향도 언급됐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대형 플랫폼을 통해 영업을 하며 활로를 찾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를 도입하면 시장이 정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그 외에도 글로벌 빅테크를 규제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내 토종 플랫폼의 발전을 가로막아 국가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같은 날 열린 스타트업얼라이언스·디지털경제포럼이 개최한 ‘플랫폼 규제 법안과 디지털 경제의 미래’ 토론회에서도 플랫폼법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이 토론회에서는 플랫폼법이 입법 취지와 달리 스타트업 등 혁신산업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형 플랫폼 규제론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첫 발제를 맡은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자율규제 모델을 채택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적인 국내 시장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강력한 플랫폼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며 “한 국가의 산업정책은 당사자가 최소 10년은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면밀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디지털 플랫폼 정책 방향은 규제가 아닌 진흥을 위한 것이 되야 한다”며 ▲사전규제 지양 ▲글로벌 경쟁력 증진 ▲협력적 거버넌스 설계 ▲이용자 후생 증진 ▲적극적 자율규제 등 다섯 가지 원칙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두번째 발제를 맡은 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플랫폼법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주제 발표에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며 “공정위의 4대 금지 기준은 정의도 모호하고 현실성이 없다”고 직격했다.
특히 전 교수는 10년 전 판도라TV가 국내 동영상 서비스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했지만 정부의 규제로 인해 유튜브에 주도권을 빼앗긴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의 삶이 플랫폼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중하지 않은, 어설픈 규제를 하면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 AI를 필두로 글로벌 혁신산업의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디지털 분야의 규제가 이어지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이상우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가 좌장을 맡아 디지털 경제 및 스타트업 생태계에 필요한 플랫폼 정책의 역할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이 교수는 “경제계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법안을 이처럼 급하게 만들고 처리하는 국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하며, 학계, 산업계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민호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법, 경쟁법 등 사회법의 제정 배경을 설명하며, 일방과 상대방의 지위에 불균형을 막기 위한 법들은 최소 100년 이상 치열한 논쟁을 거쳐왔음을 강조했다. 이어 공정위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EU의 디지털시장법은 “통과된 이후에도 EU에서 여전히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원식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학적으로 사전규제를 도입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진입장벽에 대해 설명했다.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극복할 수 없는 진입장벽인지에 대한 근거는 이론적•실증적으로 부족해 사전규제의 명분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곽규태 순천향대학교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는 “플랫폼은 그 자체가 시장이면서 연합체”라며, 하나의 사업자를 억제하면 연합체 자체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규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오늘날 우리는 플랫폼을 통해서 모든 일상생활을 하므로 제조업을 포함한 국가 산업과 경제가 모두 플랫폼과 연관되어 있다”며 규제의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보여 시간이 걸리더라도 규제영향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환 부경대학교 휴먼ICT융합전공 교수는 “공정위가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플랫폼, 스타트업 등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자국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는 저력을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때라며, 시장을 더 잘 가꾸고 독려해 줘야 할 때 오히려 화단을 짓밟으려고 하는 행위들은 근본적인 측면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공정위가 추진하는 강력한 사전 규제는 한국에서 플랫폼 기업이 어느 규모 이상 성장하기 힘들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진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최근 벤처캐피탈 등 많은 스타트업 투자사로부터도 플랫폼 규제 법안에 대한 우려가 들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 대표는 “네이버, 카카오 등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스타트업 투자와 M&A를 하는 기업”이라며 “(플랫폼법으로 규제 시)적극적인 투자를 저해해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과거 국토부가 ‘타다금지법’을 추진하며 ‘더 많은 타다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이날은 한국지역정보학회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제 쟁점 진단’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역시 무리한 플랫폼법 추진 국내 플랫폼 사업자만 규제하는 부작용 우려와 함께, 플랫폼과 스타트업 투자·성장을 저해, 이어지는 소비자 후생을 훼손 문제가 제기됐다.
토론회 첫 발제를 맡은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의 플랫폼법과 관련해 학계에서는 어떤 기업이 규제의 대상이 되는지,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 네 가지의 금지행위의 위반시 입증책임을 전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유럽의 모델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우리에게도 유럽과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등 많은 의문이 던져지고 있다”며 “어떤 법이 그 규제의 필요성만을 반복적으로 언급할 뿐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다른 법과의 관계(정합성 등)에 대한 설명을 추후 협의 후에 논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가 사회적 갈등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서 교수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이 만들어질 정도로 현행법에 문제가 많았나에 대해 조망해야 한다”면서 “현행 법의 한계를 실증 분석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날 참석한 박정원 안동대 교수는 “독과점 시장 기준을 명확히 하면 될 것을 사전규제를 강화가 우선되는 것이 의문”이라며 “법에서 (사전에 규제해) 정해 놓은 대로 서비스하라는 것은 기업들의 신규 서비스 개발 의지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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