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친일드라마, 반일드라마라는 프레임이 아닌, 이 시대를 아프고 힘들게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은경 작가가 ‘경성크리처’에 담아내고 싶었던 키워드는 ‘생존’과 ‘실종’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그리고 그 속에서 힘들게 살아낸 이들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지난 12월 22일과 1월 5일 두 번에 걸쳐 공개된 ‘경성크리처’ 시즌1은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 봄,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이 탐욕 위에 탄생한 괴물과 맞서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다.
박서준과 한소희, 수현, 김해숙, 조한철, 위하준, 최영준, 강말금, 지우 등이 출연해 열연했으며, ‘스토브리그’ 정동윤 감독과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 강은경 작가가 의기투합해 기대를 모았다.
1945년 경성을 배경으로 한 ‘경성크리처’는 일본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크리처와 참혹한 상황 속 목숨을 내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뭉클한 메시지를 안긴다. 절대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뼈아픈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
하지만 작품 의미와는 별개로 완성도에 있어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크다. 특히 장르적인 재미를 살리지 못한 엉성한 연출과 매력이 크지 않은 캐릭터 조합 등이 불호 지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그럼에도 ‘경성크리처’는 글로벌에서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2주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대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질 시즌2는 2024년 공개 예정이다. 다음은 정동윤 감독과 강은경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시즌1을 마치고 공개를 한 소감은?
정동윤 감독(이하 정) “후련했다. OTT도 처음이다. 방송국에서 할 때는 대본 나오고 찍고 내보내면 어느새 작품이 끝나 있었는데, 이번엔 후반 작업 시간도 필요하다 보니 촬영 끝내고도 안 끝낸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후련하다.”
강은경 작가(이하 강) “저도 비슷하다. 이런 방식의 제작 과정도 처음이었고 열리는 방식도 다르다. 피드백도 다르다. 지금은 이 과정 자체에 대해서 공부하는 마음이다.”
– 시즌2는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인가. 시즌1이 공개가 되기도 전에 시즌2 촬영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어땠나.
강 “처음부터 시즌2로 기획했었다. 새로운 시도이고 도전이다. 넷플릭스에서 시대극이 나가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시대물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고 특히 일제강점기 소재는 글로벌에선 확 끌리는 콘텐츠가 아니다. 그것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어준거다. 제작비도 시대물은 소품 하나하나 돈이 다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많이 든다. 처음부터 글로벌에선 잘 안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배우들도 넷플릭스도 용기를 내준거다. 저도 그렇고 감독님도 이 이야기를 할 거면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는 위시는 분명히 있다.”
–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731부대를 연상케 하는 이야기가 담겼는데 그 부분을 의도한 건지 궁금하다.
강 “제가 제작발표회에 나가서 얘기하고 싶었는데, 그 전날에 열이 올랐다. 결과적으로 코로나나 독감은 아니었는데 혹시나 민폐가 될까봐 그러지 못했다. 의도한 것이 맞다. 이 시대가 접근하기가 조심스럽다. 시대의 엄중함이 있다. 그걸 지금까지 많은 작가와 영화감독이 풀어냈다. 하지만 저는 그 방식대로는 풀지 않았으면 했다. 제 목표는 그 시대가 어땠는지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생체 실험에 대한 자료는 오래전부터 관심을 많이 뒀던 부분이다. 자료를 쌓아오다가 본격적으로 다루는데, 취재 자료를 보면 볼수록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됐다. 감독님을 만나 크리처와 접목해 이야기가 들어오게 이끌어보자고 마음을 맞췄다. 그 시대를 너무 어둡고 슬프고 암울하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포괄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나서 세부적인 이야기를 정했다. 주인공과 배경을 정하고, 옹성병원에 가장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그곳에 가서 사람을 구해내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 키워드로 잡은 건 ‘생존’, ‘실종’이다. 친일드라마, 반일드라마라는 프레임보다는 제가 꽂힌 건 이 시대를 아프고 힘들게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6.25도 마찬가지다. 북한군이 있으면 인공기를 흔들고 남한군이 있으면 태극기를 흔들었는데 그게 다 서민이다. 그러다 총살을 당하기도 했다. 그저 살아내야 했던 사람으로서는 공포다. 그 공포와 매일 매일 일어날 수 있는 죽음과 직면한다. 그렇기에 본정거리 사람들이 중요한 베이스였다.”
– 그 부분을 대사에 많이 녹여낸 것 같다.
강 “그 시대의 이야기, 인물의 신을 쓸 땐 작가가 그 안으로 들어간다. 장태상이 되기도 하고 윤채옥이 되기도 하고 나월댁이 되기도 했다. 손톱과 발톱이 뽑히고 고문도 하고, 가족도 많이 이용했다고 들었다. 이걸 기개 있게 절개 있게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더라. 매 순간이 참 어려웠다. 저도 그 경계를 탄 건데 ‘친일드라마야?’, ‘반일드라마야?’라고 하는 이야기가 실제로도 나오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걸 구분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조상들이 그렇게 버티고 있는 거라는 메시지를 저변에 깔고 싶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장태상이고, 그래서 금옥당 사람들부터 작은 역할의 친구들을 삼으려고 했던 것 같다.”
– 이 이야기를 구체화할 때 도움을 받았던 자료 중 충격적이었거나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면?
강 “생체 실험 자료들을 보다가 모성 본능 실험이라는 것을 보게 됐다. 참혹하고 비참했다. 제가 애엄마이다 보니까 극한의 상황을 만드는 거다. 죽음에 대한 공포냐,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챕터를 보는데 그게 너무 힘들게 들어왔다. 며칠 잠을 잘 수가 없더라. 경성과 크리처가 만나는 포인트를 괴롭지만 여기서 잡자, 차근차근 빌드업을 시킨 것 같다. ‘이런 거까지 했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 취재 자료 볼 때는 내가 엄마가 될 수밖에 없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 언제부터 그 시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가?
강 “처음 접한 건 ‘여명의 눈동자’다. 위안부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제가 20살이 됐을 때도 그 부분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보니 드라마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작가도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그 시대를 열어봤다. 드라마에선 아주 짧게 지나갔는데, ‘헉’할 정도의 자료를 많이 봤다. 제가 드라마를 김종학 감독님과 시작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도 저에게 굉장히 영향을 많이 줬다. 그리고 한류가 시작됐고 일제강점기 얘기가 사라졌다. 작가로서도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하고자 마음먹고 설득을 하는데 많은 부딪힘이 있었다. 드라마라는 건 우리만 좋아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제작비를 대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일본하고 분위기가 좋은데 ‘왜 굳이?’라고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넷플릭스가 이걸 한다고 해서 놀라웠다. ‘이런 시대도 오는구나’ 싶었다. 제목을 정할 때도 저는 경성이 주는 느낌이 있어서 ‘경성크리처’로 하고 싶었다. 그리고 넷플릭스에서도 ‘저도 궁금하다’라는 피드백을 줬다. 크리처의 상징성이 인간의 탐욕이라고 했는데, 그 시대의 제국주의, 인류애가 배제된 권력자들이 도구화하고 억압하고 강제적으로 다스리는 것에서 굉장히 큰 상처가 있다. 상처를 대변하는 크리처도 있지만, 자행된 폭압도 괴물 같았다는 정서를 담았다.”
