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 한국인. 김치의 민족에서 불닭볶음면의 민족으로 거듭나는 동안, 한국인의 밥상에는 온갖 종류의 매운 재료들이 등장했다. 국민 채소인 청양고추부터 시작해 큰 유행이었던 마라까지, 세상의 모든 매운맛을 정복하겠다는 일념으로 향신료들이 우리 식탁 위에 올라왔다. 그들의 정체와 함께 매운맛의 비밀과 효능까지 알아보자.
한국인의 매운맛 사랑 이유
매운맛을 내는 대표적인 향신료는? 동서양 누구나 고추라고 대답할 것이다. 고추는 캡사이신 성분이 들어있어 혀의 통각 세포를 쉽게 자극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고추의 매운맛을 본 것은 언제일까. 많은 사람들이 임진왜란 이후로 알고 있지만, 삼국시대에 고추 농사를 지었다는 기록도 있고 그 유명한 황희 정승이 검소한 밥상을 위해 고추에 된장만 찍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참고로 고추의 한자어는 ‘고초’로, 괴로운 풀이라는 뜻이다. 이 괴로움이 매혹적인 이유는 우리의 통각 세포가 자극받으면서, 동시에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 분비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땀 뻘뻘 흘리면서도 계속 매운 닭발을 먹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청양고추
그렇다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고추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청양고추다. 다양한 고추 중에서도 매운맛이 오랜 시간 지속되고 칼칼한 맛이 나 한식과 잘 어울린다. 김치찌개나 부대찌개처럼 매운 음식의 맛을 잡는 것은 물론, 조림 등 부드러운 음식에 약간의 자극을 첨가할 때에도 도움이 된다. 심지어 카르보나라처럼 느끼한 음식에도 포인트로 활용되니, 한국인의 청양고추 사랑은 끝이 없다. 외환위기로 종자가 외국 기업 손에 넘어가, 농부들이 매년 많은 로열티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청양고추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 한국에는 없을 듯하다.
페퍼론치노
한국에 청양고추가 있다면, 서양에는 페퍼론치노가 있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나 감바스 데 알히요를 먹을 때 포크 끝에 걸리는 빨간 고추가 바로 이것이다. 이탈리아 음식의 경우 올리브 오일을 베이스로 활용하는데,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맛에 깔끔한 매력을 더하는 데 이 페퍼론치노가 활약한다. 매운 향이 강한 한편 실제로 매운맛은 덜하기 때문에, 음식 전반에 은은한 매콤함을 퍼지게 만들고 입맛을 살린다. 평소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더라도 페퍼론치노가 들어간 음식은 충분히 즐겨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블랙 페퍼
후추는 지금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 당연한 향신료지만, 한때 유럽의 경제를 바꾸어놓았을 정도로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혀를 자극하는 짜릿한 매운맛에 코를 매캐하게 만드는 향은 음식의 잡내를 없애고 밋밋한 맛에 완성도를 더한다. 여기에 개운하고 상큼한 뒷맛까지 있어, 동서양을 불문하고 모든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향신료로 자리 잡았다. 특히 과거에는 소금 외에 별다른 향신료가 없고 음식이 쉽게 상했기 때문에 후추의 맛은 더욱 매혹적이었다. 후추가 무척 귀했던 시절에는 후추를 한 알씩 거래하기도 하고 세금을 낼 때 돈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고 하니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알 수 있다.
고추냉이
일식 마니아라면 고추냉이의 매력, 모를 수 없다. 예쁜 연두색과 코끝을 찡하게 감싸는 강렬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고추냉이는 고추냉이의 뿌리를 갈아서 즙을 내거나 말려 가루로 만든 향신료다. 고추냉이의 시니그린 성분은 캡사이신이 혀를 자극하는 것과는 달리 코를 공격한다. 초밥 먹다가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흘리게 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생선회나 초밥을 비롯한 일식에 자주 활용이 되며 개운한 맛 때문에 고기 요리에도 사용이 된다. 다만 열이 더해지면 고추냉이 특유의 맛이 모두 사라진다고 하니, 차가운 음식에만 가능하다는 사실 기억해두자.
