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신혼여행 중 한국 공연 요청을 받은 마릴린 먼로. 남편, 조 디마지오는 이 같은 요청을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마릴린 먼로는 공연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디마지오를 일본에 남겨두고 한국으로 떠나죠. 훗날 먼로는 당시 미군들을 상대로 한 내한 공연에 대해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며 “수 천명의 군인들이 모두 내 이름을 외쳤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먼로의 좋았던 기억과 달리 디마지오는 잊고 싶은 기억일 것입니다. 또 신혼여행 중 둘 만 있고 싶었던 자신의 바람과 다른 먼로의 선택으로, 먼로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디마지오는 미국에서 전설적인 야구 선수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중에는 이런 문구도 있죠. “얘야, 양키스를 믿으렴. 양키스에는 그 위대한 조 디마지오 선수가 있잖니.”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56경기 연속 안타입니다. 아울러 리그 최고 타율 2번, 최다 홈런 2번, 최다 타점 2번, 리그 MVP 3회, 전 시즌 올스타전 출장, 월드 시리즈 우승 9회 등 모두 디마지오의 기록입니다.
전설적인 은퇴 선수와
전성기 톱스타의 만남
디마지오와 먼로의 첫 만남은 야구장에서 시작됩니다. 은퇴 후 한 시범 경기에 게스트 자격으로 출전한 디마지오는 그날 시구자로 나선 먼로를 발견합니다. 먼로에게 반한 디마지오가 어렵게 연락처를 구해, 연락했죠. 막 은퇴한 메이저리그 전설과, 떠오르는 스타 먼로의 첫 만남은 디마지오의 구애로 시작된 거죠.
그 뒤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나기로 한 1952년 3월 8일. 약속 장소였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먼로는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습니다. 디마지오는 화도 내지 않고 묵묵히 먼로를 기다렸죠. 그 뒤로 두 사람은 2주 동안 거의 매일 저녁을 함께헀습니다. 참고로 당시 두 사람이 첫 데이트한 장소는 빌라 노바라는 레스토랑입니다. 영화 감독 빈센트 미넬라가 소유한 레스토랑으로 이 곳에는 ‘언론인 출입 금지’라는 규정이 있어, 당시 스타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하죠.
첫 만남 때만 하더라도 먼로는 디마지오에게 별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첫 데이트에 두 시간이나 지각한 이유도, 디마지오를 만나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기다린 모습에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 자신에 대한 디마지오의 순애보에 끌리게 됩니다. 요즘 표현으로 디마지오는 먼로의 ‘철벽’에도 끊임 없이 데이트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디마지오와 먼로의 첫 만남 이후 18개월 뒤인 1954년 1월 14일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 시청 작은 홀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치르며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둘 모두 이혼 이력이 있어, 교회 예식을 치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엔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른 후 이혼한 이들에게 다시 교회 예식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사업차 택한 신행지 일본서
관계 틀어지기 시작해
결혼 후 두 사람이 택한 신혼여행지는 일본이었습니다. 때마침 디마지오가 사업차 일본 방문을 계획하고 있어, 겸사겸사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거였습니다.
가장 행복해야 할 신혼여행에서 두 사람은 위기를 겪습니다. 내한 공연 요청에, 디마지오와 먼로가 다른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죠. 디마지오는 먼로가 공연 요청을 거절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먼로는 디마지오의 바람과 달리, 한국 공연을 떠났습니다. 이에 둘의 관계는 신혼여행에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하죠.
마릴린 먼로의 내한 공연 사진. 당시 먼로는 일본에서 신혼여행 중이었다. 출처=주한미군기지관리사령부
사실 애초부터 디마지오의 아내상과 먼로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연애 기간에 관련 일화도 있습니다. 디마지오는 먼로와 연인 관계가 되고 나서 가족들에게 먼로를 소개했습니다. 먼로에게 가정적인 자신의 어머니를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먼로가 가정적인 사람이 되기를 꿈꿨죠. 그런 디마지오의 바람과 달리, 먼로는 대중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모습과 자신의 끼를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직접적인 파경의 원인이 된 것은,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바로 영화 ‘7년 만의 외출’ 속 지하철 통풍구에서 올라온 바람 때문에 원피스 자락을 손으로 누르는 먼로의 모습이 담긴 장면입니다. 당시 디마지오도 촬영장에 있었는데, 이 장면을 두고 감독과 몸싸움을 벌였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디마지오는 먼로가 집에 머물기만 원한 것으로 알려졌죠.
결혼한지 9개월 밖에 되지 않았을 때인 1954년 10월, 먼로는 정신적 학대를 이유로 디마지오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결혼 생활 중 디마지오가 먼로에게 손찌검은 물론 야구방망이를 사용해 때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먼로는 자신을 구속하려하는 디마지오와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이어갈 이유가 없게 된 거였죠. 이와 달리 디마지오는 먼로와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먼로의 이혼 발표 당시, 디마지오가 아내 먼로에게 쓴 편지에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관계를 회복하기엔 너무 늦었죠.
먼로의 약물 중독 그리고
끝까지 곁 지킨 디마지오
이혼 후 10년이 채 안됐을 때, 큰 사건이 벌어집니다. 먼로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사실 먼로의 약물 중독 증세가 있었을 때, 그의 곁을 지켰던 것도 디마지오였습니다. 먼로는 퇴원을 하고 싶어 정신병원에서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디마지오만 유일하게 먼로의 부탁을 들어줬다고 합니다. 퇴원 요구에 병원 측이 거절하자 디마지오는 “당장 먼로를 내보내지 않으면 병원의 벽돌 하나하나 다 부숴 버릴 거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이후 먼로는 퇴원해서 디마지오에게 많이 의지했고, 또 재혼까지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먼로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재혼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됐습니다.
미국 내에선 디마지오를 두고 크게 두 가지 평가로 갈립니다. 하나는 먼로를 향한 순애보와 다른 하나는 집착입니다. 이혼 후에도 이어진 먼로를 향한 사랑에 더 무게를 둘 것이냐, 한때 가정 폭력에 더 무게를 둘 것이냐는 문제이기도 하죠.
디마지오는 먼로 사후에도 20년간 매주 3번씩 묘비에 장미꽃을 먼로 무덤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1999년 공교롭게 두 사람이 첫 데이트를 했던 3월 8일, 디마지오는 먼로 곁으로 떠났습니다. 향년 84세. 죽음을 앞둔 디마지오는 “드디어 먼로를 만나게 됐다”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썸랩 윤정선 에디터(sum-lab@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