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두 정치인의 입에서 여성징병 이야기가 나왔다. 한 사람은 안티페미니즘(反여성주의) 정치의 기수로 익히 알려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다. 다른 한 사람은 신당을 창당하며 “진짜 페미니즘 정당”을 천명한 금태섭 새로운선택 대표다. 공교롭게도 페미니즘을 기준으로 반(反)과 정(正)의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두 정치인이 여성징병이라는 민감 사안에 입을 모았다.
두 당이 제시한 여성징병 이슈엔 질적 차원을 떠나 다소 간의 차이가 있다. 이 대표는 경찰·소방 등 직렬에 따른 병역의무화를 시작으로 “한쪽 성별만 부담했던 병역을 나머지 절반이 조금씩 더 부담해 나가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발판으로 군대를 ‘시민권 획득’을 위한 자격요건으로 설정한 셈인데, 이를 이른바 ‘이대남 전략’에서 본인이 소환했던 공정의 개념으로 정당화한다.
반면 금 대표 측은 ‘가사에서 병역까지의 성평등’을 주창한다. 구조적 성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 대표적 사례가 가사 불평등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성만 군대에 가는 병역불평등의 문제 또한 해결해야한다는 취지다. ‘장기적 논의’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스스로 인정한 구조적 차별에서 돌봄이라는 특정 요소를 골라내 병역과 맞교환하자는 식의 공정담론은 구조적이라기 보단 기계적 관점에 가깝다.
새로운선택 측은 △저출산 해결을 위한 돌봄평등 △병력감소 해소를 위한 병역평등 등 다소 실용적 근거를 통해 ‘여자도 군대 가라’는 식의 억울함의 논리를 피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돌봄과 안보라는 별개의 조건을 젠더정책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엮어냈다는 점에서 이른바 이준석식 이대남 전략에 호소했다는 혐의를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표현을 빌리면 “성차별을 ‘젠더 갈등’으로 오해한 결과”다.
이 대표의 여성징병은 본인이 가장 잘해온 일의 연장선이다. 즉 그는 여성징병 이슈를 통해 성차별의 구조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특정 계층에 포퓰리즘적 호소를 전한다. 반면 젠더문제를 기준으로 이 대표 측과 각을 세워온 금 대표는 여성징병을 제3지대 통합을 위한 정치적 교환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관련기사 : 류호정·금태섭, 이준석에 러브콜?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 아냐”)
다만 두 사람이 여성징병을 어떤 목적과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는가에 관계 없이 두 여성징병 정책엔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선택과의 결합 직전 세번째권력을 이탈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군대 내 성차별·성폭력 문제를 지적하며 “현재 존재하고 있는 성차별의 구조를 극복하지 않으면 현재 군에서 여성이 늘어나는 것이 얼마나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라고 평가한 것처럼,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점이다.
피스모모 평화 페미니즘 연구소의 기획으로 김엘리 외 6인이 엮은 책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징병제의 실질적인 변화를 추동하지 못하고 (혹은 추동하지 않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정치권 속 여성징병 이슈를 비판하며 그들이 ‘말하지 않고 있는’ 군대의 속성과 군대를 다루는 사회의 속성에 집중한다. 저자 조서연은 이렇게 묻는다. “그처럼 공허한 반복이 왜 계속될까?”
실제로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에 위헌 판결을 내린 이후 정치권에선 ‘군 가산점제’의 부활 혹은 ‘여성 징병제’ 도입 등을 골자로 남녀 병역평등 논의를 수시로 꺼내왔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실성과 당위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선거에서 일부 남성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한 데 그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에도 지난해 10월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가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여성 군사기본교육 의무화 정책을 주장, ‘이대남(20대 남성) 표심 공략’을 위한 정략적 행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당시 국방부는 해당 주장을 가리켜 “사회적 논란이 야기될 우려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여성 징병제 도입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방부는 초근 이 대표와 금 대표의 정책제안으로 여성징병이 다시 화두가 되자 지난달 30일 이번에도 여성 징병제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며 “신중하게 검토하거나 결정돼야 할 사안”이라고 같은 입장을 밝혔다.
저자 김엘리는 반복되는 여성징병 담론이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발현한 젊은 남성 계층의 억울함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국가를 중심으로 엮어진 집단 정체성은 약화되고 개인이 각자도생하는 시대”에 군복무는 개인에게 인생의 손실로 여겨지게 됐고, 그 “억울함의 비교 대상이 여성 집단으로 확장되고 오히려 남성이 차별을 받는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국가와 사회는 취업연계 등 소규모의 매력 포인트를 매만질 뿐 군대의 존재와 속성을 근본적으로 뒤바꾸진 못하고 있다. 결국 여전히 여성을 ‘군대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환원하는, “시민-군인이념(citizen-soldier ideal)”에 기반한 군대의 ‘초남성성’과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이라는 양축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정치인들은 이 ‘억울함’을 활용하는 가장 쉬운 길을 택한다.
