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귀재’. 올해 93세가 된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별칭이다. 오는 8월 생일을 맞이하면 94세가 되는 버핏은 100세가 가까운 나이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고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도 엄청나다. 버핏은 높은 금리와 시장의 변동성으로 인해 성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고했으나 투자자들은 여전히 버핏만을 믿고 버크셔의 수익률에 기대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버핏의 후계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 버핏의 절친이자 그와 함께 버크셔 헤서웨이를 이끌었던 그의 파트너 찰리 멍거가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나면서다. 버핏조차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는데, 그간 투자자들이 열광했던 버핏-멍거 조합은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오는 주말 예정된 버크셔 헤서웨이의 첫 연례 주주총회도 이런 이유로 주목받고 있는데, 멍거가 없는 첫 주주총회를 버핏과 함께 다른 부회장들이 이끌어가게 되면서 향후 버핏이 없을 버크셔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가늠해보기 위함이다.
◇버크셔의 사업부문 이끌어갈 두 명의 천재 부회장, 그렉 아벨과 아지트 자인
그렉 아벨 부회장과 아지트 자인 부회장은 오래전부터 버핏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거론되어오던 인물들이다. 버핏은 과거 CNBC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오늘 밤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다음날 그렉이 내 업무를 인수할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고 했으며, “그렉에게도 일이 일어난다면 아지트가 이어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벨 부회장은 오랫동안 버크셔의 비보험 분야를 이끌어왔으며 자인 부회장은 아벨 부회장이 담당하지 않는 보험분야를 전문으로 다뤄왔다.
아벨 부회장은 에너지 산업에 대한 전문가로 유명하다. CNBC의 보도에 따르면 아벨 부회장이 버핏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글로벌 전력회사 칼에너지에서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모습을 칼에너지의 주주이자 버핏의 친구가 인상깊게 봤고 그 이야기를 버핏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이후 칼에너지는 미드아메리칸 에너지로 사명을 변경하고 버크셔가 이 회사를 사들인 뒤 아벨 부회장은 2008년 미드아메리칸의 CEO가 됐다. 현재 미드아메리칸은 버크셔해서웨이에너지(BHE)로 이름을 바꿨다. ABC뉴스는 아벨 부회장에 대해 “기업의 대차대조표를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경영 전문가이며, 버크셔 이사진은 그가 버크셔의 미래를 이끌 적임자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으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에 대해 ‘빈틈없는 거래 해결사’라고 평가했다.
자인 부회장 역시 그렉 부회장과 함께 늘 CEO 후보로 거론됐다. 인도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에서 근무했던 자인 부회장은 1986년 버크셔로 이직한 뒤 2018년부터 버크셔 이사진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아벨 부회장(61)보다도 열살 이상 더 많은 72세지만, 술을 전혀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로서 여전히 활발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자인 부회장은 버크셔가 대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만났던 고비 때마다 보험사업에서 큰 수익을 내면서 회사의 경영 상황을 튼튼하게 만들어왔다. FT는 지난해 초에도 미국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사태를 예로 들었다. 허리케인이 피해를 많이 낼 경우 버크셔와 같은 재보험사도 보험금으로 150억달러를 지불해야하기 때문에 위험도가 높다. 하지만 손실이 일정부분 이하면 피해는 보험사가 감당하고 재보험사는 수십억달러의 보험료 이익만 발생한다.
자인은 버핏과 직접 통화해 허리케인 대비에 대한 재보험 계약 금액을 늘릴 것을 요구했고 자인을 믿은 버핏은 금액도 물어보지 않고 승낙했다. 일종의 베팅을 한 셈인데, 결국 이는 보험사업 사상 최고의 수익을 낸 계약으로 기록됐다. 버크셔의 주주인 글로벌 보험사 마켈그룹의 토마스 게이너 최고경영자(CEO)는 “버핏과 자인은 모두 뛰어난 천재이며 이에 대해서는 만약(if)이나 그러나(but)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다”는 확신을 드러냈다.
◇버핏-멍거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이어갈 새 듀오, 버핏과 다른 투자 방식·다른 수익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번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3540억달러(약 490조원)에 달하는 버크셔 주식 포트폴리오를 버핏의 투자부문 후계자로서 함께 포트폴리오를 굴려온 테드 웨슐러와 토드 콤스가 이전보다 중도적으로 맡게될 것으로 보인다. 아벨 부회장과 자인 부회장이 사업부문의 후계자라면, 테드 웨슐러와 토드 콤스는 버핏의 주식 포트폴리오를 물려받을 투자부문의 후계자다.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웨슐러는 2010년과 2011년 연속 262만 달러를 써내면서 ‘버핏과의 점심’ 경매의 낙찰자다. 점심 경매 낙찰자는 뉴욕 맨해튼의 스테이크 전문식당 ‘스미스 앤 월런스키’에서 버핏 회장과 함께 점식 식사를 하고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는다. 자산운용사를 다니던 콤스는 멍거에게 만나자는 편지를 보낸 이후 그를 만난 뒤 버크셔의 투자 관리자로 임명됐다. 두 사람은 입사 후 매주 월요일 점심마다 버핏과 점심을 먹으며 투자에 대해 논의해왔는데, 버핏은 그 두 사람을 채용한 것을 본인이 내린 최고의 결정 중 하나라고 칭하기도 했다.
FT는 두사람의 지난 투자 성과를 짚어보며 버핏의 뒤를 이어 버크셔를 성장시킬 수 있을지를 분석했는데, 포트폴리오 운용 수익률이 버핏에 한참 밑돌고 투자 방식도 버핏과 다르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난 10년간 두사람이 운용한 포트폴리오의 연평균 수익률은 약 7.8%였는데, 이 기간 S&P500가 12%였고 버핏이 10.2% 수익률을 거뒀다. 또한 또 3540억 달러의 버크셔 포트폴리오에서 두 사람이 운용하는 자산은 약 270억 달러(약 37조 2800억 원)였는데, 지난 10년간 약 11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버핏의 누적 수익률은 165%이며, S&P500은 211%로 버핏은 물론 시장 지수보다도 뒤떨어진 수치다.
버핏은 주식을 보유하는 가장 좋은 기간에 대해 ‘영원히(forever)’라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웨슐러와 콤스는 주식 종목의 평균 보유기간이 버핏의 절반정도에 그친다. FT에 따르면 버핏이 2010년 이후 63개 종목에 대해 평균 4년 3개월 동안 보유한 후 매각한 것과 비교해 콤스와 웨슬러는 48개 종목은 2년 10개월 만에 처분했다. 버핏 역시 두 사람의 합류 초기 한 인터뷰를 통해 “둘 중 한 명은 나보다 더 주식을 많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부진한 수익률에도 두 사람은 지난 10년간 버크셔의 투자중 가장 성공적인 종목으로 꼽히는 애플을 가장 먼저 선점한 인물들이다. 버핏은 자신이 테크(기술) 분야에 대해서는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테크 종목들을 사들이지 못한데 비해 두 사람은 일찍이 포트폴리오에 애플을 담았고 지난해 말까지 최소 3배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버핏은 두 사람의 능력에 대해 신뢰하고 확신하는 모습을 보인다. 버핏은 해당 분석을 내놓은 FT에 “우리의 투자가 늘 성공적이고 앞으로도 계속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버크셔 주주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테드와 토드는 버크셔의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고 버크셔 주주들은 그들의 투자로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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