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개막한 제21회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핵심 현안인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도발 등을 놓고 미국과 우방들이 공세를 퍼붓는 양상이다.
개막식부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기조연설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중인 중국을 겨냥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필리핀과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남중국해 평화와 안정, 번영을 위한 비전이 있지만 다른 주체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며 “우리가 영해에 그리는 선은 상상이 아니라 국제법에 따른 것”이라며 남중국해에 U자 형태로 9개 선(구단선)을 긋고 이 안의 약 90%를 자국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을 비판했다.
둘째 날인 1일(현지시간) 오전에는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이 연사로 나서 “강압이나 충돌, 소위 ‘처벌’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평화로운 분쟁 해결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의 ‘대만 포위’ 훈련, 필리핀 선박에 대한 물대포 공격 등을 겨냥한 발언이다.
오스틴 장관은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선전가들은 계속 법치주의를 거부하고 강압과 공격을 통해 자신들의 의지를 강요하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날 둥쥔 중국 국방부장과 회담에선 ‘대만 포위’ 훈련에 우려를 표하고 남중국해 항행 자유 보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상도 1일 둥쥔 부장과 회담에서 동·남중국해에서의 중국 군사 활동에 우려를 전했다.
호주와 캐나다 대표 등도 회의 기간 인터뷰 등을 통해 경계감을 드러냈다.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중국과 무역 관계가 안정됐음에도 ‘안보 불안’이 있다”며 중국에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지킬 것을 촉구했다. 중국과 호주는 지난 몇 년 동안 극심한 무역 갈등을 겪다가 최근 관계가 개선되고 있다.
빌 블레어 캐나다 국방장관은 중국의 캐나다 정치인 사찰 의혹, 총선 개입 의혹 등과 함께 ‘대만 포위’ 훈련에 대한 우려를 둥쥔 장관과의 만남에서 전달했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2019년 총선 당시 중국 관리들이 자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후보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담은 비밀 문건이 지난해 2월 보도되면서 양국 간 외교 갈등이 빚어진 바 있다.
러시아와 관련해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과의 무기 거래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오스틴 장관은 이날 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東進)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야기했다는 중국 참석자의 주장에 “우크라이나 위기는 명백하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이웃 나라를 침공하기로 한 결정 때문”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신원식 한국 국방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를 규탄하면서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중국, 러시아를 향한 비판 목소리가 잇단 이번 회의에서 둥쥔 장관은 마지막 날인 2일 ‘세계 안보에 대한 중국의 접근’이라는 주제의 연설로 반박에 나설 전망이다.
2일 회의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연사로 나선다고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이날 밝혔다. 이번 회의에 러시아 대표단은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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