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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정치·군사·이념적 갈등에 경제 안보를 둘러싼 복합 위기로 신음 중이다. 올해도 미중 전략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될 조짐이다. 북한은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 구축에 공을 들이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충돌로 중동 안보 긴장까지 고조된 상황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북핵으로부터의 안전 보장과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를 앞에 두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당당한 외교’를 내세우면서 북핵 위협을 구조적으로 억제하는 데 1차 목표를 뒀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 발휘를 주저하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 강화와 한미일 3각 공조 체제 구축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한국이 대중 압박의 첨병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한국을 압박했고, 양국 관계는 소원해졌다. 양국은 상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드(THAAD) 사태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미일 정상회의를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구축으로 간주하는 중국은 미중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을 관리 대상으로 여긴다.
한중 양국은 수교 이후 31년간 한미 동맹 구조와 한중 협력 구조의 차별성을 실감했다. 수교 당시 한국의 최대 목표였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북한의 정상 국가화는 요원한 채 북핵과 북한을 바라보는 분명한 인식 차이를 실감했다. 또 현안에 대한 해석 방식과 북핵에 대한 한국의 우려와 중국의 핵심 이익 간의 갈등을 조율해야 하는 어려운 순간을 맞고 있다.
중국은 북핵 위협의 직접적 대상국인 한국의 우려를 도외시한 채 여전히 한국을 미중 관계의 부속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또 중국은 공동부유를 국가 지향점으로 제시하면서 과학기술로 무장된 사회주의(科技社會主義) 국가 건설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공급망 안정화 대책도 미국에 동조해 중국을 압박하는 대중 견제 행위로 간주한다.
이렇게 되면 양자적 차원의 건전한 관계 발전은 동력을 잃게 된다. 양국 앞에 펼쳐진 상황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한중 관계도 미중 관계만큼 중요하다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일성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이미 한국은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에 중국을 주요 경제협력국으로 적시했다. 중국도 더 이상 ‘고래 싸움의 새우’가 될 수 없는 한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다행히도 양국은 지난해 말부터 교류 재개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12월 양국 외교부 국장 회의에 이어 인천항과 중국 롄윈강을 잇는 한중 카페리 운항이 근 4년 만에 재개되고 5차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도 열렸다. 한중 기업인들도 4년 만에 직접 만나 소재·부품 등 공급망 원활화를 협의했으며 ‘제3회 한중 지사·성장 회의’와 ‘한중 해양 협력 대화’ 개최 소식도 들린다.
중국도 분명히 예전의 중국이 아니지만 한국도 예전의 한국이 아니다. 본래 갈등은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중 양국의 갈등과 현안은 해결이 쉽지 않은 구조적 특성을 갖고 있어 더 복잡하다. 하지만 해결보다는 관리에 초점을 맞춘다면 충분히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다. 그래서 양자적 차원의 실천적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