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소울푸드라면 여러 쟁쟁한 후보가 있겠지만,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떡볶이 팬이다. 어린 시절부터 간식으로 먹어왔던 떡볶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치킨만큼이나 인기 있는 배달음식으로 꼽힌다. 그런데 떡볶이에 들어가는 떡의 종류에 따라 쌀떡과 밀떡으로 나뉜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 쌀떡파와 밀떡파가 쟁쟁한 신경전을 벌이는 지금, 두 떡의 차이에 대해 알아본다.
떡볶이의 기원을 찾아서
떡볶이는 말 그대로 떡을 볶은 음식이다. 떡볶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조선 궁중음식에 있는데, 기름에 고기, 채소, 간장 양념을 떡과 함께 볶아낸 요리로 지금도 ‘궁중떡볶이’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이후 전골이나 냄비 요리에 떡을 넣고 조리했던 떡찜에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이미 ‘떡볶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유명한 대중가요 <오빠는 풍각쟁이>에 등장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떡볶이는 기름과 간장에 떡을 볶은 음식을 의미했다.
떡볶이에 지금의 고추장 소스가 들어가게 된 것은 그 유명한 신당동 떡볶이부터다. 1950년대, 우연히 중국집 개업식에 참석했던 창업주 마복림 할머니는 짜장면에 떡을 빠뜨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맛이 좋아서 자신의 노점상에서 떡볶이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후 고객들의 요청으로 다양한 사리를 추가하게 되면서 현재의 국물떡볶이의 기원이 되었다. 이후 떡볶이는 분식집에서 조리하는 철판떡볶이, 술집이나 포차의 전골 형태 등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동그란 배달용기에 담긴 배달떡볶이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쌀떡이 원조 아니야?
떡볶이의 ‘떡’은 어디서 왔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쌀이다. 떡, 그중에서도 가래떡은 한국인의 오랜 전통을 담고 있다. 가래떡은 멥쌀가루를 쪄서 길고 가늘게 만든 흰떡으로 이것을 잘게 잘라 떡국을 끓이고, 다양한 국물 요리에 넣어 먹기도 한다. 떡국용 가래떡은 굵게 뽑지만, 떡볶이용 가래떡은 식감과 편의성을 고려하여 절반 정도의 지름으로 작게 만든다. 신당동 떡볶이용, 즉 국물떡볶이용 가래떡은 국물이 더 잘 배어들게 하기 위해 더 가느다랗게 제작한다.
쌀떡의 장점은 무엇보다 쫄깃한 식감에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찰기가 있어 입 안에서 씹히는 감촉이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료가 쌀이기 때문에 쌀떡은 여러 가지 한식과 잘 어우러지는 식재료다. 전골 요리를 비롯해 고기 조림이나 장조림, 갈비찜 등에서 떡 사리는 빠지지 않는다. 쌀과 소금만 들어간 덕분에, 단순하고 고소한 맛이 나서 어느 요리에나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인의 일상 속 떡을 맛있게 요리한 쌀떡볶이야말로 명실상부한 떡볶이의 오리지널 아닐까?
밀떡은 생각보다 많다
‘떡을 무슨 밀로 만들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쌀보다 가격이 싼 밀가루로 떡을 만들던 시기도 있었다. 6·25 이후, 쌀이 귀한 시절에는 함부로 떡을 만들기 어려웠고, 대신에 흔한 밀가루로 가래떡을 뽑게 되었다. 게다가 떡볶이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학생들이 즐겨 찾는 음식에 쌀떡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단순한 떡이라면 단연 쌀떡이 더 가치가 높겠지만, 요리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국물떡볶이에 쓰이는 가느다란 가래떡의 경우, 부드러운 식감과 국물을 흡수하는 장점으로 밀떡이 많이 선호된다. 그래서 떡볶이 전문점에서는 쌀과 밀가루 비율을 치밀하게 계산한다고 한다. 밀가루가 얼마나 포함되었냐에 따라 떡이 양념을 흡수하는 정도를 좌우한다는 것. 게다가 밀가루 함유도가 높은 경우, 소스에 오래 두어도 덜 불기 때문에 오래 끓이는 떡볶이나 배달떡볶이에 더 적합하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분식집에서 맛있게 먹던 떡볶이가 밀떡이었을 가능성은 무척 높겠다.
