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골목을 걷다> 번외 편
그 전날 비행기표를 사서 떠난 사실상 무계획의 이번 홍콩여행 유일한 목표는 ‘안 가본 동네 탐험’이었다. 이왕 탐험을 하는 거 아예 1박 짐을 풀고 동네를 빈틈없이 둘러보고자 마음을 먹고, 보통 내가 호텔을 잡던 완차이(Wan Chai, 灣仔), 어드미럴티(Admiralty, 金鐘) 부근은 아예 검색 필터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쿼리베이(Quarry Bay, 鰂魚涌), 사이잉푼(Sai Ying Pun, 西營盤) 등 끌리는 동네는 여럿 있었지만 그중 몇 년 전부터 눈여겨보던 동네인 타이항(Tai Hang, 大坑)을 목적지로 결정하고, 그 중심에 위치한 ‘리틀 타이항(Little Tai Hang)’이라는 부티크 호텔로 예약을 마쳤다.
리틀 타이항(Little Tai Hang)
홍콩섬 중북부(mid-north)에 위치한 타이항은 지리상 코즈웨이베이(Causeway Bay, 銅鑼灣)에 속한다. 공항에서 AEL 고속철도를 타고 홍콩역에 내린 후 택시로 10분이면 타이항에 도착하기 때문에 관광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동네지만 중심부에서 꽤나 가까운 편이며, 지하철을 탄다면 코즈웨이베이에서 한 정거장 더 간 틴하우(Tin Hau, 天后)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좌) 택시를 타고 들어올 때 보이는 타이항 초입 (우) 틴하우역
Little Tai Hang
주소: 98 Tung Lo Wan Rd, Causeway Bay, Hong Kong
리틀 타이항은 세 동의 서비스 아파트먼트와 부티크 호텔이 합쳐진 형태의 숙박시설이다. 스튜디오부터 투 베드룸 스위트까지 다양한 사이즈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 이곳에는 나와 같은 단기 여행자도 있지만 대부분 장기 투숙하는 게스트들이 주를 이룬다.
코즈모폴리턴 도시인만큼 여러 나라에서 인재가 들고 나는 홍콩에는 이런 서비스 아파트먼트가 상당수 운영되고 있는데, 주로 센트럴, 완차이, 카우룽 등 비즈니스 허브에 많이 위치한다. 아파트호텔 (Aparthotel)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서비스 아파트먼트는 우선 계약 기간이 비교적 짧고 유연하며, 필요한 가구 및 취사시설이 완비되어 있고, 24시간 보안 시스템, 하우스키핑 서비스 등이 함께 운영되어 특히 Expat이라 불리는 국외 거주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리틀 타이항의 아담한 로비는 밝고 캐주얼하다. 곳곳에 쌓여있는 장기 거주자들의 택배 상자 덕분에 고급스러운 호텔 분위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대신 보다 생동감 있는 주거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런트 데스크에서 체크인을 하며 혹시 주변에 간단하게 요기할 곳이 있는지 물어보니, 직원이 타이항의 곳곳이 예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려진 지도와 포켓북을 건네준다. 레스토랑, 카페는 물론, (포장마차와 비슷한) 다이파이동과 마을의 역사와 관련있는 건물들이 하나하나 정성스레 소개되어 있다.
리틀 타이항의 로비, 나눠준 지도와 포켓북
객실 안에 들어서니 통창으로 타이항의 전경이 푸르른 산과 함께 펼쳐진다. 홍콩섬 북부에 위치한 타이항의 지리 덕에 리틀 타이항에서는 선택에 따라 하버뷰 혹은 마운틴뷰 모두를 즐길 수 있다. 스칸디나비안 스타일로 꾸며진 객실은 아주 포근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침대 헤드와 욕실 타일에 쓰인 푸른 바다색의 조합이 특히 눈에 띈다.
