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의 규제를 완화하는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2015년 두 법안이 시행된 지 9년 만이다. 두 개정안은 각각 신규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할 때 유해성 정보 등록 기준을 현행 100㎏에서 유럽연합(EU), 일본처럼 1톤으로 완화하고 화학물질의 위험도에 따라 규제를 차등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화평법·화관법은 환경보호와 안전 강화라는 입법 취지는 좋지만 규제 강도가 선진국보다 지나치게 높아 중소기업 등에 큰 부담을 주고 화학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여야가 합의를 통해 기업 투자의 발목을 잡는 ‘킬러 규제’를 완화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 규제 1호’로 지목한 6개 법안 중 외국인고용법·산업입지법·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은 이번에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벽에 가로막혔다. 비단 킬러 규제만이 아니다. 주요 대형마트 영업 휴무일에 온라인 배송, 비대면 진료 제도화,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실거주 의무 완화 등 여러 민생·경제 법안이 처리되지 못했다. 디지털헬스케어,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합리화 방안도 별다른 성과가 없다. 반면 여야는 총선용이라는 지적을 받는 ‘철도지하화특별법’은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철도 부지 개발로 재원을 조달한다고 하지만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로 대형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치권이 허송세월을 하면 낡은 규제의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성장 고착화라는 위기 탈출을 위한 신성장 동력 발굴도 요원해지게 된다. 이런데도 윤석열 정부가 제출한 규제 혁신 법안 222건 가운데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여야는 4월 총선을 치르기 전에 21대 국회에서 남은 규제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영세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감안해 이달 27일로 예정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특별법’ 개정안 처리도 더 늦춰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총선 ‘잿밥’에만 눈이 팔려 킬러 규제 혁파와 경제 살리기 관련 법안 처리를 미루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