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큼 널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 “넌 나 없이는 안 된다니까.” 얼핏 듣기엔 달콤한 것 같지만, 서서히 사람을 중독시켜 결국 파국에 이르게 하는 말이다. 연인, 가족, 친구와 같이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가스라이팅은 피해자가 자신이 무엇을 당하는지조차 모르게 서서히 세뇌되어 결국 모든 일을 가해자의 뜻대로 진행하게 만들기에 더욱 무섭다. 과연 이러한 가스라이팅을 스스로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가스라이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알아보자.
가스라이팅 어원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은 영화 ‘가스등(Gaslight)’에서 유래했다. 주인공 벨라의 남편은 그녀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거짓 행동들로 그녀를 조종하며 심리적으로 몰아간다. 자꾸만 가스등이 흐려진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가스등은 밝다며 너의 감각이 잘못된 것이라 이야기하고, 그녀의 물건을 몰래 숨긴 뒤 마치 그녀가 일부러 숨긴 듯 몰아가는 등 그녀가 서서히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책하게 만든다.
위험한 이유
보통 범죄의 피해자들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려 시도를 하지만,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은 자신이 피해자인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이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서히 판단력을 갉아먹고 옭아맨다. 결국 피해자는 가해자 없이는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가해자는 피해자를 통제하고 파멸시키며 쾌감을 느낀다.
가스라이팅의 대상
가스라이팅은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자신을 경계하지 않을 때까지 친밀함을 구축하고, 신뢰가 두텁게 쌓였을 때 서서히 옭아매기 시작한다. 연인 사이는 물론 친한 친구 사이,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가스라이팅이 일어날 수 있다. 즉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학대다.
가스라이팅 가해자 단계
경계심 풀기
가스라이팅은 우선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신뢰를 쌓고, 피해자가 경계심을 풀도록 만드는 것부터 시작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친밀감을 심어주기 위해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호감을 표시하며 서서히 경계심을 허물어간다. 피해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가해자를 믿고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판단력 잃게 하기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고 나면 가해자는 피해자가 스스로를 ‘자꾸만 실수하는 사람’,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하게끔 몰아가기 시작한다. 왜 자꾸 실수를 하느냐며 피해자의 심리를 반복적으로 건드리고, 피해자의 잘못이 아닌 일도 거짓말로 기억을 왜곡시켜 가며 피해자가 스스로의 판단력을 의심하고 흔들리게 만든다.
주위 사람들을 차단시키기
애인에게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거나, 자녀가 친구를 사귀는 것조차 통제하려 드는 부모 등이 해당되는 단계다. 주위 사람들이 피해자를 돕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피해자가 가해자 외의 다른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게끔 만든다. “그 사람들은 너를 질투해서 그래. 널 생각해주는 것은 나뿐이야”, “그들은 모두 경쟁자야. 널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와 같이 오직 가해자만을 바라보게 만든다.
피해자 몰아가기
피해자는 이제 자신을 믿을 수 없고 가해자에게 극도로 의존하게 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자신의 기억력, 판단력, 감정 등을 믿지 못하게 만들어 심리적으로 황폐화시키고, 피해자는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채 가해자의 판단에만 의존한다. 무속인에게 전 재산을 갖다 바치는 사람처럼 객관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복종을 보이는 등 사실상 노예와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가스라이팅 피해자 초기 반응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피해자도 처음에는 정상적인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해 다소 고집이 세구나 정도로 생각하며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가해자가 왜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어리둥절해하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가해자를 만날 때 긴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해자와의 관계가 좋다고 포장해 이야기하거나, 스스로에게도 좋은 관계라고 되뇌기도 하는 등 가해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참는다.
가스라이팅 피해자의 불안감
가스라이팅이 계속되면 불신을 넘어선 불안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내가 옳다는 것을 가해자에게 이해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골머리를 앓고, 괴로움과 절망을 느낀다. 자꾸만 가해자가 생각나고,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했나 후회하기도 하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절망하기도 한다. 이미 가해자에게 상당히 사로잡힌 단계라 볼 수 있다.
피해자의 자책
완전히 심신이 지쳐버려 스스로를 자책하고, 가해자에게 의존하는 단계에 이르면 이미 가해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하고 있는 파멸 직전의 단계라 볼 수 있다. 자신은 최악이며, 아무리 노력해도 가해자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낀다. 가해자가 기분이 안 좋거나 불쾌해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며 괴로워한다.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가고 있음에도, 주위 사람들에게는 가해자를 옹호하는 말을 하기에 바쁘다.
이러한 가스라이팅을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누군가가 당신을 형편없이 취급하고, 패배자로 느끼게 한다고 해서 당신이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그 사람에게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당신의 정당성을 애써 설득할 필요도 없다. 나를 괴롭게 만든 사람을 떠나는 것은 실패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글 : 전신영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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