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고척, 김태우 기자] 모두가 두 눈을 의심한 홈런이었다. 규모가 작은 구장도 아닌데, 타구는 마치 한계가 없는 듯 날아갔다. 돔구장의 구조상 공은 강제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김도영(21·KIA)의 시즌 9호 홈런은 KBO리그 팬 전체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놀라운 홈런이었다. 박병호와 야시엘 푸이그와 같이 고척돔을 홈으로 쓴 힘 좋은 거포들도 많았지만, 전광판 상단의 지붕을 때린 홈런은 거의 기억이 없다. 그것도 전형적인 거포 스타일이 아닌 김도영의 손에서 나왔다는 게 더 놀라웠다. 김도영은 경기 후 “잘 맞았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고 크게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김도영의 타격에 뭔가 특별한 것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김도영은 4월에만 무려 9개의 홈런을 몰아쳤다.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역사상 4월 한 달에 9개의 홈런을 때린 선수는 1999년 트레이시 샌더스 딱 하나였다. 김도영은 4월 남은 일정에 하나의 홈런을 더 치면 이 기록도 경신할 수 있다. 리그 홈런 순위에서도 한유섬(SSG·10개)에 이은 공동 2위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괴물 같은 홈런을 만든 것일까.
김도영은 차분하게 과정을 설명한다. 우선 타격폼이다. 김도영은 올 시즌 앞두고 손가락 골절 재활을 하는 와중에서도 타격폼에 조금 손을 댔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 있는 자세를 바꿨다. 원래 김도영의 스탠스는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넓힐수록 타격이 잘 되다보니 무의식적으로 다리가 계속 더 벌어졌다. 그러다보니 상체가 숙여지는 등 부작용도 있었고,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또 스탠스의 폭에 따라 기복이 생기는 등 문제가 생겼다. 잘 맞는 폼이라고 해도 1년 내내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김도영은 조금 더 편안하게 칠 수 있는 폼을 만들고자 스탠스를 조정했다. 김도영은 그 효과가 확실하게 있다고 말한다. 김도영은 “편안하게 서 있다가 공을 치는 순간 한 번에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한 번 치면 경기 중에도 체력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4월 내내 기복 없이 타격이 쭉 앞으로 나간 결정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바뀐 폼으로 존까지 바꿨다. 김도영은 기본적으로 존을 조금 넓게 보고 적극적으로 치려는 타자다. 올해도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ABS 시스템 도입 등 여러 가지 사정에 맞춰 자신의 존을 설정하려 애를 썼다. 시즌 초반에는 잘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자기 존이 잡혔다고 했다. 김도영은 “무엇보다 내 존이 생긴 것이 크다. 그러니 야구가 편해졌다. 정말 중요한 것 같다”면서 “그렇게 설정한 존에 들어온 공을 최대한 앞에서 강하게 때린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포인트를 앞에 두면 헛스윙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헛스윙 비율은 작년과 비슷하다. 김도영도 생각보다 헛스윙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발사각을 의도적으로 높인 건 아니다. 의식도 안 한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공이 뜨기 시작했다. 김도영의 타구 속도가 빠른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원래도 시속 170㎞ 이상의 타구를 곧잘 치던 선수였다. 하지만 발사각이 15~20도 정도로 담장 앞까지만 맹렬하게 돌진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는데 올해는 발사각이 높아지며 뜬공 대비 홈런 개수가 급증했다. 23일 홈런도 발사각이 30도를 넘겼다. 가뜩이나 타구 속도가 빠른데 발사각도 높였으니 더 넘어간다. 김도영도 “발사각을 의도적으로 높이는 건 아닌데 작년에 안 넘어간 공이 올해는 넘어간다는 느낌이 있다”고 설명했다.
더 무서운 건 이 괴물은 단순히 홈런만 잘 치는 선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리그 최정상급의 빠른 발도 가지고 있다. 벌써 10개의 도루를 성공했다. 물리적인 스피드만 놓고 보면 리그 최고를 다툰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그러다 보니 대기록 달성도 눈앞이다. 특정 월에 10홈런·10도루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다. 도루는 이미 됐고, 홈런만 하나 더 치면 된다.
이는 KBO리그를 거쳐 간 그 어떤 선수도 해내지 못했던 대업이다. 역시 호타준족의 대명사인 이종범 코치도 월간 10홈런-10도루를 동시에 기록한 적은 없다. KBO리그 역사상 첫 40-40(2015년) 클럽에 가입한 에릭 테임즈도 마찬가지였다. 테임즈는 당시 4월 9홈런-5도루, 5월 9홈런-8도루, 6월 4홈런-5도루, 6월 8홈런-6도루, 7월 8홈런-6도루, 8월 8홈런-8도루, 9월 8홈런-7도루를 기록했다. 10-10은 테임즈도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나올까 말까한 대기록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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