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고향만두’의 출시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도 냉동만두 시장이 열렸다. 꾸준히 성장해 온 냉동만두 시장은 작년 풀무원이 얇은 피의 만두를 내놓으면서 역대 최대의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냉동만두 시장의 성장을 주도한 것은 CJ제일제당으로 이야기된다. CJ제일제당은 냉동만두 시장 전체의 43.9%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압도적 1위의 기업이다. CJ제일제당이 냉동만두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3년 12월 출시한 ‘비비고 왕교자’의 성공 덕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고 론칭된 브랜드
비비고 브랜드의 전환점이 된 냉동식품, 비비고 왕교자
비비고 브랜드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패스트푸드처럼 즐기는 한식 브랜드’를 모토로, 전 세계 곳곳에 맥도날드처럼 한식 매장을 열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직접 론칭을 위해 브랜드명을 작명했다. 한식의 ‘비비다’와 포장을 뜻하는 ‘To Go’를 결합해 ‘비비고’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첫 시작부터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있었다는 점을 론칭 때부터 명확히 한 것이다.
비비고가 ‘글로벌 한식 브랜드’를 표방하며 냉동식품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말부터였다. 비비고의 해외 사업은 당초 계획했던 것처럼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으며, 브랜드에 친숙한 외국인들이 오히려 한국에서 비비고를 찾지 못하는 우선 해소하고자 한 것이다. 한국에서 비비고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방책을 찾던 이들이 주목한 것은 ‘만두’였다. 다양한 한식 재료를 채워서 만들 수 있는 제품이며,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 지역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품목이라는 점이 주요했다. CJ제일제당은 2010년 비비고 브랜드로 미국에 출시한 만두를 국내 시장에도 내놓기 시작했다.
비비고 왕교자의 대성공
종가집의 위상을 강력하게 위협하고 있는 비비고 김치
CJ제일제당의 ‘비비고 왕교자’는 출시 1년 만에 시장 1위의 ‘해태고양만두’를 누르고 냉동만두 시장 1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냉동만두의 성공을 계기로 비비고는 국내에서 출시되는 품목의 수를 늘려갔다. 2016년에는 비비고 김치를 출시했으며, 2018년에는 죽을 출시해 다시금 성공을 거뒀다. 국내 시장에서 비비고 브랜드의 영향력은 해가 지날수록 커져갔다. 2019년 3분기에 이르러서는 냉동만두 분야에서 448억 원의 매출을 기록해 풀무원(206억 원), 해태제과(153억 원)을 크게 따돌릴 수 있었다.
만두뿐 아니라 김치 분야에서의 성장세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 김치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는 ‘종가집’이다. 비비고는 작년 2분기 기준 전체 시장의 점유율 41.2%를 기록하며 종가집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2018년 11월에 출시된 비비고 죽은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2,500만 개, 누적 매출액 650억 원을 기록하며, 점유율을 35.9%까지 끌어올렸다. 죽 시장 1위 기업인 양반죽(43.2%)과의 점유율 차이가 7% 차이로 좁혀진 것이다.
정체된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죽 시장에서도 비비고의 메기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비비고는 론칭 후 10년 동안 시장에서 과반이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던 기업들을 강력하게 위협하면서 ‘메기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메기효과란 정체된 생태계에 메기 같은 강력한 포식자가 나타나면서, 기존의 개체들이 생존을 위해 활력을 띠게 되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비비고 만두 출시 이후 국내 냉동만두는 질적인 향상을 이뤄, 현재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비할 바 없을 만큼의 경쟁력을 가지게 됐다.
시장 전체의 성장을 견인했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014년 3,000억 원대의 냉동만두 시장은 ‘소’ 경쟁을 넘어 작년의 ‘얇은 피’ 경쟁에 이르면서 작년에는 4,615억 원대로 크게 성장했다. 다른 분야에서도 메기효과는 일어나고 있다. CJ제일제당이 90년대에 내놓은 ‘CJ햇김치’와는 달리, 비비고 김치는 오랜 기간 1위를 차지한 종가집 김치의 점유율을 상당 부분 잠식하고 있다. 이로 인해 김치 시장에서도 작년을 기점으로 대규모의 마케팅이 집행되고 있으며, 제품 개발도 활력을 띠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글로벌을 바라봐야 할 때
외식 브랜드로서가 아닌, 지금은 간편식 브랜드로 성공을 거두는 중
하지만 커지는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력과는 별개로, 비비고 브랜드에 당초에 노렸던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는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비비고가 처음에 노렸던 시장은 외식 시장이었다. CJ제일제당과 CJ푸드빌은 비비고를 외식 브랜드로 론칭했으며, 미국, 영국, 중국,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성공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패에 가까웠다. 동남아 지역 공략의 거점이 되는 인도네시아 지점은 2017년 철수를 발표했으며, 국내 지점들도 2018년 4월 폐점을 확정지은 바 있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의 BI(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난 2017년 11월 변경했다. 이는 비비고가 갈수록 약해지는 외식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기 시작한, 그리고 냉장식품의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비록 외식 브랜드로서의 비비고의 성적은 그다지 좋진 못했지만, 냉장식품 브랜드로서의 비비고의 글로벌 성과는 갈수록 성장하는 추세다.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비비고 브랜드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전체 매출의 글로벌 시장 판매 비중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현재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만두를 앞세워 오는 2023년 글로벌 매출 2조 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한 번의 성장을 준비하고 있는 비비고
CJ제일제당은 한식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며 글로벌 지역에서의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작년 약 3조 원 가치의 미국 대형 식품기업 ‘슈완스컴퍼니’를 인수했다. 금번 인수를 통해 CJ제일제당의 미국 현지 생산기지는 5곳에서 22개소로 대폭 확대됐다. 이를 통해 이들은 비비고 브랜드 제품 현지화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식품 장르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기존의 면, 만두 중심의 간편식 품목이 보다 대중적인 카테고리로 확대될 것이며, 한식을 접목한 다양한 신제품 개발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만두 생산을 위해 2017년 광저우 공장을 세 배 증설했으며, 2018년에는 베이징 인근 랴오청에 100억 원 규모의 조리냉동 설비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비비고 시장 공략의 주요 거점 중 한 곳인 베트남에서도 연이은 M&A를 통해 시장 확대에 만전을 기하는 중이다. CJ제일제당의 공격적인 투자, 그리고 국내에서의 눈부신 성과를 등에 업고 비비고 브랜드는 2020년 또 한 번의 성장의 기점을 맞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글 : 최덕수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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