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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가르친 적 없는데 캐럴 친 6살 음악신동(?) 관찰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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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아이의 꿈이 부모의 꿈과 동일시되는 과정과 같은 것 같습니다.
 
6살 첫째 아이(솔)가 하루는 잠자리에 들기 전 이제 막 돌이 지난 둘째 동생(진)이 가지고 노는 피아노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 장난감에는 우리 부부에게도 익숙한 노래가 흘러 나왔습니다. ‘저 들 밖에 한 밤 중’에라는 노래였습니다.
   
장난감에서 “노엘~”이라는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우리 부부는 서로의 눈을 마주쳤습니다.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가 피아노를 치는지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순간 과거 직장 동료가 절대음감이라, 흥얼거리는 대로 악보 없이 피아노 치던 게 생각났습니다. 혹시나 아이가 절대음감인 걸까? 노엘이라는 멜로디와 함께 제 머릿속엔 희망회로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작은 손가락으로 이어 ‘고요한 밤과 거룩한 밤’ 그리고 또 이름 모르는 노래를 치고 있었습니다. 첫째의 영재성이 발현된 게 아닐까, 저와 아내는 깊은 밤을 보냈습니다. 
   
‘음알못’인 우리 부부는 전문가에게 아이를 가르쳐보기로 했습니다. 당장 다니던 백화점 문화센터에 피아노 교실을 등록했습니다. 때마침 그주 주말부터 새 강좌가 열렸습니다. 아이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중고 피아노를 당근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천재성(?)이 발현된 아이에게 한 살 아이가 발로 차는 피아노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먼 미래 아이가 “제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6살 때 아빠가 사준 피아노에서 시작됐다”고 말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상상회로를 돌리니, 당근으로 중고 피아노를 사주기 미안해졌습니다. 결국 다가오는 아이의 생일에 맞춰, 아이에게 선물할 새 피아노를 카드로 결제했습니다. 

피아노를 쳐보는 솔이
피아노를 쳐보는 솔이

문화센터에서 아이의 첫 피아노 수업 일. 선생님께 아이를 맡기고, 우리 부부는 평소와 같이 둘째를 데리고 백화점 1층에 위치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선생님께선 첫 수업, 부모님들께 공지할 게 있다며 수업 종료 10분 전에 교실로 와달라고 했습니다. 카페에 앉아, 선생님이 어떤 공지사항을 얘기할지 상상해봤습니다. 혹시 첫째의 영재성을 발견하고,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미리 예상 답변을 고민해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요즘 듣던 크리스마스 캐럴을 악보 없이 피아노로 치더라고요. 한 번도 피아노를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우선 문화센터에 피아노 수업을 듣게 된 거 였어요.”라는 게, 그날 카페에서 고민한 저의 답변입니다.
 
선생님과 약속한 수업종료 10분 전, 저와 아내는 다른 학부모보다 먼저 교실을 찾았습니다. 이내 다른 학부모들도 도착했고, “첫 피아노 수업 재미있었어?”라는 아빠의 질문에 아이는 해맑게 “응, 재미있었다!”고 답했습니다. 학부모들이 모두 도착하자 선생님은 공지사항을 알려줬습니다. 내용은, 수업에 필요한 재료비에 대한 계좌이체 관련 내용이었습니다. 이때까지도 선생님이 단체 공지 이후, 저희 부부를 따로 불러 아이의 영재성을 얘기하지 않을까 희망회로를 돌려봤습니다. 하지만 단체 공지가 끝난 이후에도 선생님은 우리 부부를 찾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혹시 잊은 게 없나요?’라는 제 눈빛에도,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아이들에게 잘 가라며 손을 흔들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의 공지사항을 들으며 다른 아이가 어른스럽게 두 손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 보고, ‘우와, 첫째와 또래 같은 데 진짜 잘 친다’고 속으로 감탄하면서도 아이의 영재성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너도 (우.리.딸.처.럼.) 영재?’

결제한 새 피아노를 언박싱한 이후 한주가 지나자 먼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발로 치는 피아노를 칠 때만큼의 첫째의 피아노 열정도 사라졌습니다. 다만 아이는 마치 악상이 떠오른 것처럼 종이에 계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한 아이가 계이름은 틀리지 않고 쓰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그림 그리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도 캐럴에 맞춰 계이름을 흥얼거렸습니다. 문화센터 선생님께서 이런 모습을 봤어야 할 텐데 싶기도 했습니다.
 
