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엔 아직 겨울이 시작된 것 같지 않은 포근함이 있어 적당한 두께의 패딩 하나로 동네 산책을 하듯 해운대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바다가 아닌 관객을 향한 작은 무대 위에서 공연자는 모여든 발걸음과 쌓이는 관심에 기뻐할 수 있었던 주말 밤이었습니다.
바다의 왕자도 좋아할 여름을 앞둔 모래축제만큼 동장군도 흡족해할 빛축제는 해운대의 대표적인 겨울 축제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희망, 빛으로 다시 한번’이라는 축제 주제로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토끼, 나비, 페가수스(천마) 등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포토존의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해운대 지역의 사계절을 빛으로 표현한 ‘은하수 정원’은 축제가 종료되는 2024년 1월 31일까지 백사장을 빛으로 물들게 만듭니다.
나무 꼬챙이에 꿴 어묵은 따끈한 국물을 마시며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겨울철 길거리 최고의 간식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어묵 생산 공장이 있었지만 해방 후 경영하던 일본인이 철수하자 1950년대 초반에 어묵의 주재료(생선)를 쉽게 공급받을 수 있었던 부산 지역에 소규모 어묵 공장들이 생겨나면서 부산어묵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어묵과 반대로 우리의 제조 방식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전래된 것이 있는데 바로 명란젓입니다.
소금에 절인 전통 발효음식인 명란은 특유의 담백함과 짭조름한 감칠맛이 매력입니다.
밥상 위에 올려지는 반찬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명란젓을 재료로 만든 김밥이나 파스타를 부산에서 맛볼 수 있어 <인생 여행의 도시철도> 시리즈의 열다섯 번째 도착역은 동해선 부전역과 부산 1호선 초량역입니다.
울산 태화강역을 출발한 동해선 전동열차가 운행을 마치는 부전역입니다. KTX 열차의 수혜 지역이 확대되어 2024년 말이면 청량리-부전 간 구간을 추가로 이용할 수 있을 예정입니다.
부전역의 2번 출구를 선택하면 부산시민공원, 1번 출구를 선택하면 부전시장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두 곳 모두 출구를 기준으로 3분 정도면 도착 가능합니다.
부전시장은 부산 1호선과 동해선을 이용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철도를 이용해 부산지역 근교에서 생산된 농, 수산물을 이곳까지 옮겨오는 행상인이 증가하며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피란수도(1950.8~1953.8) 시기에는 전쟁을 피해 부산지역에 유입되는 피란민의 증가로 전시 상황에서도 지역의 시장을 통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거나 물물교환이 가능했습니다.
전통시장은 명맥을 이어나갔고 산업화를 거치며 취급 품목은 다양해지고, 저렴한 가격이 장점인 먹거리는 현재까지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 부전시장에는 긴 대기줄이 필요한 김밥가게가 있습니다. 재료비, 인건비 상승으로 김밥 가격도 인상되는 상황에서 참치김밥처럼 특정 재료의 이름만을 내세운 김밥 가격도 동일하게 삼천 원을 받습니다.
두툼한 두께 때문에 한 끼 식사로도 가능한 김밥이라서 주문 후 만족도가 좋습니다.
목요일 예능인 <어쩌다 사장3>의 출연자가 김밥 제조에 매진하는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현장에서도 오직 김밥에만 몰두하는 뒷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밥의 고소함을 담당하는 계란지단은 가늘게 채쳐서 재료로 사용됩니다. 프라이팬에 계란물을 붓고 커다란 원형 채반을 가득 채울 정도로 얇고 큼직하게 부쳐 주는 일을 담당하는 조력자가 있기에 주문은 크게 밀리지 않고 손님에게 전달됩니다.
오이와 당근, 우엉, 단무지 등의 익숙한 재료에 명란이 추가로 한자리 차지합니다. 맛이나 식감이 괜찮을까 살짝 고민을 했는데 김밥을 잘 만드는 가게는 무엇을 넣든 맛있다는 것은 이번에도 유효했습니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유명해졌다고 몇 줄 이상을 기본으로 판매하지 않으니 여행자에게도 부담 없고, 고마운 메뉴입니다.
승차하려는 22번 시내버스는 합류지점이 되는 초량교차로를 기준으로 60미터 정도 안쪽 도로에 위치한 (초량역 3번출구) 정류장에서 승차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는 중앙대로를 따라 부산역과 가까워지다가 초량동의 유명한 밀면집 주변에서 우회전을 하면서 부산고교와 초량6동 주민센터를 이어 지나면서 가파른 구간을 적응하듯 달립니다.
산 중턱을 관통하는 산복도로를 운행하는 버스 기사님의 운전 실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랍니다.
이렇게 높은 지점까지 걷지 않고 대중교통 환승 혜택을 톡톡히 봤다며 좋아했을 즈음에 버스는 부산 동구의 ‘망양로’에 이르며 ‘금수사’ 버스정류장(사진)에서 하차했습니다. 하차문이 열리고 보이는 풍경에 이내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한국에서 거주했던 일본인들이 해방과 동시에 물러나면서 남게 된 가옥을 적산가옥이라 부릅니다.
주로 군산이나 목포에서 가옥 내부를 볼 수 있었는데 부산 초량동의 적산가옥 구경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적산가옥 주변의 가을 단풍이 전하는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상황이 좋아서 단박에 내부로 입장할 수 없었습니다.
