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험난한 길을 걸어온 것이 오히려 기쁘다”
미국 ‘디 애슬레틱’은 4일(이하 한국시각) 또 한 명의 ‘KBO 역수출 신화’를 써가고 있는 에릭 페디(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집중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만큼 빅리그로 돌아간 뒤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고 있는 페디다.
페디는 지난 2014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8순위에서 워싱턴 내셔널스의 지명을 받고 프로 생활을 시작, 2017년 처음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데뷔 첫 시즌에는 3경기(ERA 9.39)에서 1패를 기록하는데 그쳤던 페디는 이듬해 11경기에 나서 2승 4패 평균자책점 5.54, 2019년 21경기(12선발)에서 4승 2패 평균자책점 4.50을 기록하며 차근차근 메이저리그 무대에 적응해 나갔다.
페디가 빅리그에 제대로 안착하게 된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단축시즌이 열린 2020시즌이었다. 당시 페디는 11경기(8선발)에서 2승 4패 평균자책점 4.29의 성적을 남겼고, 2021년 선발 로테이션의 한 자리를 꿰차며 풀타임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했다. 페디는 2021시즌 29경기(27선발)에 등판해 7승 9패 평균자책점 5.47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손에 넣었고, 2022시즌 또한 풀타임 로테이션을 돌며 6승 13패 평균자책점 5.81을 기록했다.
1라운드라는 지명 순번에 비해 페디의 활약이 아쉬웠던 것은 맞지만, 5선발로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지만, 페디에게 돌아온 것은 ‘방출’이라는 아픔이었다. 이에 NC 다이노스가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현역 빅리거의 KBO리그행이 성사됐다. 단 한 시즌에 불과했지만, 페디의 임팩트는 엄청났다. 페디는 지난해 30경기에 등판해 무려 20승을 수확하는 등 평균자책점 2.00이라는 압권의 성적을 남겼다.
특히 페디는 ‘국보’ 선동열과 ‘코리안몬스터’ 류현진 등에 이어 KBO리그 역대 4번째로 투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고, 외국인 선수 ‘최초’로 20승-200탈삼진의 고지를 밟으며 정규시즌 MVP 타이틀까지 품에 안았다. 그야말로 KBO리그를 폭격했던 페디는 다시 빅리그 구단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번 겨울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2년 1500만 달러(약 206억원)의 결코 적지 않은 계약을 통해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갔다.
물론 시즌을 더 치러나가야 하지만, 페디의 빅리그 복귀는 지금까지 매우 성공적이다. 화이트삭스가 워낙 좋지 않은 시즌을 보내고 있는 탓에 승리와 연이 잘 닿지않고 있지만, 페디는 6경기에 등판해 2승 무패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 중이다. 지난달 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상대로 가진 빅리그 복귀전에서는 4⅔이닝을 소화하는데 그쳤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해 나가고 있다.
페디는 지난달 6일 캔자스시티 로얄스를 상대로 5이닝 1실점(1자책), 11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에서 5이닝 5실점(4자책)을 기록한 뒤 18일 다시 만난 캔자스시티를 상대로 5⅔이닝 무실점 투구를 선보이며 복귀 첫 승을 신고했다. 그리고 24일 미네소타 트윈스와 맞대결에서 6이닝 1실점(1자책)으로 첫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 29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는 무려 8⅓이닝 2실점(2자책)으로 역투하며 2승째를 손에 넣었다. 현재 화이트삭스 선발진에서 3점대 이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인 것은 페디가 유일하다.
‘디 애슬레틱’은 “페디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다가올지 몰랐을 것이다. 2022시즌의 냉정했던 마지막 날 이후, 그의 다음 메이저리그 팀이 화이트삭스가 될 것이라는 것도, 15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을 것이라는 것도, 7000마일이 떨어진 KBO리그에서 최우수선수(MVP)상을 받을 것을 암시하는 것은 없었다. 페디가 아는 것이라고는 메이저리그 로스터에서 벗어났다는 것뿐이었다. 메츠에게 1~3회 각각 3점씩을 내줬을 때 확신했을 것이다. 워싱턴이 2023시즌 계약을 제안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현실이 됐다”고 워싱턴에서 방출을 당했던 당시를 돌아봤다.
‘디 애슬레틱’과 인터뷰에서 페디는 “정말 강력한 한방의 펀치였다”며 “논텐더가 되는 것을 걱정했고, 오프시즌 내내 워싱턴이 나를 내보내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다. 물론 워싱턴을 탓할 수는 없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리고 페디에게 찾아온 KBO리그 NC의 오퍼. 이는 페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매체는 “페디는 지난 5시즌 동안 뛴 메이저리그를 떠나 (조쉬 린드블럼 이후) KBO리그에서 MVP를 수상하고 인생을 바꾸는 계약으로 돌아온 두 번째 투수”라고 설명했다.
KBO에서 MVP로 선정된 후 밀워키 브루어스와 3년 912만 5000달러(약 124억원)의 계약을 맺었던 린드블럼은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창의력을 발휘하고 미국에서 할 수 없던 것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KBO리그의 장점으로 꼽았다. 이는 페디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 ‘디 애슬레틱’의 시선이다. 매체는 “바로 페디도 또한 마찬가지”라며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페디가 만든 변화들을 테스트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페디는 팔 각도를 낮추면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짚었다.
페디는 팔 각도를 낮추고 수평 무브먼트를 살리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에이스’ 로건 웹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셸비 밀러와 함께 훈련에 돌입했다. 웹은 페디가 체인지업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줬고, 밀러는 스위퍼를 함께 만들었다. ‘디 애스레틱’은 “이 투구들과 더 강력한 직구, 커터는 페디에게 더 나은 옵션을 제공했다. 페디는 시카고에서 몇 주 동안 타자들에게 도전하는 웹과 같은 자신감을 갖고 투구에 임하고 있다”고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진 배경을 분석했다.
워낙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 있기에 페디의 모든 지표가 눈에 띄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요소는 볼넷이다. KBO리그 입성 전 페디의 볼넷은 9이닝당 4.1개였는데, KBO리그에서는 이를 1.7개까지 줄였다. 그리고 지난 두 번의 등판에서는 20개의 삼진을 잡는 동안 볼넷을 내주지 않았다. 페디는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왜 논텐더가 될 때까지 변화를 주지 않았나? 2020~2022년 사이에 변화를 줄 수 있었잖아’라며 자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화이트삭스에서 행복하고, 매우 운이 좋다. 지금까지 험난한 길을 걸어온 것이 오히려 기쁘다”고 활짝 웃었다.
워싱턴에서 방출된 후에도 낙담하지 않고 변화를 통한 발전을 모색했던 페디. 그리고 KBO리그가 이를 테스트할 수 있는 시험의 무대가 됐다. 그리고 훌륭한 성적과 함께 자신감을 찾고 메이저리그로 복귀한 페디의 성공 시나리오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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