마라
대한민국을 휩쓴 매운 음식 마라탕과 마라샹궈, 여기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마라’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자로 마비시킬 ‘마’와 매울 ‘랄’을 쓰는 데서 알 수 있듯, 마라는 단순히 매운맛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라의 핵심은 혀를 짜릿하게 만드는 감각에 있다. 비밀은 향신료 초피에 있는데, 여기에 든 산쇼올 성분이 얼얼함과 짜릿함의 핵심이다. 여기에 화자오, 육두구, 후추, 정향, 팔각 등 매운맛을 내는 여러 향신료가 섞여 눈물 나는 중독성, 마라의 맛이 완성된다고 한다. 먹을 때는 괴롭지만 돌아서면 군침이 도는 빨간 소스, 그 특유의 향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프릭키누(쥐똥고추)
매운맛은 한국인만 즐긴다? 그럴 리가. 태국은 열대지방 특성상 다양한 향신료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프릭키누라는 아주 엄청난 고추가 있다. 길이가 1㎝ 내외에 최대 크기가 3㎝라니, 쥐똥고추라는 이름이 딱이다. 하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프릭키누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청양고추의 무려 다섯 배의 맵기를 가진 탓에 우습게 보고 입에 넣었다가는 큰일난다. 태국이나 필리핀 요리에서는 소스를 만들 때 살짝 넣어 맛을 더하는 용도로 쓰인다. 한편 한국에서는 예능에서 벌칙용 음식으로 자주 사용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매운맛이 뒤로 갈수록 온몸을 불태우는 것이 특징.
타바스코
피자를 주문하면 피클, 치즈 가루와 함께 도착하는 매콤한 핫소스의 정체는? 바로 타바스코 소스다. 타바스코 소스는 멕시코의 타바스코 고추와 소금을 숙성시켜서 만든다. 3년간 참나무통에서 발효를 시킨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고추장이 떠오른다. 멕시코 출신 소스인 만큼, 부리토나 치폴레 등과 함께 먹어도 맛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조합은 역시 피자에 뿌려 먹는 것이겠다. 덕분에 이제 어느 피자집에 가도 빨간색 병과 초록색 라벨이 눈에 띄는 타바스코 병을 집어 들고, 화끈한 피자 맛을 즐길 수 있다.
할라피뇨
최근 경양식 집에서 자주 보이는 고추 피클이 있다. 조그마한 크기의 초록색 고추 절임은 바로 할라피뇨로 만든 것. 청양고추와 비슷한 맵기에, 한 번에 화끈해지기보다는 서서히 열기가 올라오기 때문에 그 맛을 즐기는 사람이 꽤 많다. 게다가 두툼해서 씹는 맛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재배되는 할라피뇨는 거의 피클용으로 쓰인다. 매콤함에 달콤함이 살짝 더해진 할라피뇨 피클은 기름진 경양식의 맛을 중화시키는 데 딱이다. 피자나 샌드위치에도 토핑으로 자주 쓰이는데 보기보다는 맵지 않다.
매운 음식도 먹고 건강도 지키자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매운 음식을 찾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매운맛이 스트레스는 없애주지만 몸에는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위와 장을 자극하기 때문에 속 쓰림과 복통, 설사를 유발하는 것은 기본. 땀을 흘리면서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몸에 혼란을 줄 수도 있다. 매운 음식이 다이어트에 좋다는 속설도 있지만, 매운맛의 강도와는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식욕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심지어 캡사이신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항암면역세포를 억제하여 발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니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 또 주의하도록 하자. 좋아하는 매운 음식을 오래도록 먹으려면 무엇보다 건강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니 말이다.
글 : 서국선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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