“커뮤니케이션학자 김정희원은 이를 담론적 폐쇄로 설명한다. 담론적 폐쇄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사회적 논의에 들어올 공간조차 마련하지 않는 채 ‘노오력’하는 각자도생의 길을 강조하고 그 길에서 만난 타인들을 타자화하거나 적대시하는 인식을 합리화한다. 그래서 폐쇄담론은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의 실체를 은폐하면서 기득권자의 입장을 부각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자체가 내용이 모호하니 20대 남성들의 피해와 공정성의 목소리는 정치인들에게 전유되기 쉽다.”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85p
저자는 최근 사회에서 여성징병 화두를 가장 강력하게 추동하는 반페미니즘 현상이 “바로 이 사회적 폐쇄 전략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한국전쟁과 분단, 군사정부, 남북한의 군사대립이라는 긴 역사를 거치면서” ‘모두가 군대에 가야 한다’는 신념이 우리사회엔 누적되었고, 구축된 사회문화의 양식이 변화하지 않는 가운데 “이 자장 안에서 사람들은 병역의무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방법으로 여성징병제를 손쉽게 지목한다.” 김 전 대표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 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그리고 금 대표가 제3지대 통합을 앞두고 그런 것처럼 말이다.
여성징병 논의의 결말은 어때야 할까. 여성징병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를 둘러싼 논의에서 대부분의 진영은 ‘성평등’을 주창한다. 여성이 아닌 남성이 받는 차별을 해결하는 성평등, 혹은 여성의 차별을 해결한 상태에서 (혹은 해결하기 위해) 이뤄져야 하는 병역 내의 성평등 등 각자의 논리로 성평등을 전유한다. 저자는 진보나 보수, 국방부 모두가 이 성평등 프레임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것이 “병역의 다기한 논점들을 단순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성평등 프레임을 접목할 때 여성징병은 “시민-군인 이념을 급진적으로 해체하고 성평등을 재구성할 여지”를 주기도 한다. 실제 금 대표는 이 대표와의 토론에서 해외 국가 내 여성운동 중 하나로 입대를 위한 여성투쟁 사례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여성징병 논의에서 많은 부분 “성평등은 공정성과 결합하여 피해자 정체성을 내세우면서 동일한 분배를 할당하는 뜻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이는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몸의 능력을 가늠”하고 “군의 효율성을 위해서 몸은 위계화되고 성차에 따라 남녀의 일은 구별”되는 군대, 그리고 사회의 초남성성을 은폐한다. 다시 정희진의 말을 빌리자면 “실제로는 ‘비(非)국민’의 입대를 반기지 않으면서 ‘여자도 군대 가라’고 주장”하는 식의 여성징병 논의가 공회전하는 꼴이다. 여성을 군 내 ‘2류’의 존재로 취급하는 해당 사회적 경향성은 장 의원이 지적한 군 내 성폭력 문제와도 관계가 깊을 수밖에 없다.
“병역은 우리의 사유와 행위를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하고 이끄는 통치력이다. 그래서 군복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면제된 특정한 집단은 단죄와 낙인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여성징병제 청원은 여성이 군복무를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라는 단선적인 물음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병역의무를 매개로 어떻게 조직되고 움직이는가를 노출하는 사회적 현상임을 일깨운다.”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96p
정의당이 제안한 모병제 전환을 포함해 군사 기술력의 강화를 통한 안보대체, 사회의 성평등구현을 통해 남녀 동등 징병제로 전환을 꾀하는 방안, 남성징병제를 유지하되 장병의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안, 혹은 군축을 통한 점진적 군대 해체의 주장까지 여성징병과 ‘군대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해결방안들은 모두 각자의 논리와 장단점을 갖추고 있다.
다만 책에서 저자들은 “군사 안보를 절대적인 전제로 상정하는 시각 자체를 뒤엎고 바꾸는” 수준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기 위해서 책은 군대의 역사와 <강철부대>와 같은 군 콘텐츠를 경유하며 군대가 지향하고 사회가 구현하는 ‘군대의 초남성성’을 조명한다. 여성징병 논의의 맹점을 파헤치는 한편 고(故) 변희수 하사와 군형법상 추행죄가 상정하는 군 내 성소수자 문제를 가시화한다.
또한 ‘네발의 전우’로 낭만화되는, 군 내 비인간존재들의 전쟁경험에 문제를 제기하고 “인공지능 무기는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주장과 질문과 통찰들은 쉽지 않다. 독자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도무지 ‘너무나 먼 이야기’라는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한 번도 구현되지 못한 군대를 상상하기 위해선, ‘군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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