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인천국제공항 노찬혁 기자]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포함한 선수단이 씁쓸한 표정으로 귀국했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은 26일(이하 한국시각) 카타르 도하의 압둘라 빈 할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인도네시아와의 8강전에서 연장전까지 2-2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10-11로 패배했다.
이번 대회는 2024 파리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겸했다. 3위까지 올림픽 본선에 직행하고, 4위는 아프리카의 기니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통해 올림픽 티켓이 주어진다. 올림픽대표팀은 8강전에서 탈락하며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이 무산됐다. 40년 만에 한국이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한 것이다.
올림픽대표팀의 출발은 산뜻했다. 황선홍 감독이 A대표팀 임시 감독을 겸하는 사이 올림픽대표팀은 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앞두고 2024 서아시아축구연맹(WAFF) U-23 챔피언십에 출전했다. 올림픽대표팀은 ’수장’ 황선홍 감독 없이 명재용 수석코치 체제에서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목표를 갖고 올림픽대표팀은 국내 소집 훈련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U-23 아시안컵 시작도 전에 삐걱거렸다. 바로 해외파 차출이 무산된 것. 황선홍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 대회를 앞두고 배준호(스토크 시티), 김지수(브렌트포드), 양현준(셀틱 FC)의 차출 허가를 받기 위해 각 구단에 방문해 협조를 부탁했다. 당시 구단의 사인도 OK.
하지만 셀틱이 먼저 양현준의 차출을 거부했다. 양현준은 셀틱에서 후반전에 투입되는 ’조커’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셀틱은 레인저스와 스코틀랜드 리그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소속팀 셀틱이 차출을 거부한 것이다.
악재는 계속됐다. 스토크가 배준호, 브렌트포드가 김지수의 차출을 반대한 것이다. 스토크는 현재 EFL 챔피언십에서 강등 경쟁을 펼치고 있다. 팀 에이스인 배준호가 나가게 되면 3부리그 강등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고 판단했고, 스토크는 배준호를 팀에 잔류시켰다.
김지수도 소속팀에 잔류했다. 이유는 브렌트포드의 센터백 로테이션 자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브렌트포드는 올 시즌 스리백을 사용하고 있는데 최근 김지수가 서브 자원으로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하지 못했지만 부상을 당하거나 퇴장 징계가 내려질 경우 김지수를 기용해야 하기 때문에 브렌트포드도 차출을 반대했다.
부상 이슈도 생겼다. FC서울 미드필더 백상훈이 무릎 부상으로 출전이 불투명했다. 백상훈은 어려서부터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친 엘리트 출신이다. 다행히 백상훈은 무릎 부상에서 회복해 정상적으로 올림픽대표팀에 합류했다. 결국 올림픽대표팀은 해외파 3명을 대신해 홍시후(인천 유나이티드), 김동진(포항 스틸러스), 최강민(울산 HD)을 대체 발탁했다.
현지에서 적응 훈련을 마친 올림픽대표팀은 조별리그에 돌입했다. 아랍에미리트와의 조별리그 1차전. 한국은 어려운 경기를 펼쳤지만 이영준의 극장골로 승점 3점을 따냈다. 이어진 중국과의 2차전에서도 한국은 이영준의 멀티골로 2-0 완승을 거뒀다.
이미 2차전이 끝난 뒤 조별리그 통과를 확정한 한국은 3차전에서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 조 1위를 놓고 다퉜다. 한국은 후반 30분에 터진 김민우의 결승골로 1-0 신승을 거두며 3연승으로 조별리그 B조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한 경기 만에 바뀌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에 8강전에서 패배하며 무릎을 꿇었고,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물거품이 됐다. 한국 축구가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는 것은 무려 40년 만이었다.
축구 팬들의 분노도 하늘을 찔렀다. 올림픽대표팀을 향한 분노의 메시지가 대한축구협회에 전해졌다. 대한축구협회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무려 24시간 만에 1만 40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올림픽대표팀과 대한축구협회를 비판하는 댓글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내놓았다. 대한축구협회는 26일 홈페이지를 통해 ”U-23 아시안컵 8강 패배로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된 것에 대해 축구팬, 축구인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축구 대표팀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대한축구협회에 총괄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한국 올림픽대표팀은 대회가 끝난 뒤 27일 오전 11시 40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입국장은 분주했다. 보안팀 직원들을 비롯해 공항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지난 2월 AFC 아시안컵이 끝난 뒤 분노의 엿 세례가 펼쳐진 것처럼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황선홍 감독이 고개를 숙이며 입장했다. 황선홍 감독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늦은 시간까지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 죄송하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이런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책임을 통감한다. 다시 한번 죄송하고 그렇지만 우리 선수들은 앞으로도 많이 성장해야 하고 어려운 가운데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비난보다는 격려를 많이 해주셨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다”라고 밝혔다.
축구 팬들은 인터뷰가 끝난 뒤 공항을 빠져나가는 황 감독에게 사인을 요청하고 사진을 같이 찍었다. 이후 황 감독은 축구협회 관계자와 인사를 나눈 뒤 조용히 공항을 빠져나갔다. 같이 입국한 올림픽대표팀 선수들도 공항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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