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성년자들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만들어 유포한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주범들이 속속히 검거되고 범죄 수법이 낱낱이 드러나자, 온 사회가 공분했다. 가해자들의 범행 대상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n번방 사건’은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에 비해 비교적 가볍게 취급되던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일깨운 계기가 됐다. 이후 성착취물 유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n번방 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끔찍한 ‘n번방 사건’을 방지하고자 마련된 ‘n번방 방지법’은 대체 어떤 법이며, 적용 대상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n번방 사건이란?
n번방 사건은 미성년자를 포함하여 일반 여성을 상대로 한 성착취 영상이 해외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유·판매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말한다. 이 ‘n번방’은 2018년 하반기부터 운영된 것으로 알려진다. 해당 채팅방 운영자들은 미성년자를 비롯한 일반 여성을 대상으로 성착취 영상을 찍도록 협박하고, 그 영상을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서 판매하는 행각을 저질렀다. 이후 채팅방 운영자들이 줄줄이 검거되고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대중들에게도 알려지게 됐다.
n번방 방지법이란?
국회가 2020년 4월 29일과 5월 20일 통과시킨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형법’ 개정안,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을 말한다. 해당 법안들은 성착취물 등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처벌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처벌 수위도 상향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어, 이른바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린다.
n번방 방지법 시행령 공개
성범죄 촬영물을 차단하는 ‘n번방 방지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7월 22일 첫 공개됐다. 시행령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불법 촬영물 등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는 기관·단체 지정’,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해야 하는 인터넷 사업자의 범위’, ‘기술적·관리적 조치의 내용’, ‘판단이 어려울 경우 사업자가 임시적으로 삭제 조치 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요청 규정 마련’, ‘위반 의무 기업에 과징금 부과, 사업정지 처분, 과태료 부과’와 같은 근거 규정 신설 등이다.
적용 대상은?
시행령 개정안은 전년도 매출액 10억 원 이상, 일평균 이용자 10만 명 이상이거나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2년 내 불법 촬영물 등의 관련 시정 요구를 받은 인터넷 사업자를 적용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네이버, 카카오는 물론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 대형 인터넷 기업들은 n번방 방지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그러나 불법 성착취물의 온상으로 지목된 텔레그램은 서버 위치가 불분명하다는 등의 사정 때문에 법 적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n번방 방지법’의 처벌 수위
불법 성적 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 성착취물을 이용해 타인을 협박·강요한 사람은 각각 징역 1년 이상, 징역 3년 이상의 형에 처한다. 특히 자신의 신체를 직접 촬영했더라도 이후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유포됐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 인터넷 사업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불법 촬영물 삭제 등 유통 방지 조치 또는 기술·관리적 조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n번방 방지법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
인터넷 공간을 운영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고, 디지털 성범죄물을 삭제 및 차단할 기술적 능력이 있는 플랫폼 사업자는 자신이 운영하고 관리하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에 대한 관리책임이 요구되고 있다. 또 이번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영업하는 해외사업자도 우리 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를 근거로 해외사업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와 제재를 하고, 국제 공조를 통해 불법정보 유통을 막을 수 있게 됐다.
n번방 방지법의 효과는?
디지털 성범죄물은 제작된 이후 인터넷을 통해 한번 유포되면 걷잡을 수 없이 재생산되는 게 특징이다. 이번 법 개정으로 공개된 인터넷 공간에서의 재유통이 효과적으로 차단되면, 그간 끊임없이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던 피해자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번 법 개정에 따른 시행령 마련 등 후속작업을 통해 업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예정이다.
n번방 방지법, 문제점은 없나?
최초 법 통과 당시 인터넷 업계는 문제가 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반발했다. 사업자가 이용자의 통신정보를 확인할 권한이 없는 등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으며, 서비스의 다양성과 이용자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도 크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근절 대책이 필요하다. 인터넷을 통해 벌어지는 일이니 인터넷 기업도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업계 협의나 충분한 논의 없는 졸속 법안 처리는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n번방 회원, 무조건 처벌 대상인가?
n번방 회원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처벌이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폭법이 개정됨에 따라 불법 촬영물을 시청한 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영상물 시청 당시 처음에는 몰랐지만 추후 불법 촬영물임을 알고 삭제했을 경우나 불법 촬영물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면 n번방 방지법 적용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고의성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법 촬영물은 어떻게 구분하나?
불법 촬영물이라고 하면 사실상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야동’ 역시 처벌 대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하지만 n번방 방지법에서 말하는 처벌 대상이 되는 불법 촬영물은 몰래카메라나 리벤지 포르노 같은 ‘성착취를 통해 피해자가 존재하는 경우’를 뜻한다.성범죄는 매우 중한 범죄다. 결코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본의 아니게 이러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음란물인지를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글 : 이현주 press@daily.co.kr
공감 뉴스 © 데일리라이프 & Daily.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