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새 호텔업계에서 ‘친환경’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았다. 무라벨 생수와 대용량 디스펜서를 객실에 구비하는 것은 기본이며, 친환경 유니폼을 도입하고 투숙객들이 직접 자원순환 활동에 동참하게 하는 등 국내 호텔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친환경 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호텔’ 하면 럭셔리하고 사치스러운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마련. 하지만 ‘럭셔리’와 ‘사치’라는 단어 대신 투숙객의 ‘가치 있는 소비’를 돕는 호텔이 있다. 글래드 호텔이다.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에 자리한 글래드 여의도. 들어서는 순간 다른 호텔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고객을 응대하는 프런트 직원 모습에 자꾸 시선이 간다.
글래드 호텔 뷔페 레스토랑 ‘그리츠’로 들어가면 친환경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고객을 맞는다. 새활용한 원단을 사용한 유니폼 셔츠와 앞치마다. 호텔 가치인 ‘친환경’에 초점을 맞춰 유니화와 유니폼을 제작했다. 호텔 직원들 편의성도 높였다.
글래드 여의도 직원은 “호텔에서 직원들을 위해 편하면서 환경까지 생각한 유니폼과 유니화까지 맞춰줘서 업무 환경이 훨씬 좋아졌다”면서 “특히 구두를 신고 오랜 시간 서 있으면 발이 퉁퉁 부을 때가 많았는데 운동화로 바꾸고 나서는 발이 편해서 너무나 좋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부터는 글래드 호텔 전 지점 로비에 ‘리사이클 기부함’이 들어섰다.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는 ‘호텔’과 ‘재활용’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이질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고객 만족도는 기대 이상이다.
글래드 호텔은 아름다운가게 자원순환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기부함을 직접 제작했다. 벌써 많은 고객이 동참해 1000벌 넘는 의류를 기부했다. 고객들은 현장에서 편하게 기부할 수 있고 기부 후에는 기부 영수증까지 발급받을 수 있다.
한유리 글래드 호텔 ESG 담당 매니저는 “호텔에 아름다운가게 리사이클 기부함을 설치한 뒤로 투숙객과 레스토랑 이용 고객은 물론 인근 주민들까지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여행 온 외국인 투숙객이 입지 않는 옷을 한두 벌 기부하기도 하고 어떤 고객은 본인이 운영하는 의류업체 옷을 대량으로 기부하고 싶다고 문의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글래드호텔 객실에서도 가치소비를 실천할 수 있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무라벨 생수가 눈에 띈다. 침대에는 나무로 제작된 침구·수건 세탁 교체 안내문이 놓여 있다. 보통 호텔 안내문은 종이로 만들어 문 앞에 걸어 놓는 방식이지만 글래드 호텔은 종이 쓰레기를 줄이자는 생각에 안내문을 나무로 제작했다고 한다.
이는 글래드 호텔이 2019년부터 도입한 ‘세이브 어스’ 프로그램 일환이다. 글래드 여의도, 글래드 마포, 글래드 강남 코엑스센터 등 서울 지역에 위치한 글래드 호텔은 지구 환경을 지키는 콘셉트를 진행 중이다.
한 매니저는 “세이브 어스는 고객이 지구와 제주 환경을 지키는 작은 실천에 동참할 수 있도록 객실 내 침구·수건 세탁을 고객이 선택할 수 있으며, 나무로 제작된 안내문을 침대에 올려놓을 시에만 새 침구로 교체해 주는 환경보호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호텔 객실 한쪽에는 일반 쓰레기와 분리수거 쓰레기를 분류할 수 있도록 쓰레기통이 2개 놓여 있다.
화장실에는 일회용 어메니티 대신 대용량 디스펜서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일회용 어메니티 무상 제공이 금지됨에 따라 글래드 호텔도 대용량 다회용 디스펜서를 제공하고 있다.
퇴실 후 나오는 길에 로비에는 빈 페트병을 모으는 박스가 있다. 글래드 호텔은 친환경 브랜드 아임에코의 자연순환 캠페인인 ‘클로징 더 루프’에 동참해 어메니티로 제공하는 무라벨 생수 빈 페트병을 모아 아임에코에 전달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페트병은 재생원사로 재활용한 친환경 의류로 제작된다.
이 밖에도 다양한 친환경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해 그린 호캉스 패키지와 플로깅 아이템 제공 상품, 전기차 연계 상품, 지구의 날 기념 객실 상품 등 친환경과 관련된 패키지를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 메종 글래드 제주에서는 침구와 타월을 활용해 친환경 반려동물용품을 만들어 판매 중이다.
한 매니저는 “코로나19 확산 전부터 친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침구 교체 프로그램과 무라벨 생수, 리사이클 기부, 유니폼까지 만들게 됐다”며 “그간 다양한 친환경 프로그램을 추진해왔고 앞으로도 다양한 친환경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소비자 사이에 ‘가치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국내 호텔 업체들도 자발적으로 친환경 열풍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서울신라호텔은 신라호텔 굿즈 ‘신라베어 키링’을 청룡의 해를 테마로 업그레이드한 ‘블루 드래곤 신라베어 키링’을 선보였다. 키링은 재활용할 수 있는 솜 충전재를 사용해 친환경 소비 트렌드를 반영했다. 한정판 상품으로 선보인 키링은 올해 말까지 판매된다.
롯데호텔앤리조트는 4월 초부터 에코 스타트업 ‘텀블링’과 함께 국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2024 리:띵크 서스테이너빌리티 자원순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여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자원의 선순환 구축을 위해 친환경 인증 제품 구매를 확대하고 사내에 텀블러 기부함을 설치했다.
반얀트리 서울은 2010년 개관 이래 일회용 어메니티 제품 사용 금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한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플라스틱 포장지 대신 자체 제작한 다회용기에 샴푸, 컨디셔너, 로션 등을 담아 제공한다.
환경보호를 위한 기금 마련에도 힘쓰고 있다. 반얀트리 서울은 객실 정리 정돈 서비스인 턴 다운 서비스 시 호텔 시그니처인 거북이 인형 ‘펠리(Felly)’를 제공한다. 그에 대해 고객이 지불한 기부금은 환경 보증 기금으로 전달돼 바다거북과 같은 멸종 위기종을 살리고 산호초와 열대 우림 보존에 사용된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조선 팰리스부터 그래비티까지 서울과 부산, 제주 등 총 9개 호텔 공통으로 친환경 테마 패키지 ‘마인드풀 스테이’를 선보였다. 패키지 이용 고객에게는 무라벨 페트병 약 60개 분량으로 만든 리사이클링 피크닉 매트를 제공한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ESG경영 비전 명칭인 ‘마인드풀 스테이’는 고객들이 투숙 기간에 음용하는 객실 내 페트병을 수거해 리사이클링 굿즈를 제작하는 것이 골자다. 지구의 날인 4월 22일 시작해 오는 11월 30일까지 진행한다.
워커힐호텔앤리조트는 업계 최초로 비건 전용 객실을 도입했다. 친환경 공기청정기와 비건 소재 침구, 소파 쿠션, 비건 와인 등을 제공한다. 르메르디앙&목시 서울 명동과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타임스퀘어는 객실에 생수 대신 정수기를 설치해 일회용품 줄이기에 나섰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정부의 규제에 앞서 호텔에서 선제적으로 친환경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며 “호텔에서 지내는 모든 순간에 친환경 가치소비를 실천하고자 하는 고객 눈높이에 발맞춰 호텔가에서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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