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라는 직업은 우리나라에서는 선망의 직업이다. 성공적인 삶이 보장된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확보하고서도 대신 사업가로서의 꿈을 움켜쥐고, 8전 9기의 도전 끝에 기어이 핀테크 불모지에서 핀테크로 성공을 거둔 인물이 있다. 바로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이하 직함 생략)’다. 간편송금 서비스 ‘토스’로 이름값을 올린 비바리퍼블리카는 K뱅크, 카카오뱅크에 이어 세 번째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득하면서, 이제 ‘토스뱅크’로 새로운 장을 맞이할 예정이다. 이 과정을 주도한 이승건은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우리나라의 ‘핀테크 개척자’로 이름을 남기게 될 인물로 평할 수 있다.
치과의사로서 보장된 삶을
내려놓고
‘토스’로 유명한 비바리퍼블리카의 젊은 창업주, 이승건 대표
1982년 1월 30일 서울에서 태어난 이승건은 영동고등학교를 졸업해 서울대학교 치의학과에 입학하며 의사로서의 삶을 꾸리기 시작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삼성의료원 등에서 전공의로 생활하다가 국내 첫 장애인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전남 목포에서 배로 두 시간 떨어진 섬 암태도에서 3년 동안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며 군 대체복무를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스스로의 역량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꿈을 꾸게 된다. 의사로서의 삶이 아닌 ‘사업가’로서의 삶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구체적으로 찾기 시작하자 부모와 주변인들은 이승건의 마음을 돌려놓고자 열심히 설득했다. 치과의사로서의 보장된 삶을 납득시키고자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주변인들이 열심히 설득했으나, 그는 공중보건의 소집해제 바로 다음날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여기에는 드라마 제작 관련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부친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중보건의로 일하며 남는 시간에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이때 루소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민중들의 ‘공화국 만세’라는 구호의 프랑스어 ‘비바리퍼블리카’로 회사명을 삼았다.
창업 후의 시도, 그리고 실패
이승건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였던 IT, 정보통신 사업에 주목했다. 중학교 재학 시절에는 프로그래밍 대회에 나가기도 하는 등 프로그래밍 전반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가 회사를 창업하던 당시가 스마트폰 보급으로 제2의 IT 창업 붐이 일던 때라는 영향도 있었다. 2011년 한 해를 기술개발에 매진한 그는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다양한 서비스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초음파를 이용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울라블라’, 카카오톡 기반의 투표 서비스 ‘다보트’ 등을 연이어 내놓았다.
토스 이전에 비바리퍼블리카의 대표작이었던 다보트
그중에서 가장 평가가 좋았던 서비스는 다보트였다. 앱을 실행시킨 뒤 질문과 선택지를 작성해 카카오톡 채팅방에 보내고,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재촉 기능이 담긴 기능성 앱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상업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카카오톡이 다보트의 기능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투표 기능을 도입하면서는 앱의 존재 의의도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초반의 론칭 서비스들이 제대로 된 실적을 거두지 못하면서, 이승건을 포함해 4명이 남아있던 회사는 생존을 위해 1년가량을 자신들의 서비스가 아닌 외주 개발로 보내게 된다.
마침내 내놓은 성공작 ‘토스’
마침내 성공을 거둔 8전 9기의 히트작, 토스
새로운 사업모델을 찾던 이승건이 다시금 주목한 것은 ‘금융’이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개발하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기존의 은행 서비스들의 불편함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보안카드와 공인인증서, 그리고 수많은 액티브X를 설치해야 하는 불편함을 개선한 송금 서비스 ‘토스’를 개발하게 된다. 토스는 CMS 자동이체를 위해 활용되는 ‘펌뱅킹망’을 이용할 경우에는 비금융기관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돈을 출금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서비스를 구상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2014년 2월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실체화된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당시 토스는 완연히 새로운 서비스였던 것은 아니었다. 토스 외에도 간편송금을 할 수 있는 앱 서비스는 십 수개가 존재했다. 비슷한 출발선에 선 다른 이들에 비해 비바리퍼블리카가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이용자들의 편의성에 주목한 덕이었다. 긴 시간 동안 서비스 휴지기가 필요한 다른 서비스들과는 달리, 자정부터 40분 동안만 간편송금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형태로 이용자의 접근성을 최대한 배려했다. 서비스 이용을 위한 금액의 충전도 단위를 미리 정해두고 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즉시 충전할 수 있도록 기존의 다른 서비스에 비해 편의성을 기했다. 그 결과 토스는 빠른 시일 내에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며 시장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커지는 매출, 그리고 함께 커지는
결손금
하지만 토스의 부흥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토스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론칭 2달 만에 토스는 서비스 중단의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핀테크 성공사례들이 국내에 전해지고 금융규제 완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중단 1년 만에 금융당국의 유권 해석을 통해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었다. 다시 서비스를 시작한 토스는 기존 시중은행과의 제휴 확대를 통해 서비스 안정성을 담보하고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서비스 재개 1년 반 만에 토스는 공인인증서로 19개 은행, 3개 증권사의 계좌를 조회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었다.
