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사고 피해가 잇따르면서 수술실 CCTV 의무화가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거점국립대학병원인 경남 양산부산대병원에서 ‘편도 제거’ 수술을 받은 5세 김동희 군이 다섯 달 만에 숨진 사건이 알려지면서 ‘수술실 폐쇄회로 TV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된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의료사고 피해 유가족과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자리를 마련했고,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입법에 나섰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상호 신뢰 및 수술의 질 저하, 환자와 의료진의 사생활 및 개인정보 보호 등을 지적하며 반대하고 있다.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술실 CCTV 의무화에 관한 입장을 정리해 봤다.
수술실 CCTV 의무화,
말기 암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비교적 간단하면서 9세 이하 어린이들이 많이 받는 수술이라고 알려진 ‘편도 제거’ 수술. 수술 당시 5세였던 고 김동희 군은 편도가 커지면서 발생한 코골이와 수면 무호흡증을 치료하기 위해 편도 제거 수술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1시간이면 끝난다던 수술은 2시간을 넘겼고, 유가족은 수술이 끝난 후 병원 측에서 ‘수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수술 이후 동희 군은 물도 넘기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했지만, 병원 측은 퇴원을 강행했다. 퇴원 후에도 몸 상태가 여전히 나아지지 않자 가족들은 부산의 한 종합병원에 동희 군을 입원시켰으나, 이내 피를 쏟아 내며 의식을 잃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수술을 받은 병원이자 소아전문응급센터도 갖춘 양산부산대병원으로 다시 옮기려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병원은 환자 수용을 거절했고, 다른 대학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결국 뇌사 상태에 빠진 김동희 군은 깨어나지 못하고 사고 발생 5개월 만인 지난 3월 가족의 품을 떠났다. 특히 아버지 김강률 씨는 현재 급성 백혈병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 중이라 주위를 더 안타깝게 했다. 김 씨는 투병 중이라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마음에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와 의료법 개정, 24시간 내 의무기록지 작성 법제화, 의료사고 수사 전담부서 설치 등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렸다.
김 씨는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수술실 CCTV’라고 말했다. 수술하는 의사를 감시하자는 목적이 아니라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수술을 했는지, 수술 중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기 위해 CCTV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24일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보건복지부도 8월 한 달간 수술실 설치 의무 대상인 전국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수술실 CCTV 설치현황 전수조사 방침을 밝혔다.
만일에 대비해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해야
환자와 그 가족들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가 수술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CCTV를 설치함으로써 수술 과정에서 일어나는 의료사고뿐 아니라 비자격자에 의한 대리수술과 같은 부정의료행위, 끊임없이 발생하는 환자 성범죄 사건 등도 예방할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최근 의사가 아닌 간호조무사가 수술을 집도하거나 수술실에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가 참여하는 행위 등이 적발돼 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아울러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산부인과 인턴으로 수련 중이던 한 남성이 마취를 받고 수술실에서 대기 중이던 여성 환자의 신체를 반복적으로 만지는 등 강제 추행을 저질렀던 사건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환자는 마취 등으로 수술 중 의사표현이 제한되고 주변 상황을 인지하기 어렵다. 또 외부와 차단돼 있어 수술 과정을 알기 어려운 수술실의 공간적 특성상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는 정보 비대칭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찬성 측 의견이다. 이에 수술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불법 행위 근절과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 측이 증거를 모을 수 있도록 수술실 CCTV가 법제화돼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CCTV 찬반을 조사한 결과, ‘수술실 내 범죄행위 방지와 신뢰도 제고 등의 이유로 찬성한다’는 응답은 73.8%로 집계됐다. 반면 ‘사생활 침해 및 의료행위 위축 등의 이유로 CCTV 설치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10.9%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환자의 최소한의 방어권을 위한 장치란 목소리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잠재적 범죄자? 의료계 반발
반면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외과계 9개 학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은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이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의료진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수술실 CCTV 설치로 의료인의 진료가 위축됨으로써 환자를 위한 적극적인 의료행위가 방해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울러 ‘환자 신체의 특정 부위가 불특정 다수에게 드러나는 등 개인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고, 의료 관계자의 사생활과 그 비밀이 유출될 수 있다’며 ‘나아가 의료진과 환자의 신뢰가 무너질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대한의사협회 측은 ‘자발적 CCTV 설치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의료기관 내 수술실의 CCTV 설치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하면서, 의사들이 의료사고 등으로 인한 소송 부담 때문에 쉽게 수술을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해외에서도 법으로 수술실 CCTV 설치를 강제한 사례가 없다고 덧붙이며 특히 고난도 수술을 하는 일부 의사들은 환자가 CCTV 촬영을 요청할 시 수술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21대 국회에서 성사될까?
한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최근 국회의원 300명에게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으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CCTV 설치 의무화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요청에 “그렇게 하겠다”라고 답한 바 있다. 이 지사는 ‘의료기관 수술실 CCTV 의무설치 입법 지원 간담회’에서 “수술실 CCTV는 누군가를 제재하기 위한 것이 아닌 상호 신뢰를 위한 것”이라며 “모두를 위해 필요하고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이 일이 국회에서 신속히 처리되기를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20대 국회에서도 CCTV 설치 의무화법이 발의됐으나, 의료계의 반발 등으로 계류되다가 결국 국회 종료로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이에 21대 국회에서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추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 이윤서 press@daily.co.kr
공감 뉴스 © 데일리라이프 & Daily.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