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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공산주의 버린 러시아에 ‘멸공’을? 전쟁 끝나면 한·러 관계 복원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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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7일 KBS <남북의 창> 1000회 특집에 출연한 자리에서 “새로운 외생변수가 아주 심각하게 생기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으로 정상화되면 한·러 관계도 복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비록 반년 남짓이지만 주러시아 대사로 근무했고 이어 외교부 1차관으로 임명되어 일했으므로 한·러 관계의 진행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전망을 단순히 희망으로 치부하기도 어렵겠으나 필자로서는 그러한 전망에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한·러 관계는 지난 하반기부터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본다. 그 이전까지는 한국이 집단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한국에 ‘살상 무기의 우크라이나 직접 지원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한 데 대해 한국이 ‘지원 자제’ 방침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양국이 충돌하는 양상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12월 초 푸틴 대통령은 주러 한국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서 한국과의 관계 복원에 대해 유화적인 발언을 하였는데 직후 한국은 기존 대러 수출통제 품목에 무려 682개를 추가하는 고시를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러 측은 ‘보복할 것이며 보복은 비대칭적일 수 있다’라고 경고하였다. 그 여파인지 올 1월에는 블라디보스톡에서 탈북자들을 도와온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인 선교사가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어서 러 측은 윤 대통령의 대북 발언에 시비를 걸었고 한국 정부는 강력히 반발하였다. 그런 분위기이다 보니 러시아 외교 차관의 방한은 이렇다 할 만한 성과 없이 끝났다. 한편 우리 국방부 장관은 개인적인 견해라고 하였지만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상황은 악화되었다. 현재 양국 관계는 매우 나빠진 상태인데 필자는 악화된 정도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양국 관계가 바로 복원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정도라고 본다.

장 실장은 “새로운 외생변수가 아주 심각하게 생기지 않으면”이라고 단서를 붙였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한국은 2022년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한 3국 군사 협력에 참여를 선언하였고 대통령은 2022년, 2023년 연속으로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집단서방의 ‘반러시아 전선’에 동참하였으며 후속조치로서 나토 주재 대표부를 개설하였다. 이처럼 한국정부는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는 서방과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 “새로운 외생변수”란 한국이 서방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러시아가 강력히 반발할 만한 조치를 취하게 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인가?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으로 정상화되면”이라는 단서도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전쟁 이전 질서’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러시아가 점령지를 포기하고 철수한다는 것인데 러시아가 그렇게 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러시아가 하기 어려운 일을 양국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정상화의 의지가 있는 것인가? 물론 정부 내부적으로 한·러 관계 정상화의 조건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이 진행되고 있고 향후 한러 양국 간 협상이 있겠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으로 정상화되면’이라는 단서는 러시아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을 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바 외교정책이 여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이다. 그런데 지난 몇 개월 사이 우리 사회에서 표출된 러소포비아(Russophobia) 현상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도 러시아에 대한 상당한 무지와 어느 정도의 편견이 있었지만, 러시아에 대한 반감 내지 혐오가 현재와 같은 수준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최근의 일을 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 발레리나 그리고 볼쇼이 발레단의 공연이 취소되었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 사회의 러시아에 대한 지나친 오해와 혐오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일단락된 후 한·러 관계가 정상화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러시아 국민의 한국에 대한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내 러소포비아 현상이 정부 탓은 아닐지라도 우리 정부는 이런 점에 대해서도 세심한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러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는데 한·러 관계 복원에 있어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은 주요한 전제조건이나 전부는 아니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하고 있는 것을 갖고 러시아에 대해 ‘멸공(滅共)’을 외치기도 하는데 러시아는 30여 년 전에 공산주의를 버린 국가이다. 우리 정부, 그리고 언론과 학계가 우리 국민 상당수가 갖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다소 황당한, 우리 국익에 도움이 안 되는 인식을 바로 잡는 노력을 좀 더 기울일 것을 당부하고 싶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스크바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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