밀떡파와 쌀떡파
떡볶이계의 밀떡-쌀떡 논쟁은 탕수육의 부먹-찍먹 논쟁만큼이나 치열하고 열정적이다. 두 입맛이 서로 한 치도 양보하지 못하는 것은 두 떡의 맛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쌀떡은 쫄깃하면서도 단단한 식감이 있어, 씹는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선호한다. 게다가 떡 특유의 순한 맛이 오래 남아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편 쌀떡과는 달리, 밀떡 특유의 부드러움과 잘 배인 양념 맛에 반한 사람들도 많다. 게다가 양념 사이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밀떡만의 고소한 맛도 매력 포인트다.
정리하자면, 밀떡파와 쌀떡파를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식감에 있다.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거나 이가 약한 사람들은 밀떡을 선호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쌀떡을 선호한다. 양념이 배어드는 정도도 중요한 기준이다. 맛있게 끓인 떡볶이를 잘라보면, 쌀떡은 겉면에만 양념이 배이고 안쪽은 흰 속살을 유지하는 반면 밀떡은 안쪽까지 양념이 푹 배어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극과 극을 달리는 밀떡파와 쌀떡파야말로, 탕수육 소스의 여부보다 더 근본적인 갈등이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밀떡과 쌀떡을 지지하기는커녕 그 차이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떡볶이 소스의 진하고 매콤한 맛 때문에 그 안의 떡이 어떤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또한 밀떡이든 쌀떡이든 맛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온화한 마음을 가진 소비자도 있다. 하지만 밀떡과 쌀떡 논쟁이 유명해진 이상, ‘떡알못’들도 둘의 차이를 생각하며 섬세한 맛을 음미해보자.
그렇다면 소스 속에 잠긴 밀떡과 쌀떡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가장 큰 차이는 굵기와 모양이다. 밀떡은 오랜 시간 국물떡볶이에 최적화되어 쓰여왔던 만큼, 비교적 가느다랗다. 쌀떡은 굵기도 눈에 띄지만 한편 짧고 뭉툭하게 썰어내는 경우도 있어, 늘 길게 썰어져 있거나 젓가락처럼 길게 조리되기도 하는 밀떡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단면으로도 알아볼 수 있다. 밀떡은 반듯하게 썰어진 반면 쌀떡은 비스듬하게 모양을 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주문한 떡볶이가 나오면 입에 넣기 전 한 번 모양을 보며 추리해보는 것도 좋겠다.
둘 다 먹으면 안 될까?
진정한 떡볶이 애호가에게 밀떡이 맛있냐, 쌀떡이 맛있냐는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는 질문과도 같다. 둘 다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밀떡과 쌀떡을 동시에 조리하는 떡볶이 가게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밀떡파와 쌀떡파는 싸우지 않고 각자의 몫을 먹고, 개의치 않는 경우에는 두 가지 맛을 즐길 수 있으니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다.
만약 한 가지 떡만을 골라야 한다면 어떨까? 고민이 된다면 밀떡과 쌀떡을 놓고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각 상황에 맞는 떡을 선택해보자. 재료를 이것저것 넣고 끓여 먹는 국물떡볶이를 원한다면 밀떡을, 떡강정이나 기름떡볶이처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이 중요한 경우라면 쌀떡을 선택하는 것이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그 외에도 자신만의 입맛에 따라 그때그때 더 좋은 선택을 하자. 중요한 건 다른 떡을 지지하는 친구와 굳이 논쟁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떡볶이는 언제나 옳고, 언제나 맛있는 한국인의 소울푸드 아니겠는가.
글 : 서국선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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