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올해의 컬러’라는 발표 자료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가 매일 걸치는 옷, 휴식을 취하는 실내의 인테리어,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 등 디자인에 민감한 분야는 모두 어떤 색이 올해의 컬러로 발표되는지에 따라 기민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고 발표하는 곳은 색상 전문 연구 기업인 ‘팬톤’이다. 팬톤은 미국 뉴저지에 소재를 두고 있는 기업으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표준 배색의 하나로 이들의 ‘팬톤 컬러’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작은 인쇄 회사에서 시작
팬톤은 1950년대 M&J 리바인 광고사라는 작은 인쇄 회사로 시작됐다. 회사는 매년 적자에 허덕였는데, 그럼에도 수익을 거두던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컬러 잉크 생산 분야였다. 5만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던 M&J 리바인 광고사는 사내에서 컬러 잉크 생산 시스템을 구축한 파트타이머 로렌스 허버트에게 회사의 기술과 자산을 모두 넘겼으며, 그가 자신의 잉크 시스템과 인쇄를 접목해 만든 ‘팬톤 컬러 매칭 시스템’이 성공을 거두면서 지금의 팬톤사에 이르게 된다.
사람별로 다르게 보이는 색상
색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눈에서 색각을 담당하는 원추세포는 적녹청에 반응하며, 빛의 파장에 따라 어느 시세포가 활성화되는지가 달라진다. 이에 따라 같은 색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게 된다. 즉, 색맹이 아닌 사람들도 조건에 따라 색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팬톤은 그때까지 체계화되지 않아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 색을 같은 조건하에서 정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다.
팬톤 매칭 시스템(PMS)
1963년, 회사는 팬톤 매칭 시스템(PMS)이라는 색상 시스템을 개발했다. PMS는 여러 가지 색에 고유 번호를 붙여, 어떤 매체에서 사용하더라도 똑같은 색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즉, 추상적인 색상에 고유의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PMS는 모든 컬러 소재 산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여러 소재에 걸쳐 10,000개 이상의 컬러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의 컬러
우리는 매년 ‘올해의 컬러’ 선정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는 팬톤사에서 선정하는 것이다 2000년부터 해마다 팬톤사는 올해의 컬러를 발표하고 있으며, 이 색상은 각종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용된다. 2000년 세룰리언을 시작으로 2001년 퓨시아 로즈, 2002년 트루 레드 등 다양한 색상이 올해의 컬러로 선정되고 있다. 특이하게도 2016년과 2021년에는 각각 로즈 쿼츠와 세레니티, 얼티밋 그레이와 일루미네이팅의 두 가지 컬러가 선정되기도 했다.
2022년 컬러는
2020년대 들어서는 무거운 색감의 색채가 올해의 컬러로 선정되는 추세다. 2020년에는 네이비보다 가볍고 스카이 블루보다는 어두운, 딥톤과 덜톤의 중간 색상인 ‘클래식 블루’가 선정됐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극복의 의미를 담은 해변의 조약돌 같은 회색빛의 ‘얼티밋 그레이’, 밝은 태양 같은 상쾌한 노란색 ‘일루미네이팅’이 선택됐다. 그리고 2022년에는 신뢰감 있는 블루 컬러 계열과 보랏빛 붉은 기조가 섞인 ‘베리 페리’가 올해의 컬러로 선정됐다.
트렌드를 주도하는 기업
팬톤의 올해의 컬러는 디자인 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들의 올해의 컬러는 단순히 어떤 색이 인기가 있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감각이나 예시에 따라 선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매년 다양한 분야의 트렌드와 사회 현상을 분석해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1년, 침체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색이 선정된 것을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컬러 컨설팅 사업
팬톤은 브랜드를 위한 커스텀 컬러 컨설팅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브랜드 맞춤형 컬러 솔루션과 색상에 얽힌 브랜드 스토리의 전달,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맞춘 제품 팔레트 등의 컨설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컬러 선호도와 분야 및 지역별의 컬러 트렌드 예측도 함께 이뤄진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팬톤이 컨설팅한 컬러를 회사의 아이덴티티로 삼고 있다.
색상 네이밍에 대해
같은 색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하나의 색을 보고 누군가는 민트초코색이라 부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밝은 그린, 터코이즈, 혹은 하늘색이라 칭할 수도 있다. 이처럼 혼란이 있을 수 있는 컬러 네이밍을 팬톤이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색을 정확하게 지정하는 데에는 네이밍이 반드시 필요하고, 관련 업계는 팬톤사의 네이밍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
PMS의 역할은
사람에 따라 팬톤의 컬러 네이밍은 일종의 허세로도 비칠 수 있다. 색상을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RGB, CMYK 코드가 있는데, 굳이 팬톤의 컬러 네이밍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을 가질 법하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같은 코드라도 다르게 비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사람과 매체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색을 표준화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 팬톤의 색상 네이밍은 특히 인쇄 분야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시스템으로 꼽힌다.
고가의 팬톤 컬러북
팬톤은 PMS에 따른 컬러를 열람할 수 있는 컬러북을 판매하고 있다. 상당히 고가로 판매되지만, 특히 디자이너들에게는 필수품으로 꼽히는 도구다. 찾는 컬러가 팬톤 컬러북에 게재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이는 정기적으로 새로운 팬톤 컬러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디자인 업계에서는 발주처와 수주처가 가지고 있는 컬러북의 버전이 달라서, 발주처에서 요구한 컬러를 수주처에서 찾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글 : 최덕수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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