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즉각 휴전 결의안을 채택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검사장이 체포영장을 청구해도 이스라엘은 아랑곳 않고 가자지구 피난민 100만 명 이상이 모여있는 라파 지역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지난해 10월7일 이후 3만 6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미국의 지원 하에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끝장낼 기세를 보이는 이스라엘의 폭주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 왈리드 시암(Waleed Siam) 주일본 팔레스타인 대표부 대사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만들어 낸 결의안 등 여러 조치들을 실행에 옮겨야 할 때라며 한국 등 많은 국가들이 유엔 안보리와 ICC, 국제사법재판소(ICJ) 등의 결정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포럼 참석차 한국에 방문한 시암 대사는 28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국제사회가 국제법을 기반으로 책임있는 행동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ICC와 ICJ의 결정도 국제법의 일환인데 실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국가들이) 이행하길 바란다. 국제사회가 국제법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누가 국제법을 존중하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이 행한 제노사이드, 집단 학살, 인종 청소, 전쟁 범죄 등에 대해 반대해야 하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암 대사는 “이스라엘이 유엔이나 ICC, ICJ 결정 및 국제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합당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러시아를 배척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도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시암 대사는 한국에도 이러한 ‘실천’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지난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10월7일 개전 이후 약 반 년만에 ‘즉각적인 휴전'(immediate ceasefire)을 ‘촉구'(call for)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 중인 한국은 당시 결의안에 찬성했지만,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는 “구속력이 없는 결의안”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시암 대사는 이에 대해 “한국이 결의안에 찬성 투표해준 것은 감사하다. 그런데 그 언급에 대해 놀란 것이 사실”이라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진 것이 181호 유엔 결의안에 의해 세워졌는데 이것 역시 구속력이 없는 결의안이었다면 어떻게 지금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있을 수 있었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결정에 대해 진지하게 임한다고 생각한다”며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현재 유엔 회원국 193개 중 147개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했다. 최근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페인도 국가 인정에 합류했다. 저희는 한국과 일본도 그렇게 해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우호적인 여론은 국제기구의 여러 조치를 통해 실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일(현지시각) ICC 카림 칸 검사장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또 24일(현지시각) ICJ는 라파 지역에 군사적 공격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국제사회의 이같은 경향에 대해 시암 대사는 “드디어 국제사회에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고 싶다. 저희가 76년 동안 점령 상태에 있다가 이제 이러한 여론이 생겼는데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며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법이 아니라 국제법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 상태에 국제사회의 책임이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 특히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로켓 공격 이후) 지난 8달 동안 벌어진 일을 보면 더 그렇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이같은 여론에도 미국은 유엔 결의안에 대해 “구속력이 없다”고 하고 ICC와 ICJ의 결정을 무시하면서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행태에 대해 시암 대사는 “미국은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자유, 정의, 평등, 독립 등의 가치를 우선시한다면서도 팔레스타인에 관해서 만큼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은 당초 라파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반대했다. 그러나 지난 22일(현지시각) 이스라엘로부터 민간인 피해를 고려하면서 군사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개선된 계획을 보고받았다며 사실상 라파 지역의 군사 진격을 용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시암 대사는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을 지원하는 것은 전쟁범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인데 민간인을 죽이고 지역을 불태우는 등의 공격을 지원하고 용인하고,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정당화하는 나라들이 있다”며 “이는 미국이 과거에 베트남이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했던 것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나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이) 라파 지역을 휩쓸게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라파 공격이 벌어졌다”며 “미국‧이스라엘 정부나 의회 의원들 중 팔레스타인을 공격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는 국가라고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현재 라파 지역을 포함한 가자지구 상황에 대해 시암 대사는 “가자지구에 안전한 공간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가자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피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라며 “26일 라파 지역의 난민 캠프가 불타는 장면을 보셨을 텐데 이것만 보더라도 가자지구 내에 안전한 곳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피’라는 단어부터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아내고 있기 때문에 대피가 의미가 없다”며 “강제적으로 이주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는 국제법에 의해 전쟁범죄로 간주되는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시암 대사는 가자지구의 전후 처리 및 이후 통치 방식에 대해 가자지구 사람들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그는 “가자만이 아니라 예루살렘, 서안 등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정부와 대표를 세울 자유가 있어야 하고 이들에게는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한국이 독립 이후 점령 지도를 받지 않은 것처럼, 다른 모든 민족이 그런 것처럼 앞으로 팔레스타인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사망이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현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냐는 질문에 시암 대사는 “대통령 한 사람의 사망이 국가 정세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전쟁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란 지도부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스라엘 지도부는 모두가 전쟁을 하길 원한다. 생존을 위해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과도 싸우고 싶어하는데 네타냐후 총리의 경우 지위에서 물러나게 되면 부패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되기 때문”이라며 이스라엘이 전쟁을 원하고 있긴 하지만 이란이 이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시암 대사는 “한국도 점령 경험이 있고 점령에 맞서 싸운 경험이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점령 하에서 느끼는 고통을 알 것”이라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든 정부에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팔레스타인을 지원해 달라. 팔레스타인 옆에 서 주시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통역 : 음소연 한국-아랍소사이어티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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