2019년 토스에서 처음으로 출시한 온, 오프라인 결제 카드 ‘토스 플레이트’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마련한 이후에는 그들의 가능성을 높게 산 투자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2017년 3월 비바리퍼블리카는 기업가치를 약 1,300억 수준으로 평가받아 페이팔 컨소시엄으로부터 대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2016년 35억 원을 기록했던 매출은 투자금을 기반으로 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2017년에는 205억 원, 2018년에는 548억 원으로 뛰었다. 하지만 송금액 규모가 커질수록 시중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수수료도 커지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에, 현재까지도 비바리퍼블리카는 적자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통과,
토스은행 본격화
두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토스는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받았다
비바리퍼블리카가 시장에 이름을 날린 이후에 택한 선택지는 매출 안정화가 아닌 사업 다각화였다. 손실을 신경 쓰지 않고 사업의 규모를 더 키우는 것이 가치가 높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현재 비바리퍼블리카의 결손금은 1,000억 원이 넘었으며, 2019년 상반기에만 499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손금에도 불구하고 비바리퍼블리카가 확장을 위해 택한 다음의 단계는 ‘은행’이었다.
이승건은 비바리퍼블리카가 인터넷전문은행에 도전할 것을 선언했다. ‘토스뱅크’를 만들기 위한 시도는 2019년 5월 처음 이뤄졌으나, 당시에는 예비인가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자금조달능력에 붙은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이승건은 비바리퍼블리카의 토스뱅크 지분을 낮추면서 국내 금융사를 주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비바리퍼블리카가 34%, 하나은행, 한화투자증권, 중소기업중앙회, 이랜드월드가 각 10%를 보유하는 지분 구성으로 올해 다시금 인터넷전문은행에 도전했으며, 마침내 예비인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곧 국내 세 번째 인터넷은행인 토스은행을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제 남은 것은 수익성 개선
우리나라 핀테크 분야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남을 이승건 대표
이와 함께 비바리퍼블리카는 LG유플러스의 전자결제사업부문을 품으며 결제 서비스 산업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비바리퍼블리카는 LG유플러스가 물적분할해 설립한 신규 법인의 지분을 3,650억 원에 취득해 본격적인 영업에 나설 예정이다. 국내 PG 시장은 현재 LG유플러스를 비롯한 상위 3개사가 60%를 점유하고 있으며, 금번 인수로 비바리퍼블리카는 8만여 가맹점을 확보하게 됐다.
이외에도 이승건은 2019년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명시적인 성과를 거둔 바 있다. 1월에는 미니보험 4종을 내놓으며 보험 서비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중고차 시세 조회, 대출상품 비교 서비스 등도 잇달아 론칭했다. 체크카드 역할을 할 수 있는 ‘토스카드’ 또한 빼놓을 수 없으며, 현재는 증권사 설립을 위한 예비인가 심사도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사업을 성공시킨 이승건에게 이제 남은 것은 뒤로 미뤄놓았던 비바리퍼블리카의 ‘수익성 개선’이다. 규모만 키운 것이 아니라 기업의 내실을 다지는 데에도 성공한다면, 이승건이라는 인물은 우리나라의 핀테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기록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 : 최덕수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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