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과 밀월 관계 강화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대중국 투자를 확대해 온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이번엔 중국의 대규모 민간 정유·화학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추진하는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자금난에 직면하자, 중국과 밀착해 ‘오일머니’ 수급을 개선하고 동시에 중국에 투자 러브콜을 보내려는 계획으로 보인다.
23일 차이신 등 중국 매체에 따르면 중국 최대 민간 석유화학기업인 헝리석유화학(헝리페트로케미칼)은 전날 저녁 아람코가 자사 지분 10%를 인수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중국 증시에 상장된 헝리의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아람코는 약 110억 위안(약 2조900억원)을 헝리 프로젝트에 투자하게 되는 것이다. 헝리의 주요 사업으로는 중국 국무원 문서에 포함된 연간 원유 정제 능력 2000만톤 규모의 정유·화학 프로젝트 등이 있다.
아람코는 최근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중국 랴오닝성 석유화학 프로젝트에 837억 위안을 투자, 중국 국유기업 2곳과 합작해 2026년 가동 예정인 대규모 첨단 정유석유화학 산업단지를 건설 중이다. 이 산업단지의 일일 정제 능력은 30만 배럴로, 이중 70%인 21만 배럴을 아람코가 공급하게 된다.
같은 달 아람코는 룽성석유화학의 지분 10%를 약 246억 위안에 사들였다. 이밖에 작년 9월과 10월 각각 둥방성홍, 산둥위룽석유화학과 향후 지분 10% 인수 및 원유 공급 등의 내용을 담은 협력을 체결했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지난해 아람코의 순이익이 전년 대비 25% 감소하는 등 오일머니 수급에 빨간불이 켜지자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인 중국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빈 살만 왕세자의 경제성장 계획 ‘비전 2030’의 핵심 신도시 프로젝트인 ‘네옴시티’ 투자 유치를 위해 중국과 밀착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네옴시티에서 가장 주목받는 프로젝트인 선형도시 ‘더 라인’ 건설 계획이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당초 2030년까지 ‘더 라인’에 입주시키려고 했던 주민을 150명에서 30만명으로 80%가량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170㎞ 구간 중 2.4㎞만 2023년까지 완료될 것으로 추산되면서다.
그 배경으로는 자금난이 꼽힌다. 네옴시티 건설 비용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사우디 국부펀드인 PFI(공공투자펀드)의 투자 여력이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PFI의 현금보유고는 2022년 말 500억 달러에서 지난해 9월 말 15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데이터를 공개한 2020년 12월 이후 최저치다. 이는 항공·전기차·관광·건강 등 다양한 사업에 돈을 쏟아부은 결과로, 작년 전 세계 국부펀드 중 가장 많은 지출 규모(315억 달러) 기록한 바 있다.
IMF는 지난 주 지역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사우디가 네옴시티 프로젝트 등을 성공리에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유가가 배럴 당 100달러 수준까지 올라야 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근 오름세를 보이던 국제유가가 이란-이스라엘 충돌이 추가 확대되지 않으면서 다시 80달러대로 떨어진 가운데 사우디의 석유 판매 수익 전망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이에 사우디 정부는 중국을 비롯한 해외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앞서 지난 15일부터 7일간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네옴’의 나드미 알 나스르 최고경영자(CEO)가 대표단을 이끌고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 홍콩 등을 방문해 투자 유치를 위한 로드쇼를 열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네옴은 이번 주에 전 세계 수백 명의 은행가들을 네옴시티 공사 현장에 직접 초청해 투자 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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