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형사전문 이길우 변호사] 변호사는 범죄에 연루된 사람을 만나는 게 일이다. 특히 형사전문변호사는 더욱 그렇다.
교통사고를 일으켜 형사입건이 된 이들은 처벌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변호사를 찾는다.
그런데 교통사고는 다른 일반 범죄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바로 과실범으로 간주한다.
가령, 사람을 때리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성적인 추행을 하는 범죄는 본인이 그런 행동을 의도하여 저지른다. 즉 고의범이다.
반면에 교통사고 범죄는 운전자가 일부러 저지르진 않는다. 비록 주의를 게을리한 잘못이 있지만 교통사고는 고의적인 범죄와는 궤를 달리하여 다루는 게 법정의에도 맞다. 교통사고로 실형을 받으면 징역형이 아니라 금고형을 선고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참고로 금고형은 징역형과 달리 노역을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통사고에서도 징역형을 처벌받는 범죄가 있다. 대표적으로 음주운전이다.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음주운전 사고를 과실로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의 이런 특성은 보험처리를 할 때도 나타난다.
가령 종합보험에 가입을 한 자동차가 교통사고로 사람을 다치게 하면 보험회사가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한다. 음주운전 사고는 어떨까?
예전에는 설사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더라도 속칭 ‘면책금’이라고 하여 보험회사에 대인 300만원, 대물 100만원만 납입하면 피해자와 피해차량에 대한 손해를 모두 보험회사에서 배상했다.
하지만 지난 2020년 10월, 금융감독원이 표준약관을 개정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음주운전 차량 소유주 배상 범위를 대폭 확대하며 사고부담금을 신설했다. 이후 몇 차례 개정을 거치며 현재는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일으키면 대인 피해는 최대 2억5000만원, 대물 피해는 최대 7000만원까지 차량 소유주가 배상을 해야한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회식을 마친 회사원 A씨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앞에 가는 차량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앞차는 가로수를 충격하였고 앞차 운전자 B씨는 전치 10주의 상해를 입었다. 자동차 역시 폐차를 해야 할 정도로 파손이 되었다. 이 경우 A씨는 금전적으로 얼마를 배상하게 될까?
사고부담금 신설에 따라 A씨는 전치 10주 상해를 입은 B씨의 치료비, 위자료 등 대인피해액을 2억5000만원 한도까지, 그리고 B씨 차량 수리비도 7000만원 한도까지 본인 돈으로 지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 범죄를 저질렀기에 A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처벌도 받아야 한다. 처벌 정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피해자 B씨로부터 선처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한 형사합의금도 민사손해배상액과 별도로 지불 할 수밖에 없다.
교통사고 형사합의금 액수는 운전자보험에서 지원되는 수준이 기준이 되는데 요즘 운전자보험에서 전치 10주 피해자에게 지원되는 액수는 최대 7000만원이다. 하지만 음주운전 사고는 운전자보험에서 지원이 되지 않기에 A씨는 이 형사합의금을 본인 돈으로 지불해야 한다.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시작한 음주운전이 인생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사례를 통하여 알았기를 바란다. 또한 이런 사고부담금 제도는 음주운전 외에도 과실범죄라 볼 수 없는 무면허운전과 도주운전에도 해당됨을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참고로 이 사고부담금과 관련하여 지난 12월 23일, 국회에서 법 개정안 하나가 발의되었다. 바로 ‘음주측정불응자에 대한 사고부담금’이 그것인데, 골자는 다음과 같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경찰의 음주운전측정 요구에 불응하여 처벌되는 사례가 연평균 1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기존에는 이 음주측정불응자에게 사고부담금을 부과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서 사고부담금 부과 대상에 음주측정불응을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에 불응하면, 보험사는 사고차량에게 사고부담금을 지울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나 경찰이 왔는데 음주측정을 요구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운전자가 경찰의 ‘음주측정요구’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처벌을 받으면 사고를 낸 운전자는 음주운전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전부 자기 돈으로 해야 하게 되겠다.
아직 법안이 완전히 통과되진 않았지만 상임위원회인 국토교통위원회 문턱을 이미 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따라서 앞으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법 개정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음주운전 등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압박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 추세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확신한다.
|이길우 법무법인 엘케이에스 대표변호사. 공대 출신,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했지만 뜻한 바 있어 사법시험을 2년 반 만에 합격하고 13년째 교통사고 형사전문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