아늑한 리틀 타이항의 스튜디오
바다색 타일을 쓴 욕실
침대 위에는 ‘홍콩’하면 떠오르는 이국적인 길거리 간판, 미니버스 등을 주제로 그린 삽화가 위트 있는 설명과 함께 걸려있고, 코너에서는 중국 백자 일러스트가 게스트를 얌전하게 반겨준다.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와인의 천국답게 냉장고 대신 와인 냉장고가 자리해 있었다는 점. 여행 시 항상 작은 호텔 냉장고 안에 와인을 겨우 눕혀 보관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실로 꽤나 유용한 설계다…….
욕실 어메니티에 그려진 네 마리 동물들은 각자 직업까지 고루 갖춘 입체적인 캐릭터들이다. 두꺼비는 성공한 운동선수이자 패셔니스타, 오리는 이 지역 유명한 요리사이며, 호랑이는 장래가 촉망되는 건축가, 원숭이는 Dragon Dancer이다. 제각각인 네 명의 캐릭터가 함께 고군분투하며 인생을 살아나가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리틀 타이항의 스토리 텔링은 매우 특별하다.
리틀 타이항의 동물 마스코트들
캐릭터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꺼비는 타이항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젊은 세대들, 특히 세련된 힙스터를 떠올리게 하고, 오리는 골목 곳곳에 위치한 수많은 로컬 맛집을, 호랑이는 리틀 타이항 그들 자신, 원숭이는 이 지역에서 130년이 넘게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인 ‘Tai Hang Fire Dragon Dance’를 생각나게 한다. 매 중추절(中秋節) 3일 동안 300여 명의 사람들이 춤을 추며 화려한 공연을 펼치는 Fire Dragon Dance 축제는 홍콩 전역에서 사람들이 보러 올 정도로 유명한 타이항의 명물이기도 하다.
그 지역의 히스토리와 문화를 녹여내 콘셉트를 만들고, 디자인적으로 풀어내어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하는 리틀 타이항은 2017년 오픈 이래 타이항 지역의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해왔다. 좁은 반경에 유난히 맛집들이 많이 모여있는 타이항은 주말이면 기약 없는 웨이팅을 해야 할 정도로 현재 홍콩 로컬 및 Expat들에게 인기가 좋은 일명 ‘떠오르는 지역’이다.
아름다운 리틀 타이항 주변
다음날 아침 일찍 동네 산책에 나섰다. 정신을 확 깨워줄 향기로운 커피 한잔이 절실한 시간. 내가 묵었던 리틀 타이항 The Corner House 건물 바로 뒤쪽에 위치한 FINEPRINT를 찾았다.
FINEPRINT
주소: 1 Lily St, Tai Hang, Hong Kong
영업시간: 매일 6 AM-6 PM
FINEPRINT 타이항점
타이페이에서는 본 적도 없는 아침 6시 오픈의 카페라니, 문득 타이항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궁금해질 정도다. 리틀 타이항이 생기고 1년 뒤 문을 연 FINEPRINT 타이항 지점은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꽤나 알려진 곳이다. 두 명의 호주인이 합심하여 만든 이 브랜드는 퀄리티 높은 커피와 직접 만드는 사워도우 빵으로 유명한데, 이 사워도우에 홈메이드 리코타 치즈와 신선한 블루베리를 올리고 꿀을 살짝 뿌린 토스트가 이 집의 시그니쳐 메뉴다.
어느 곳에서나 수준급의 커피와 빵을 즐길 수 있는 홍콩이 좋다.
호주식 카페 문화를 홍콩에 소개하고 싶었다는 (각종 국제 대회 바리스타 챔피언을 여러 번 수상한) 오너는 맛있는 커피와 베이커리는 기본이고, 모두가 바쁜 이 도시에서 보다 여유를 찾고, 항상 따뜻하게 손님들을 맞이할 수 있는 카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다국적 다인종이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모여 다채로운 도시를 만들어가는 홍콩은 이래서 언제나 나에게 참 매력적이다.
로컬, 자연, 세련됨이 공존하는 마을, 타이항
글, 사진 ⓒdream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