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간의 다툼부터 범죄 사건까지, 개인이나 단체를 위해 재판에서 그들의 변호를 맡는 사람들을 우리는 변호사라고 한다. 이들은 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사건의 옳고 그름을 사람들에게 주장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법정에 선 변호사들이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할까 가슴을 두근거리게 된다. 번득이는 지성과 화려한 언변으로 승부하는 변호사 영화 열 편을 소개한다.
어 퓨 굿 맨
쿠바의 미군기지에서 폭행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군 상부는 빠른 일처리를 위해 가해자의 변호사로 냉철한 ‘캐피’ 중위를 선임한다. 톰 크루즈가 맡은 ‘캐피’의 냉철함과, 데미 무어가 맡은 ‘겔로웨이’의 열정은 처음에는 잘 맞지 않지만 아웅다웅하며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특히 톰 크루즈가 승리에 집착하던 변호사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진정한 법조인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정의란 무엇일까, 법조인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의 답을 찾고 싶다면 꼭 봐야 할 명작 법정 영화다.
성난 변호사
승소하는 변호사가 정의로운 변호사일까? 어떤 사건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에이스 변호사 ‘호성’은 시체도 증거도 없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변호하게 된다.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데다 수려한 언변으로 검사까지 할 말 없게 만들지만, 바로 그 순간 용의자는 자신이 살인자라고 자백한다. 위기에 처한 변호사는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할까? 법정물과 추리물이 뒤섞인 스릴감 넘치는 스토리에 계속되는 반전은, 법정물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변호사 이선균과 판사 김고은의 견원지간 케미도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다.
프라이멀 피어
열아홉 살의 소년이 대주교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히면서, <프라이멀 피어>는 시작된다. 소년의 모습을 본 변호사 ‘마틴’은 교도소로 찾아가 무보수로 소년을 변호하겠다고 말한다. 증거물로 피가 묻은 옷과 운동화가 있지만 소년은 어린 시절 학대로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어 현장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 검사 측에 밀리고 있던 마틴은 한 증거물을 보고 소년이 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선한 동기로 시작했다가 점차 괴로워하는 변호사의 인간적인 모습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소심해서 나서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과연 마틴은 소년을 도울 수 있을까?
도가니
소설가 공지영 원작의 <도가니>의 바탕에는 광주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실제 학대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실이 픽션보다 더하다지만, 뉴스로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듣는 것과 영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다르다. 검사와 변호사조차 외면한 아동 폭행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선생님인 공유와 정유미는 직접 정보를 모으고 판사를 설득해야 한다. 권력 앞에서 아이들만큼이나 약한 어른들이, 상처받고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나서서 발언하는 순간 이들은 변호사보다 더 변호사 같은 정의를 발휘한다.
세인트 주디
이민 전문 변호사 ‘주디’는 미국에 망명을 요청한 한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만나게 된다. ‘아세파’는 자신의 나라에서 학교에서 여자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는 이유만으로 투옥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는 즉시 살해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이민법은 ‘아세파’의 상황을 난민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강제송환될 위기에 처한 그녀를 위해 주디는 자신이 가진 ‘변호사’의 힘, ‘설득’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1990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제 난민 문제는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국적을 넘어, 인류애 위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주디의 모습에 대해 깊은 생각이 필요한 때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더 리더>는 한 소년이 우연히 만난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여인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소년은 자라서 법대에 입학한다. 그리고 나치 전범 재판을 견학하러 갔다가 피고석에 앉은 과거의 연인을 만나게 된다. 연인의 안타까운 사실과 범죄 사실을 동시에 알게 된 남자는 갈등한다. 변호사임에도 변호할 수 없고, 연인이었음에도 더 사랑할 수 없었던 소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오래전부터 해주었던 일 단 한 가지, 책 읽어주는 일을 다시 시작한다. 변호사를 맡은 랄프 파인즈만큼이나 연상의 연인 케인트 윈슬렛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영화.
다크 워터스
‘헐크’로 잘 알려진 배우 ‘마크 러팔로’가 변호사를 맡는다면 어떨까. 초록색 주먹 대신 법으로 악당들을 때려 부수고 다니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변호사보다 대기업이 강하다. 잘나가는 변호사 ‘롭’은 세계 최대 화학기업 듀폰이 폐기물질을 유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물질이 프라이팬부터 시작해 생활 속 모든 물질에 들어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는 피해 마을뿐만 아니라 전 세계 평범한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대기업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비록 초능력도 없고 때로는 두려움에 떨기도 하지만, 이러한 용기와 정의에 대한 신념이야말로 슈퍼히어로의 모습이 아닐까?
변호인
여기 돈 잘 벌고 커리어 좋은 한 변호사가 있다. 그대로 변호사 일만 계속하면 계속 잘 먹고 잘살았을 텐데, 국밥집 아주머니 아들이 학생운동하다 끌려간 걸 보고 면회에 나선다. 그 사건을 계기로 독재정권의 폭력과 희생당하는 젊은이들을 알게 된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돈도 못 벌고, 생사의 기로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변호인이 되겠다고 말한다. 과거 부산을 배경으로 송강호의 명연기는 물론이고 임시완의 풋풋한 모습까지 볼 수 있는, 명품 법정 드라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비싼 ‘링컨’ 차를, 그것도 운전사까지 고용해서 타려면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할까? 변호사 ‘미키’는 LA 뒷골목 범죄자를 변호하며 돈이 되는 의뢰인만 만난다. 어느 날 할리우드 부동산 재벌 ‘루이스’를 만난 그는 자신의 의뢰인이 폭행 사건에는 무죄이지만, 오래전 자신이 실수했던 사건의 진범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재의 문제도 과거의 잘못도 바로잡느라고 바쁜 ‘미키’는 속물이지만 진짜 변호사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다소 모호한 제목 때문에 이 영화를 외면했다면, 매튜 맥커너히의 능수능란한 변호사 연기를 보기 위해서라도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의뢰인
‘시체 없는 살인 사건’은 스릴러, 추리 영화에서 뻔한 소재다. 하지만 뻔한 만큼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보다 더 궁금할 수도 없다. 영화 <의뢰인>은 용의자가 된 피살자의 남편과, 그를 둘러싼 변호사와 검사의 치열한 법정 대결을 공개한다. 검사 출신 변호사 하정우는 남편이 과거 성폭행 살인 용의자였으며, 그때 놓친 범인을 잡기 위해 검사 박희순이 사건을 교묘하게 조작했음을 알아차린다. 연기력 명품 배우 세 명이 펼치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는 관객에게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결말까지 달려가게 한다. 과연 변호사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아니, 올바른 판단이란 과연 무엇일지 고민하게 해주는 영화다.
글 : 서국선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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