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
연구직에 종사하지 않는 지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연구라는 업(業)에 대한 인식이 현실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한적한 공원에서 사색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공부하는 등 여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모습이 연구자의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나 실상은 마감에 쫓기는 기자의 생활에 가까우며, 마감 맞추느라 밤을 부지기수로 새어도 ‘자발적’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을 못 받는 것이 현실이다. 환상은 다르게 표현하면 예상과 추측 혹은 그러면 좋겠다는 기대와 이상이다. 이상과 현실이 다른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괴리감의 원천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괴리감의 상당 부분은 우리나라 특유의 관료주의적 문화 또는 제도적 결함에서 왔으며, 그 결과가 생산성의 하락 또는 혁신동력의 상실로 이어진다는 점이 문제이다.
정책연구 말고 과학기술 연구현장은 어떤가? 사기업은 논외로 하고 정부출연연구소라고 불리는 공공기관의 경우 그렇게 다르지 않다. 정부 부처에서 수시로 날아오는 자료작성 요구에 대응하거나 과제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매년(과제가 시작·종료하는 해에는 1년도 안 되기도 한다) 착수, 중간, 최종보고에 간헐적으로 소집되는 성과발표회를 ‘처리’하고 나면 어느새 연차보고서를 작성할 때가 된다. 연구결과는 이런 보고 일정에 맞춰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3책 5공 정책으로 최대 8개 과제에 참여하면 작성해야 하는 보고자료만 1년에 십수 개가 쉽게 넘으며 해외 학회라도 갔다 오려면 가기 전과 후에 처리해야 할 행정처리와 계획서, 보고서가 추가로 얹힌다. 이런 업무를 진심으로 하나하나 하면 번아웃이 오니 일머리가 있는 사람들은 영혼을 빼고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처리’하지만 일정 시간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 작성하는 사람은 매번 비슷한 내용의 보고 내용을 이렇게 자주 확인하고 싶은지 진심 궁금해지게 된다. 과제가 끝나가는 시점에서는 새로운 과제를 시작하기 위한 기획업무, 계획서 작성, 물밑작업 등이 위에 나열한 업무보다도 우선순위가 높을 때도 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처리해야 하는 연구관리 성격의 행정처리 또한 많은 경우 연구자의 업무로 분배된다. 이러한 업무 환경에서 적응하는 방법의 하나로 실험은 학연생 또는 박사후연구원과 같이 졸업과 취업을 위해 연구를 꼭 해야 하는 인력과 ‘역할 분담’을 하는 방법이 있다. 눈부신 실적을 가지고 입사한 젊은 연구자가 입사 후에 실험실에서 잘 보이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논문, 특허 생산량은 선진국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기술사업화 성과가 강조되면서 이 지표 또한 관리되고 연구자 성과평가에 반영된다. 연구와 관련 없는 과제관리 성격의 업무가 많은 환경에서 과제도 잘 수주하고, 논문·특허도 많이 쓰고, 기술사업화까지 잘 해내는 놀라운 능력의 연구자가 상당히 많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게 가능하도록 조직과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는 데에 필요한 연구원 내부 정치의 성과는 연구 업적을 내는 능력보다 성과평가에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뻔한 일이다. 사실 목표를 쉽게 달성하는 다양한 방법은 여기서 구태여 열거하지 않아도 연구자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으며 무슨 방식의 평가방식을 가져오더라도 각종 입시와 시험에 단련된 우리나라의 고학력자들은 양적 목표를 비교적 쉽게 달성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렇게 성과평가 방식이 사람들을 어떤 방향성과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하는지는 명확하다. 일단 요구받은 정량 성과의 평균 이상에 도달하는 방법을 찾고 여력이 되면 내적 동기를 만족하는 연구 활동을 하는 순서이다. 그러나 양적 목표 달성에 허덕이느라 여력이 생기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또는 양적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안정적 기반을 만들고 그로부터 수확하는 결과물이 달콤할수록 내적 동기 내지는 열정이 사라지는 단계에 가까워진다.
길게 나열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하다. 지금과 같은 양적 지표 중심의 성과평가 방식과 정부의 빡빡한 연구관리가 지속되는 한 노벨상도, 혁신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본말이 전도된 연구관리 업무와 양적 지표 중심의 성과평가 체계는 우리나라 연구현장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거품이며 경쟁력을 낮춘다는 것은 연구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다. 혈세를 쓰는 연구원이 돈을 허투루 쓰지 않으며 놀지 않고 뭐라도 많이 써낸 것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안심이 안 되겠다는 관료가 사라지거나 사고방식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선진국형 연구사업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더라도 그것을 수행하는 연구자는 새로운 업무를 ‘처리’하게 될 뿐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노벨상을 바라고 노동생산성 향상과 혁신이 필요하다면 연구자에게 무엇인가 더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거품을 빼는 작업이 먼저 진행될 필요가 있다.
혹자는 이것이 너무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고 지금도 훌륭한 성과를 내는 연구자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고지식한 성격 탓에 열심히 연구해도 좋은 평가를 못 받는 어려운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도 존재하고 노벨상에 근접한 연구자도 존재하나, 이런 멸종 위기에 가까운 소수로는 국가 수준에서 경쟁력을 올리기 어렵다. 적어도 그들의 생태계가 생겨 시너지가 창출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전체 연구인력의 30%는 내적 동기를 잃지 않고 연구다운 연구를 함께 지속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업무 시간과 연구비의 30%는 ‘처리’하는 업무가 아닌 진리탐구에 지속적으로 쓸 수 있도록 허락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성과평가 또는 승진심사는 30%의 여백을 고려한 절대평가 방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연구를 대하는 부처 관료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변화가 가능하게 하려면 정량지표가 당장 낮아지는 결과를 견디는 기관장의 뚝심도 필요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이 다수여야 할 것이다.
일거수일투족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연구 문화에서 얻는 연구결과물은 예측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은 바라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내적 동기를 살리는 연구를 허용하여 생긴 연구자의 자유도는 일부는 게으른 연구자를 양산하는 결과로, 일부는 생각지도 못했던 높은 수준의 연구결과물로 돌아올 것이다. 부정적인 일을 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에 집중할 것이냐, 긍정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대신 불확실성을 감내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첫 번째 방식에서의 한계점은 무수히 많이 확인했으니 2024년부터라도 두 번째 방식을 시도해보는 것이 어떨까?
/김은아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