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노찬혁 기자]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바이에른 뮌헨은 공식 SNS를 통해 9일(이하 한국시각) ”바이에른 뮌헨은 그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결코 지금의 클럽으로 되지 못했다. 독특한 ‘황제’인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사망을 애도한다”고 밝혔다.
베켄바우어는 1945년 9월 11일 뮌헨에서 태어나 1951년 SC 1906 뮌헨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59년 뮌헨 유스팀과 계약한 뒤 1964년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뮌헨은 독일 분데스리가 2부 리그 팀이었지만, 베켄바우어 1군 데뷔와 동시에 1부 리그로 승격했다.
뮌헨은 베켄바우어가 1군에 합류하면서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를 영입하며 당대 최고의 3인방을 갖췄다. 뮌헨은 신흥강호를 넘어 서독과 유럽 축구계를 제패했다. 1966년 DFB-포칼 우승을 시작으로 유러피언 컵위너스컵까지 차지했다.
베켄바우어는 1968년부터 뮌헨의 주장으로 선임됐고, 그해 역사상 처음으로 분데스리가 우승 트로피를 따냈다. 이후 베켄바우어가 분데스리가를 떠나기까지 뮌헨에 분데스리가 4회 우승, DFB-포칼 4회 우승, 유러피언컵 3연패, 유러피언컵 컵위너스컵 1회, 인터컨티넨탈컵 1회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독일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베켄바우어는 4골을 터트리며 득점 랭킹 3위에 올랐고, 서독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공헌했다. 1966년 발롱도르까지 수상하는 등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1974년 자국에서 개최된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참가해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결승전에서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를 물리쳤다.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1972까지 제패했기 때문에 서독은 월드컵과 대륙간 대회를 나란히 제패한 최초의 국가가 됐다.
1983년 베켄바우어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서독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모두 제패한 두 번째 축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베켄바우어는 1994년 뮌헨 회장직에 취임했고, 뮌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중간에는 뮌헨 감독을 맡아 분데스리가 우승, UEFA컵 우승을 추가했다. 1998년에는 독일축구연맹 부회장을 역임했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그러나 2015년 베켄바우어는 아픔을 겪었다. 그의 아들은 주로 2군에서 뛰는 축구선수였는데 뇌종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2019년 4월부터는 건강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으며 판단력과 기억력이 매우 악화됐다.
베켄바우어는 두 번의 심장 수술과 골반 인공 관절 수술을 받았으며 자신의 골프 대회에서 한쪽 눈이 실명 상태임을 밝히기도 했다. 2019년 이후로는 사실상 공식적인 활동 없이 지냈을 정도다. 결국 지난 7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세계 곳곳에서 베켄바우어를 향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독일 축구협회를 비롯한 뮌헨,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애도했고, 율리안 나겔스만, 파브리지오 로마노 등 축구판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도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