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발생하는 일을 우리는 ‘우연’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발생한 우연은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하며 때로는 불행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람들의 삶을 바꿀 정도로 커다란 ‘발명’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 삶을 편리하고 편안하게, 안전하게 만드는 아이템 중에서는 실로 우연이 겹쳐져 발명되고 발견된 것들이 많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이 왜 쓰이겠는가. 지금부터는 우연이 발명과 발견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널리 쓰이게 된 10가지의 아이템을 선정해 소개할 것이다.
테플론
‘테플론’은 미국 듀폰사의 상표이자 플루오린 원자와 탄소 원자로 만드는 플루오린화 탄소수지를 뜻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 이름을 어디에서 들어봤을까. 정답은 ‘프라이팬’이다. 프라이팬의 코팅 소재로 널리 쓰이는 테플론은 처음에는 우주선의 방수재로 개발된 것이었다. 하지만 강도가 너무 약해서 처음에는 마땅히 쓰일 곳을 찾지 못했다. 이걸 해결한 것이 프랑스의 한 기술자였다. 자신의 아내가 요리하다가 자꾸 눌어붙는 무쇠 프라이팬에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고, 비로소 테플론이 쓰일 곳을 찾게 된 것이다.
아스피린
두통, 치통 등의 증상이 있을 때 주로 복용하는 아스피린은 사실 처음에는 ‘살균제’로 개발된 약품이었다. 화학물질 살리실산을 먹는 살균제로 개발하던 독일의 제약사 바이엘은 살리실산의 단점인 고약한 맛을 개선하기 위해 아세트산을 합성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기존의 단점이 보완될 뿐 아니라 해열과 통증 완화라는 새로운 효능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해 현대의 인류 중 많은 수가 복용하는 진통제가 탄생하게 된다.
X선
X선을 발견한 인물은 독일의 물리학자인 ‘빌헬름 뢴트겐’이다. 1895년 11월 8일, 뢴트겐은 암실에서 음극선관을 두꺼운 검은 마분지로 싸서 어떤 빛도 새어 나올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음극선관에 전류를 흘려 보내자, 떨어져 있는 책상 위에서 밝은 빛이 빛나는 걸 발견하게 된다. 뢴트겐은 이 새로운 형태의 ‘선’을 주목하게 되는데, 여기에 사진 인화의 원리를 접목해 어떤 물체에 이 선을 통과시켜 살아있는 사람의 뼈를 찍게 된다. 뢴트겐은 수학에서 미지의 수를 뜻하는 X를 표시해, 이 빛을 ‘X선’이라고 명명했다.
소형 심박조율기
미국의 ‘윌슨 그레이트배치’는 잘못 뛰는 동맥을 기록하는 장치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던 엔지니어였다. 그는 자신의 발명품에 실수로 당초 계획과는 다른 저항기를 투입하게 되는데, 이때 회로가 뛰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반응을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다면 심장 박동을 돕고 또 조절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친 그는 연구를 이어갔고, 1952년 ‘폴 졸’이라는 다른 인물에 의해 실제 발명이 이뤄지게 된다.
스프링 장난감
1940년, 해군에 복무하던 엔지니어 ‘리처드 제임스’는 스프링이 떨어지면 멈출 때까지 바닥으로 굴러가는 풍경을 우연히 보게 된다. 이를 보고 영감을 얻은 그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화려한 색상을 띠며 움직이는 스프링 장난감의 시제품을 만들고, 1948년에는 완구로 시판하게 된다. 제임스의 아내는 이 장난감에 ‘슬링키’라는 이름을 붙였고, 지금까지 2억 5천만 개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게 된다.
낙하산
초기의 낙하산은 지금처럼 백팩에 들어가 작게 수납되는 형태가 아니었다. 사람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부피는 어마어마했고, 낙하산 자체의 무게도 무거웠다. 백팩에 수납되는 현대식 낙하산은 20세기 초, 소련의 키예프군사학교를 졸업하고 배우로 일하던 ‘글레브 코텔니코프’를 통해 발명됐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에어쇼를 보러 갔다가 당시 촉망받는 비행기 조종사가 추락해 사망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충격을 받아 그 길로 극장을 그만두고 안전하게 낙하할 수 있는 낙하산 개발에 매진하게 된다. 그의 첫 번째 수납형 낙하산의 특허는 1911년 등록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초강력 접착제
순간 접착력이 발군인 초강력 접착제는 1942년 ‘해리 쿠버’ 박사가 발명한 것이다. 쿠버 박사는 화학약품으로 투명한 플라스틱 렌즈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던 인물이었다. 사이아노아크릴레이트(CA)를 가지고 다양한 연구를 하던 중에, 이것이 때로 매우 끈적거리는 질감을 가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쿠버 박사는 당시에는 이를 간과하다가, 화학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기면서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그곳에서 CA를 가지고 실험실에 있는 여러 종류의 물건들을 접착하는 실험을 하고 또 성공하게 되자, 본격적으로 이를 개발하고 또 특허를 내 추후에 상품화에도 성공하게 된다.
성냥
인류의 역사는 ‘불’과 함께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적인 발화 장치가 개발되기 전,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가장 보편적인 아이템은 ‘성냥’이었다. 성냥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하는데, 사람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상용화된 성냥을 처음 유통한 인물은 19세기 영국의 약사인 ‘존 워커’로 기록돼 있다. 그는 평소 실험실에서 신약 연구를 하던 과정에서 막대기에 말라붙은 물질을 닦아내다가 이를 바닥에 긁으며 떨어트리려 하게 되는데, 그 순간 그 화학물질에 불꽃이 튀며 불이 붙는 걸 보고 ‘성냥’을 발명하게 된다.
안전유리
과거의 자동차 사고는 작은 충돌에도 흔하게 대형 사고로 이어지고는 했다. 이는 날카로운 조각으로 부서지는 자동차의 유리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과학자인 ‘에두아르 베네딕투스’는 유리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실험을 했지만, 15년이 지나도록 쉽사리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고양이가 실험실을 돌아다니다 선반 위 플라스크를 떨어트리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 플라스크는 산산조각이 나지 않고 붙은 채로 금만 갔고, 베네딕투스는 이에 놀라워하다가 깨지지 않은 플라스크를 셀룰로이드 용액에 담가뒀던 걸 떠올리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지킨 자동차 안전유리의 탄생의 순간이다.
항우울제
항우울제의 첫 시작은 마취제였다. 프랑스의 제약회사 롱플랑은 페노티아진의 부산물인 프로메타진을 합성했는데, 이 약물이 과거의 것보다 진정 효과가 매우 강한 점을 알게 된다. 이를 더욱 발전시킨 클로르프로마진이 프랑스의 의사들에게 배포되고, 처음에는 외과 수술의 마취제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진정제로서 사용이 검토됐다. 프랑스의 외과 의사 ‘앙리 라보리’는 진정 효과가 정신과 환자들에게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주변의 의사들에게 강력하게 추천을 했고, 괴이한 행동을 하던 정신과 환자들의 상태가 개선되는 걸 확인하면서 지금의 항우울제로 발전하게 된다.
글 : 최덕수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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