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중국발 공급 과잉과 수요 위축이 겹치면서 길고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주요 석화기업들은 제각각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한편, 친환경 및 스페셜티 분야에서 반전을 노리는 모습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석유화학회사들의 1분기 실적이 불황이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크게 하락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중국발 공급 과잉이 계속되는 가운데 세계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회복도 더뎌 업황 회복 시기를 예측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석유화학 수출액은 2022년 대비 15.9% 줄었으며 NCC(나프타분해시설) 가동 역시 2022년과 비교해 7.1% 감소했다. 이에 업계도 구조적 불황에 대응해 범용 제품 등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 분야 비중을 줄이는 재편에 나서는 흐름이다.
LG화학은 지난해 9월 IT소재사업부가 담당하던 IT 필름 사업을 약 1조1000억원에 중국 기업에 매각한 이후, 첨단소재사업부 소속 근속 5년 이상 생산기술직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특별 희망퇴직을 신청받고 있다. 또, 지난해 6월 충남 대산 SM(스티렌모노어)공장을 철거한 데 이어 여수 SM공장 생산도 중단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중국 내 합작공장인 롯데케미칼자싱과 롯데케미칼삼강 지분을 현지 협력사에 매각했다. 플라스틱 원료 페트(RET)를 생산하는 울산공장은 인력 재배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 이훈기 대표이사는 지난달 정기주주총회 직후, “범용 석유화학을 절반 이하로 과감히 줄일 계획”이라며 최근 불발된 파키스탄 법인 매각 역시 “올해 적절한 시기에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호석유화학 역시 올해 10년 이상 근무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에는 중국 SB라텍스 합작사 일조금호금마화학유한광사 지분 50%를 전량 매각했다.
석유화학업계는 대신 친환경 및 고부가 스페셜티 사업 비중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차이나플라스 2024’에 참가한 국내기업의 면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차이나플라스 2024’는 아시아 최대 플라스틱 전시회로 23일부터 나흘 동안 중국 상해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에는 총 38만㎡ 이상의 전시 면적이 제공되며 전세계에서 4000여개 기업이 참가할 예정이다.
LG화학은 이번 전시회에서 60여 종이 넘는 제품을 선보이며 고객과의 소통을 위한 9개의 전용 회의실과 비즈니스 라운지를 운영한다. 특히 친환경 제품은 전체 제품의 42% 이상으로 구성됐다.
‘LETZero존’에는 땅에 묻으면 6개월 내에 자연 분해되는 소재, 바이오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 폐플라스틱을 원유 상태로 재활용한 열분해유 플라스틱, 기계적 재활용 제품 등이 전시된다. ‘Mobility존’에는 독자 기술을 바탕으로 한 배터리 소재인 탄소나노튜브(CNT),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이 적용된 EV배터리 및 충전기 등을 접할 수 있다. ‘Living존’에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만든 플라스틱 소재, 친환경 발효 공정으로 만든 3HP(3-하이드록시프로피온산), 의료용 장갑 소재(NBL) 제품 등을 선보여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다.
LG화학 노국래 석유화학사업본부장은 “끊임없이 혁신하는 LG화학의 친환경 고부가 전략제품으로 글로벌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과 롯데정밀화학은 이번 전시회에서 ‘SEED FOR TOMORROW’를 주제로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와 그린 비즈니스 기술 및 친환경 소재 브랜드 ECOSEED 등을 소개한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전시 참가로 고객에게 더욱 확장된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다.
Specialty Solution존에는 높은 충격 강도 특성을 가진 초고충격 PP, 친환경 무도장 소재로 내외장 모두 적용 가능한 디자인 소재 등 모빌리티용 스페셜티 소재와 고투명 의료용 PP, 접착력이 우수한 태양광 봉지재용 EVA, 기계적 및 화학적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저결정성 PET 등의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를 선보인다. Green Technology존에서는 리튬이온 배터리 소재인 배터리 파우치필름, HDPE 분리막, 양극박, 동박, 전해액 유기용매와 전기차 플랫폼에 적용되는 소재들을 선보인다.
중국에서 첫 전시를 하게 된 ECOSEED존에서는 ECOSEED r-ABS, r-PC, r-PP, r-PE, r-PET, Bio-PET 등이 실제 적용된 실물 전시로 관련한 다양한 라인업을 뽐낸다.
산업부는 앞서 지난 3일 강경성 1차관 주재로 석유화학산업의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간담회를 진행한 바 있다. 이 간담회에서도 첨삭자들은 기존 범용 제품 위주의 사업구조에서 탈피해 고부가 정밀화학 및 친환경 제품으로 신속히 전환해 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함께했다.
한편, 산업부는 세제 당국과 석유화학 핵심 원료인 나프타 관세 면제를 추가 연장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샤힌 프로젝트 등 석유화학 대형프로젝트의 적기 준공을 투자지원 전담반을 통해 더 긴밀히 지원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는 ‘석화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협의체’도 출범해 석화산업 위기 극복 및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한국석유화학협회 연구조사본부 관계자는 “일본을 보면 여러 스페셜티 분야 시장을 선점하면서 시황과 관계없이 높은 영업이익을 영위하고 있다”라며 “스페셜티는 특수 품목이기에 시장이 작을 수밖에 없지만 공급 과잉이 심한 상황에서 스페셜티 분야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내 기업들이 이차전지, 분리막, 태양광 등의 분야에 많이 진출하고 있기에 개발이 잘 된다면 수요측면에서 경쟁력이 있으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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