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신화’ 쓴 고동진
평사원으로 입사해 사장 승진
최근 정계 입성… 법안 발의 준비 중
국내 재계 서열 1위 ‘삼성전자’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가 사장 자리까지 오른 전설적인 사람이 있다.
어떻게 승진했나 봤더니, 삼성전자의 대표작이자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한 ‘갤럭시’ 개발을 주도했다고 한다.
퇴사 이후엔 의외의 직업을 택했다고 해 눈길을 끌고 있다.
1961년생 고동진은 성균관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1984년 삼성전자에 입사한다.
입사 후 입사 후 이사 청소, 문서 정리 등 잡다한 일을 했었는데, 막상 칭찬받은 적이 없어 ‘50초 브리핑’이라는 자신만의 규칙을 세웠다. 출근하면 상사에게 50초 동안 오늘 해야 할 일을 간략하게 브리핑하는 것이다. 업무 효율성은 물론이고 이를 반기는 상사와의 관계도 좋아졌다고 한다.
이후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유럽연구소(상무보), 무선사업부 개발부 실장 부사장까지 전자계열에서 승진을 이뤄냈다.
특히 무선사업부 시절, 삼성전자의 첫 번째 스마트폰 ‘갤럭시S’ 개발에 참여했다.
갤럭시S 흥행 후엔 갤럭시 시리즈 모델 개발해 착수했다. 고동진은 개발관리팀장으로서 ‘갤럭시 노트’의 S펜 개발을 위해 일본 와콤과 파트너십을 맺은 업적도 있다.
전반적으로 기존에 과다하게 지출되던 마케팅 비용을 적정선으로 조절하면서 시장 수요량에 대한 정확한 예측으로 놀라운 수준의 영업이익을 창출해낸 게 그의 큰 공이다. 고동진의 지휘 하에 삼성전자의 통합 소프트웨어 구축 능력이 이전에 비해 상당히 일취월장했단 평가를 받는다.
또한 문제가 생기면 직접 현장으로 가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세느 프로젝트’라고 불린 ‘갤럭시S 2‘의 제조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공정을 간소화하여 즉석으로 SCM(공급망관리)을 개혁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갤럭시 시리즈로 승승장구하다가 2016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로 고동진에게 책임이 돌아갔다.
그는 노트7의 전량 교체를 지시하며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손해비용은 7조원에 달하지만, 배터리 제조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모든 책임을 졌다.
이재용 회장의 두터운 신임으로 사고 후에도 살아남은 고동진은 무선사업부 사장으로서 갤럭시 노트 10 시리즈와 갤럭시 폴드, 그리고 갤럭시 북 시리즈를 발표한다. 특히 갤럭시 노트10 시리즈는 흥행에 성공시키며 무선사업부장 마무리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1년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2022년 3월 급여, 상여금, 퇴직금으로 118억원을 수령한 뒤 퇴사했다.
그러다 올해 1월 22일,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당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고동진의 저서를 읽으면서까지 인재 영입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고동진의 입당 이유는 ’청년‘이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삼성을 떠나면 젊은 후배들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해 온 만큼 국회에서 일하게 되면 첫 화두는 청년의 미래가 될 것”이라 밝히면서 “청년 미래 지원, 중소기업 상생,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력 강화, 사회적 약재 배려 등 네 가지를 정책으로 만드는 데 적극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3월에 서울 강남구 병 지역구에 전략공천되면서 지역구 출마가 결정됐으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지난 10일 총선 결과 66%의 득표율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더블스코어로 꺾으면서 국회 입성이 확정됐다. 이는 서울시의 모든 당선인 중 최고 득표율이다.
고동진은 지난 24일 간담회를 열고 ‘1호 법안’과 관련해 반도체 지원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메가시티특별법(반도체산업발전특별법)’이라 이름 지은 이 법을 통해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가 40년 전에 회사에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고 했다. 지금은 쌀이 아니라 국가 무기가 돼버렸다”라며 민생경제와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법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세수의 20%가 법인세인데 삼성전자가 적자로 인해 법인세를 한 푼도 못 내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회 개원 이후 고동진의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