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크리스 테일러(34·LA 다저스)는 뛰어난 공격력을 가진 선수는 아니다. 메이저리그 11년 통산 타율이 0.251, 통산 OPS(출루율+장타율)는 0.755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특정 포지션에서 수비가 아주 좋은 것도 아니다. 꼭 골드글러브가 모든 평가의 잣대가 될 수는 없겠지만, 테일러는 지금껏 단 하나의 골드글러브도 따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선수가 4년 총액 6000만 달러(약 817억 원)의 연봉을 받는다. 다 이유가 있다. 극강의 유틸리티 능력 덕이다. 테일러는 포수와 1루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다 볼 수 있다. “포수나 1루수도 시키면 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탁월한 포지션 범용성을 자랑한다. 26인으로 한정되어 있는 메이저리그 로스터에서 이런 선수 하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주전 선수들의 휴식 시간을 기가 막히게 메워준다.
실제 테일러는 메이저리그 통산 좌익수로 2291⅓이닝, 중견수로 1377⅓이닝, 우익수로 141⅔이닝, 유격수로 2217이닝, 2루수로 955⅓이닝, 3루수로 365⅓이닝을 뛰었다. 급하면 어디에든 갖다 놓을 수 있는 현존 최강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불리는 이유다. 지난해에도 좌익수·유격수·3루수·중견수·2루수 포지션에서 모두 뛰었다. 그러면서도 두 자릿수 홈런은 칠 수 있는 공격력을 가졌다. 가치가 꽤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앤드루 프리드먼 사장 부임 이후 돈을 아낄 때는 확 아끼는 다저스가 2022년 시즌을 앞두고 테일러와 4년 6000만 달러에 계약한 이유다. 2026년에는 팀 옵션까지 있다. 그만큼 테일러를 아낀다. 그런데 올해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여전히 필요한 선수이기는 한데, 나갈 때마다 팀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공격이 너무 안 돼서다. 팀 로스터가 정비되면서 수비 활용성도 떨어지고 있다.
테일러는 6일(한국시간)까지 올해 24경기에 나갔다. 백업 선수치고는 적지 않은 출전 비중이다. 그런데 올해 타율이 0.074에 불과하다. 1할도 못 치고 있다. 심지어 54타수 동안 기록한 4개의 안타 모두 단타다. 타율과 장타율이 같다. 올해 OPS는 0.289다. 웬만한 타자의 타율보다도 못하다. 극심한 부진이다.
테일러의 공격력 저하는 공교롭게도 4년 계약 직후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리그 평균 OPS를 소폭 상회하는 공격력을 가진 선수였다. 하지만 2022년 타율 0.221, 2023년 타율 0.237을 기록하며 모두 리그 평균 이하의 공격력에 머물렀다. 그나마 지난해에는 15개의 홈런이라도 쳤는데 올해는 타율이 1할도 안 되고 장타는 아예 실종됐다.
테일러의 심각한 부진에 최강 전력을 자부하는 다저스도 고민에 빠졌다. 테일러는 2025년까지 보장 계약이 되어 있다. 마이너리그로 보낼 수도 없다. 테일러를 26인 로스터에서 빼려면 방법은 방출밖에 없다. 잔여 연봉을 다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고 계속 넣자니 공격력 저하가 너무 심각하고, 수비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전에는 없어서 문제였다면, 올해는 있어서 문제라는 시각이 비등하다.
다저스가 워낙 화려한 야수진을 구축하고 있고 팀 성적도 좋아 테일러의 부진이 크게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저스도 오타니 쇼헤이가 지명타자 자리를 꽉 붙잡고 있다. 나머지 선수들이 쉬려면 테일러와 같은 선수들이 자리를 메워야 하는데 테일러가 나오는 날은 하위 타선이 꽉 막혀 득점력이 살아나지 않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강 다저스도 다 고민은 있다. 결국 테일러를 살려서 써야 하는 문제인데, 언제쯤이 문제가 아닌 반등이 가능하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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