고운 붉은 빛을 서서히 잃어가는 입구 옆 공작단풍과 아주 오래전 이 주변에 목장이 있었음을 넌지시 알려주듯 손수레 위에 얹은 알루미늄 우유통 그리고 적산가옥의 처마 끝에 매단 낡은 풍경도 한템포 쉬며 입장하게 만드는 볼거리가 되었습니다.
딸기우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산하는 곳 주변에 설치된 호빵 찜기 안에 든 ‘초량 앙팡’을 보고는 고구마 맛을 더해 주문했습니다. 접시가 아닌 대나무 바구니에 담겨 제공되니 목가적인 느낌 추가로 살려볼 겸 딸기우유 밑에는 마른 낙엽을 한 장 깔았습니다.
겨울 같지 않은 날씨를 만끽하다 결국 벗은 외투를 다시 입었지만 앞마당에 둔 단풍색 테이블을 지키며 앙팡 한점씩 떼어내면 툭하고 건들듯이 앙금을 발라내어 먹어봅니다.
초량동 금수사 삼거리에서 부산민주공원 방면으로 이어지는 망양로 산복도로입니다. 정차했던 버스 한 대가 출발하자 정류장 상단에 있는 것이 궁금했는데 상어인간으로 보이는 조형물이 시내버스 운행 방향대로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등교와 출근을 위한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레터링 조형물은 ‘사랑해요’를 전합니다.
2010년에 이렇게 독특한 버스아트쉘터(사진)가 완성되었고, 같은 해에 부산과 경남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개통되었습니다.
주거지과 망양로 사이에서 훌쩍 자라난 상록수 구간을 지날 때는 수목원에 있는 듯하고, 넓은 옥상이 산복도로와 높이가 맞으면 주차가 가능하도록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니 건축학을 현장에서 배우는 듯합니다.
민트색 작은 건물 위에는 명란삼남매가 보행자들을 반겨줍니다. ‘어서 오이소. 오늘은 포근해서 걸을만 하지예~’
168계단 모노레일 상부탑승장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에서는 부산역이 중심이 되고, 북항과 멀리 부산항대교가 배경이 됩니다.
경사지게 설치한 주케이블의 가장 높은 지점을 지지해 주는 190미터 높이의 주탑 2기를 둔 사장교로 해수면을 기준으로 가장 높은 곳의 상판은 66.1미터에 달해 15층 높이의 아파트를 상판 아래에 충분히 둘 수 있는 정도로 상당히 높습니다.
철도의 개통으로 영국에서는 흰살생선을 철로를 통해 도시로 공급할 수 있었고 저렴한 메뉴의 ‘피시앤칩스’가 널리 보급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철도의 발전은 사람들의 식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용산에서 원산을 잇는 경원선 개통(1914년) 이전까지는 함경도에서 잡은 싱싱한 명태를 모두 해상을 통해 부산까지 실어 나르면 근대식 물류창고(명태고방)에 보관했다가 다시 경부선을 따라 내륙으로 운송되었습니다.
껍질부터 내장까지 버릴 것 없는 명태였으니 명태를 활용한 음식이 많았는데 일제 강점기에 유년 시절을 보내며 부산에서 먹어봤던 한국인의 겨울 음식, 명란을 잊지 못했던 일본인에 의해 바다 건너 일본에도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망이 좋은 곳. 명란브랜드연구소입니다. 부산 동구와 일본으로 전래된 명란을 연결하여 음식과 관련된 지역의 이야기와 맛을 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명란을 반찬이 아닌 식재료로 활용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는데 명란파스타를 선택했습니다.
지자체에서 운영되는 곳이라고 살짝 힌트를 전하는 것은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명란삼남매인 ‘도요’, ‘레요’, 미요’ 때문이지만 구청과 관련된 딱딱한 느낌을 매장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명란브랜드 연구소
영업시간: 오전 10시 ~ 오후 9시 (마지막 주문은 오후 7시)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산복도로 주변에서 사는 주민들이 부산역 방향으로 지름길처럼 바로 내려갈 수 있는 168계단입니다.
급수 취약 지역에서는 식수로 활용이 가능한 우물을 통해 물을 직접 받아 이곳 계단을 통해 윗동네까지 옮겼을 고단한 세월이 지나간 계단이기도 합니다.
주민과 원도심을 방문하는 여행자를 위해 설치된 경사면 엘리베이터 푸니쿨라를 현재는 이용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고강도 운동처럼 느껴지는 계단 이용이지만 이른 아침의 맑은 햇살을 똑같이 공유했을 동네의 낮은 집의 모양이 장식용 오브제로 사용되거나 명란 캐릭터의 익살스러운 그림과 명란브랜드연구소와의 줄어드는 거리 알림 등은 부산여행을 진행하는 나에겐 여행판 ‘다꾸’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초량역 3번 출구에서 산복도로를 경유해서 도착한 적산가옥에서는 늦은 가을 풍경을 감상했고, 전망 좋은 테이블에서 명란파스타를 먹으며 부산 동구의 맛을 느꼈으며, 마지막으로 168계단을 통해 초량초교 앞에 도착해 다시 부산역으로 이어지는 걷기코스를 마쳤습니다.
모두가 리뷰로 통했던 ‘역시!’는 현재진행형이 되어 나의 만족으로도 연결되었던 부전시장의 명란김밥도 명란한 부산여행의 풍미를 한층 더 올려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