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카카오가 위기에 대응하고 미래 성장에 대비해 새로운 리더십 진용을 짰다. 네이버는 최수연 대표이사와 함께 ‘대표’ 직함을 쓰는 경영진을 중용하면서 4인 대표 체제를 갖추고, 카카오는 김범수 창업자가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그동안의 자율경영 체제를 접고 위기 대응에 총력전 체제에 돌입했다.
대표 4명으로 늘린 네이버
네이버는 최근 단행한 조직개편에서 ‘대표’ 직함을 쓰는 임원 1명을 추가해 4인 대표 체제를 구축했다. 기존에 뉴스 서비스를 이끌었던 유봉석 전 서비스운영총괄 부사장이 총선을 앞두고 네이버의 위기를 돌파할 정책·RM(위기관리) 대표를 맡으면서다. 이에 따라 네이버는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최수연 대표를 비롯해 채선주 대외·ESG 대표, 한성숙 유럽개발대표(전 네이버 대표), 유봉석 정책·RM 대표로 새롭게 대표 진용을 꾸렸다.
하지만 네이버는 이번 개편 이후에도 최 대표의 리더십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선택과 집중’이란 방향성을 전보다 뚜렷이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경은 무엇일까. 기존 네이버의 대외·리스크 담당조직은 대부분 최 대표 산하에 있고 채 대표가 일부 분담해 조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이버의 사업이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을 거듭하면서, 최 대표가 이런 영역을 계속해서 맡으면 모든 업무에서 최고의 결과를 내놓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따라서 최 대표가 국내외 사업 확장과 투자 활동 등 ‘팀 네이버’ 전체를 이끌고 미래를 개척하는 영역에 집중하려면, 대외 커뮤니케이션과 리스크 관리 등의 영역은 ‘대표’ 명함을 가진 다른 인물이 분담해줘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네이버 뉴스 서비스를 국내 최대 여론의 장으로 올려놓은 유 대표는 그런 점에서 적임자로 낙점돼 대표를 맡았다는 얘기다. 유 대표는 PR(대외 커뮤니케이션)뿐 아니라 대관, 법무, 개인정보, 정책 등 대외 조직들을 맡아 통합적 관점에서 회사 정책·리스크를 집중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대외·ESG(환경·사회·지배구조)정책을 맡고 있는 채 대표 역시 네이버의 지속 가능한 발전, 또한 이와 관련한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다. 1981년생 젊은 최고경영자인 최 대표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보완해주는 역할이기도 하다.
최 대표보다 10살이 많고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채 대표는 이달 초에도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며 현지에서 진행되는 국가 차원의 디지털 트윈 사업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네이버는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MOMRAH)로부터 국가 차원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 사업을 맡아, 수도 리야드 등 5개 도시를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대표는 그간의 경험과 역량을 토대로 네이버의 유럽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네이버는 2019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글로벌 AI 연구 벨트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한 대표 주도로 진행했던 프로젝트다.
결과적으로 네이버의 이번 개편은 한쪽으로 쏠리기 쉬운 CEO들의 업무부담을 나누는데 방점이 찍혀있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자)는 회사의 글로벌 투자와 경영 인사이트를 제시하는 조력자 역할만 하고 주요 업무는 전문경영인들에게 나눠 맡기는 방식을 택했다.
창업자 역할 커진 카카오
카카오는 네이버와 사정이 다르다. 지난해 말 김범수 창업자가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을 맡는 등 경영 일선에 전격 복귀했고, 최근엔 새로운 CA(Corporate Alignment)협의체 구성을 발표했다. CA협의체는 카카오그룹의 독립기구로 카카오 그룹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조직이다.
CA협의체는 기존의 자율 경영 기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카카오로 변하기 위해 김 창업자와 정신아 대표이사 내정자가 공동 의장을 맡는 구조다. 카카오는 그동안 회사를 성장하게 만든 자율경영 체제가 오히려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됐다고 판단하고, 김 창업자를 중심으로 강한 리더십 체계를 처음으로 구축하게 됐다. 카카오는 에스엠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인수 경쟁 과정에서 시세조종 혐의를 받아 경영진이 잇따라 수사를 받았다.
카카오,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뱅크, 카카오벤처스, 카카오브레인, 카카오스타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카카오페이, 카카오픽코마, 카카오헬스케어 등 13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는 경영쇄신위원회, 전략위원회 등 다양한 위원회 가운데 최대 3곳에 참여해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물론 이들 계열사 CEO의 경영 범위가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보다 자율성이 제한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관측이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카카오가 직면한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은 자율경영보단 통제라는 판단을 한 것”이라며 “그렇다고 김범수 창업자와 정신아 신임 대표가 공동의장이라고 해서 그룹의 모든 의사결정을 모두 이끄는 구조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창업자를 구심점으로 하면서 정 신임 대표라는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 기존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카카오를 끌어가겠다는 의지가 표현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 대표이사 내정자도 “CEO들의 위원회 참여를 통해 그룹의 의사결정 맥락 이해를 높이고, 높아진 해상도를 바탕으로 내부 통제를 강화하게 될 것”이라며 “그동안의 느슨한 자율경영 기조를 벗어나 구심력을 높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