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지도자가 사실상 후계자 선출
대(代)이란 제재 이후 경제 피폐
라이시 집권 3년 새 화폐가치 급락
대통령의 사망으로 이란 권력투쟁이 격화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정작 국민은 경제 피폐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국민 반발이 거세질수록 권력 체제 불안전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보도를 종합해보면 중동 안보 전문가 대부분이 고(故) 에브라힘 라이시 전 이란 대통령의 헬기 추락사를 놓고 “이란 체제에 불안정성 및 유동성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서방의 제재로 인한 이란 경제가 피폐한 상황에 국민의 불만을 더욱 고조될 것으로 관측된다. NYT와 로이터통신은 결국 누가 선출돼도 체제 유지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놨다.
NYT는 “사망한 라이시 전 대통령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 후계자로 낙점된 인물”이라며 “그의 사고사는 국가관리 계획의 심대한 차질이자 중대변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사망한 이란은 헌법에 따라 모하마드 모크베르(68) 제1부통령이 대통령 대행을 맡게 된다. 대통령 유고 시 50일 이내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헌법에 의거해 보궐선거는 다음 달 28일 치르기로 결정됐다.
NYT는 라이시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차남인 모즈타바 하메네이(55)가 꼽히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임시 대통령과 최고지도자의 아들 사이에 권력 투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전했다. 임시 대통령 역시 라이시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강경보수 세력인데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추종하는 제자였기 때문이다.
현재 84세인 고령의 하메네이가 후계자인 최고지도자를 결정하는 미묘한 시기에 이란의 권력 구도는 걷잡을 수 없이 경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라이시 대통령의 헬리콥터가 행방불명됐던 사고 당일, 이란의 반체제 미디어는 사람들이 사고 뉴스에 축하하는 장면을 보도하기도 했다.
닛케이는 현지 특파원 보도를 통해 “보수강경파로 분류되는 라이시 전 대통령은 사회의 자유를 요구하는 국민 반발에 직면해 있었다”라며 “이란 치안부대(경찰)는 사고 당일 밤 반체제 시위가 퍼지는 사태를 경계하고 경비를 강화했다”고 소개했다.
권력의 공백기에 반체제 시위대 꿈틀거리는 배경에는 미국과 서방의 제재로 인한 심각해진 경제 상황이 존재한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타국의 제재나 세계 경제의 동향에 좌우되지 않는 자립 경제를 목표로 한 이른바 ‘저항경제’를 주장해 왔다.
반면 40%에 달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이란 서민의 삶에 타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사망한 라이시 대통령의 취임한 2020년 이후 미국 달러 대비 이란 통화인 리얄화 가치는 반토막 났다.
라이시가 취임한 2020년, 달러 대비 25만 리얄 수준이었던 환율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 정상화가 시작된 2022년 하반기까지 급락했다. 빠르게 하락했던 리얄화(化) 가치가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달러당 50만 리얄 수준을 유지했다. 이란 경제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 수 있다는 기대감도 이때부터 커졌다.
그러나 약 11개월 만인 작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시작된 이후 리얄화 환율은 다시 급등(가치 급락)했다. 올해 초에도 의회 강경파가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리얄화 가치가 한층 가파르게 하락했다. 이란을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닛케이는 “이란 지도부가 2021년 대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모으는 온건파나 개혁파 후보자의 등록을 인정하지 않으며 라이시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라며 “이후 라이시 전 대통령은 2022년 일어난 여성의 히잡 착용을 둘러싼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에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국민 반발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이어지고, 선출된 책임자가 국민의 지지를 잃으면 통치체제는 더욱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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