전혀 예상 밖에 상황에서 희망회로가 작동을 중단했습니다. 또 그것은 영재성과 전혀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피아노를 구매하고 며칠 뒤 아이 유치원에서 음악회(옛 재롱잔치)가 열렸습니다. 아이는 키즈댄스공연을 시작으로, 오르프합주, 실로폰연주, 전체합창 순으로 총 4번의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날 아이는 첫 공연으로 평소 흥얼거렸던 스테이씨(SRTAYC)의 버블(Bubble) 음악에 맞춰 춤을 췄습니다. 하지만 거의 서 있는 거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래 아이돌이 꿈이라고 한 아이의 춤이라기엔, 영 폼이 안나왔습니다. 집에서 잘 췄던 동작도 아이는 그날 긴장한 탓인지 잘 추지 못했습니다. 누가 봐도 얼음.

긴장한 탓에 첫 무대서 얼음이 된 첫째(솔)
긴장한 탓에 첫 무대서 얼음이 된 첫째(솔)

이어진 오르프합주, 첫 키즈댄스 때와 달리 긴장한 모습이 덜했지만 다른 친구들보다는 여전히 긴장해 보였습니다. 그런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대기실에 찾아가 “솔아 정말 최고! 남은 것도 자신감있게 화이팅”이라고 나름의 응원을 시전했습니다.
 
이어진 실로폰연주 공연에서 아이가 평소 흥얼거리던 노래가 반주로 나오기 시작하자, 무언가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이가 동생의 발 피아노로 쳤던 그 노래와 같은 노래였습니다.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그간 아이가 집에서 계이름을 흥얼거린 이유를 깨닫게 됐습니다. 아이는 저희 부부를 놀래켜주기 위해 이 모든 공연을 비밀에 부치면서도 악보 외우기를 놓치 않았던 거죠. 영재성과 전혀 무관한 것이었고, 사실 오히려 다른 아이와 비교했을 때 첫째는 한박자 또는 두박자 늦게 실로폰을 연주하는 모습이… 천재성보다 참으로 귀여웠습니다. 그간 음악신동은 아닐까 설레발쳤던 우리 부부 입장에선, 이날 음악회에서 아이가 보인 모습에 어찌됐든 놀라긴 놀랐습니다. 

실로폰연주(왼쪽) 및 공연 마치고 꽃다발 선물 받은 첫째(솔)

그날 음악회가 끝난 저녁부터 일주일동안 아이는 밤잠을 설쳤습니다. 악몽을 꿨는지 자다가 깨 울었습니다. 평소와 전혀 다른 잠자리 모습에 저희 부부는 그 원인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뒤 아이는 저희 부부에게 지난 음악회에서 어떤 공연이 제일 좋았냐고 물었습니다. 나와 아내는 각자 좋았던 것을 다르게 말하면서 아이에게 칭찬과 용기를 주려 했습니다. 그런 저희의 바람과 달리, 아이는 첫 번째 공연 댄스 공연이 제일 아쉬웠고 자기가 생각해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유치원 음악회를 마친 저녁부터 아이가 밤잠을 설쳤던 이유도 대충 짐작이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긴장과 떨림을 참았을지…
 
아이가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피아노 연주에 큰 흥미나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아이가 긴장과 떨림을 이겨내고 무대에 오를만큼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도 우리 부부와 아이는 계속해서 아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나갈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어느 순간 저희 부부의 꿈은, 아이의 꿈(을 찾는 것)과 동일시 돼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by 썸랩 낭만자객乃 에디터(sum-lab@naver.com)
<가족의 탄생> 시리즈
1화 / 단유의 추억
2화 / 나체가 된 결혼 준비기
3화 / 한 사람과 같이 산다는 건
4화 / 싱싱이의 수난시대
5화 / 우울증, 올 것이 왔다
6화 /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7화 / 아내의 해진 팬티
8화 / 쓰러진 장모님
9화 / 동생 낳으러 간 엄마 거부한 딸
10화 / 아이 낳기를 고민 중이라면…
11화 / 마이너스 인생
12화 / 당첨되면 로또, 서울 아파트 당첨(예언)기
13화 / 결혼과 동시에 종교전쟁
14화 / [사과문]여름성경학교를 보낸, 그 후
15화 / 아이 돌봐주던 어머니가 119에 실려가다
16화 / 피자보다 아빠의 떡만둣국
17화 / 이번 명절에도 처가 ‘못’ 가는 사정
18화 / 역귀성 부모님 쫓아낸, 최악의 추석 명절
19화 / 32평 아파트와 함께 시작된 ‘삼중고 시대’
20화 / 치아에도 담긴 우리의 연애史
21화 / 손자 돌잔치 후 찾아온 장모님의 우울감
22화 / “여보가 죽을 때 내가 눈 감겨 줄게”
23화 / 부모는 죽어서도 자식을 키우고 있었다
24화 / 저마다의 가족史
25화 / 아이의 꿈=부모의 꿈

CP-2022-0145@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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